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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첨(尹鱗瞻, 1110년 ~ 1176년)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초명은 영첨(英瞻),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태조(胎兆)이다. 윤언이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1132년 고려문과 인종(仁宗) 10년 임자(壬子) 임자방(壬子榜) 을과(乙科) 2위(2/25)

1153년 의종7년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사은사로 금나라에 다녀옴.

1162년 기거주(起居注)

1165년 형부시랑(刑部侍郞),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

1169년 의종 23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1170년 명종 즉위년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참지정사 판병부사(叅知政事 判兵部事)

1172년 01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동북면병마판사 행영병마 겸 중군병마판사(東北面兵馬判事 行營兵馬 兼 中軍兵馬判事)

1173년 6월 평장사(平章事) 지공거(知貢擧),

1173년 9월 김보당(金甫當)이 군사를 일으키자 이의방(李義方)은 윤인첨(尹鱗瞻)이 그 모의를 알고 있었는지 의심하였고, 또 당시 문신의 우두머리라고 여겨 잡아서 해치려고 순검군(巡檢軍)으로 하여금 윤인첨을 잡아 결박하게 하였으나 유응규(庾應圭)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곧이어 상장군(上將軍)을 겸하여 중방(重房)의 회의에 참여하였으며 수태사(守太師)를 더하였다..

1174년 10월 5일 기미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윤인첨(尹鱗瞻)을 보내어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조위총(趙位寵)을 치게 하였다.

1174년 10월 12일 절령(岊嶺)에 도착하여 싸움에 패하고 돌아왔다.

1174년 11월 27일 다시 윤인첨(尹鱗瞻)을 원수(元帥)로 임명하여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서경(西京)을 공격하게 하였다

1175년 6월 두경승이 연주를 함락시켰고 윤인첨은 서경을 포위하다

1176년 6월 13일 윤인첨(尹鱗瞻)이 서경(西京)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조위총(趙位寵)을 사로잡아 죽이고 사람을 보내어 승전을 보고하였다.

1176년 7월11일 윤인첨(尹鱗瞻)에게 상주국 감수국사(上柱國 監修國史)를 더해주었다.

1176년 12월 22일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윤인첨(尹鱗瞻)이 사망하였다.

1197년 2월 추충정난광국공신 수태사 문하시중 상주국(推忠靖難匡國功臣 守太師 門下侍中 上柱國)으로 증직.

시호 문정(文定), 명종(明宗) 묘정(廟庭)에 배향(配享).

윤인첨이 등장한 작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