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류희춘(柳希春, 1513년~1577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전라도 해남군 출신이다.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이다.

생애편집

김안국의 제자이다. 1537년(중종 32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무술년에 별시(別試)에 급제하였다. 한 때 시강원 설서로 동궁(東宮, 인종仁宗)의 사부였다. 수찬·정언 등을 지냈다. 명종윤원형에 의해 제주유배되었다가, 1567년 풀려나와 부제학·대사간 등을 지냈다. 선조 때 이조참판으로 있다가 물러나 고향인 전라도 해남군으로 내려갔다. 죽은 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편집

그가 지은 《미암일기》는 1568년에서 1577년까지의 정치 모습과 자기의 경력을 쓴 책으로 역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 속위변
  • 역대요록

가족 관계편집

  • 증조부 : 류양수(柳陽秀)
    • 할아버지 : 류공준(柳公濬)
    • 할머니 : 설씨(薛氏)[1]
      • 아버지 : 류계린(柳桂鄰)
    • 외할아버지 : 최부(崔溥)[文]

참고 자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주편집

  1. 미암집 제3권. 증 정부인 최씨의 묘갈 음기〔贈貞夫人崔氏碣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