원성(袁成, ? ~ ?)은 중국 후한 말의 정치인이다. 는 문개(文開)이며 예주 여남군 여양현(汝陽縣) 사람이다. 명문 원가 사람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원소의 양아버지이기도 하다.

원성(袁成)
출생여남군 여양
성별남성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국적후한
직업정치인
경력좌중랑장
자녀원소(양아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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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원안 이래 4대가 삼공에 오른[사세삼공, 四世三公] 명문 집안에서 원탕(袁湯)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그 명성이 높았다.[1] 하북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원소의 양아버지이기도 하다. 본래 원소는 원성 동생 원봉얼자였다.[2] 조정에서 좌중랑장(左中郞將)을 지냈으며[3] 사람됨이 강건하고 자신을 잘 다스려 대장군 양기 등 귀척대신, 권세가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의 을 듣지 않는 이가 없어서 수도 낙양에서는 "일이 풀리지 않으면 문개(文開 : 원성의 자)를 찾으라"는 말이 퍼질 정도였다.[4] 일찍 죽었기에 아버지의 후사는 동생 원봉이 이었다.[5]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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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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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한서》45권 열전 제35 원안에서는 맏형 원평을 누락하였다.
  2. 원산송(袁山松), 《후한서》 ; 이현, 《후한서》74권上 열전 제64上 원소에서 인용
  3. 《후한서》원소전에서는 오관중랑장이라 하였으나 화교의 《한서》, 왕찬의 《영웅기》를 따른다.
  4. 《영웅기》 ; 배송지 주석, 《삼국지》6권 위서 제6 원소에서 인용
  5. 《후한서》45권 열전 제35 원안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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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교(華嶠), 《한서》 ; 배송지 주석, 《삼국지》6권 위서 제6 원소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