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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시조 김흥광은 신라 김알지 후예의 왕자로써 통일신라 말기 나라가 어지러워 장차 국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경주를 떠나 무진주 서일동(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시조 김흥광은 《동국만성보》 및 《조선씨족통보》에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왕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광산김씨 정유대동보》, 《신라김씨선원보》, 《계림대보》, 《경주김씨보》 등에는 신라 45대 신무왕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김길(金吉)은 고려에 귀의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고려 태조 왕건은 김길은 삼중대광(三重大匡)에, 김길의 조부인 김흥광은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이후 조부의 작호(爵號)이자 세거지(世居地)인 광주 광산(光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며, 후손들 중 평장사(平章事:정2품)가 8명이나 배출되자 사람들이 서일동(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을 평장동(平章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명칭은 지금까지도 남아 평장리(平章里)로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도 광산 김씨는 명문가로 명신과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최고의 영예인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6현 중 하나인 김집을 배출해 6대 국반(國班)의 대열에 올랐다. 특히나 문묘 종사 현인을 한 가문에서 2명을 배출한 것은 은진 송씨(恩津 宋氏) 송시열, 송준길과 광산 김씨(光山 金氏) 김장생, 김집 뿐인데 송시열, 송준길이 사계 김장생의 제자들이고 보면 광산 김씨의 업적은 실로 조선시대 유일무이한 업적이다. 그들이 양간공파 대사간 김극뉴 후손들인 김장생·김집 부자이다.

이밖에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을 배출하고, 문과 갑과 장원급제자 12명, 문과 급제자 263명을 배출했다.[1] 김장생 후손 중에 대제학이 7명이나 배출되었다.(문형으로 불리는 양관대제학은 7명이나, 예문관 대제학(홍문관 설치 이전)을 지낸 김한로를 포함하면 8명이 된다.)

서석 김만기와 서포 김만중 형제는 나란히 대제학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김만기의 아들 김진규가 예조판서에 대제학, 그의 아들 김양택 또한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냈다. 한 가문에서 3대가 대제학, 형제가 대제학을 배출한 것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삼한갑족(三韓甲族) 중에서 최고로 손꼽는 벌족(閥族)을 연리광김(延李光金) 혹은 광김연리(光金延李)라고 하는데 여기서 김(金)은 광산 김씨(光山 金氏)를 말한다.

분파편집

광산 김씨는 크게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사온서직장공파' 5개파로 분류하며, 그 중 양간공파 후손들이 70%로 제일 많고 그 후손들 중에서 많은 명현들이 배출되었다.

  • 문정공파 - 15세 문정공 김태현
  • 문숙공파 - 14세 문숙공 김주정
  • 양간공파 - 14세 양간공 김연
  • 낭장공파 - 14세 낭장공 김규
  • 사온직장공파 - 17세 사온서직장 김영

집성촌편집

항렬자편집

  • 대동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