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이
이남이(1948년 8월 3일 ~ 2010년 1월 29일)는 대한민국의 가수 겸 작곡가로, 본명은 이창남이다.
이남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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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이창남 |
출생 | 1948년 8월 3일 미 군정 조선 서울특별자유자치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
사망 | 2010년 1월 29일 대한민국 강원도 춘천시 | (61세)
성별 | 남성 |
거주지 | 대한민국 강원도 춘천시 |
직업 | 가수, 작사가, 작곡가 |
활동 시기 | 1967년 ~ 2010년 1월 |
악기 | 베이스 기타, 보컬 |
학력 | 서울동대문상업고등학교 졸업 |
배우자 | 김옥희 |
가족 | 이단비(첫째딸) 이이슬(둘째딸) |
종교 | 개신교 |
관련 활동 | 사랑과 평화, 신중현과 엽전들, 철가방 프로젝트 |
생애
편집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출생하였고, 한국 전쟁 시절의 피난 당시에 강원도 춘천(1950년 6.25 전쟁 당시 강원 춘천으로 피난)과 경기도 양평(1953년 경기 양평에 피난 및 기거 당시 7.27 종전 협정 목도)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1953년 7월 27일 당시의 종전 이후 그 이듬해 1954년 3월 초순 당시에 서울로 귀거하여 그는 훗날 서울동대문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7년 미 8군 무대에서 록 밴드 "차밍 가이스(Charming Guys)"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로 처음 활동을 시작해, '영에이스'라는 록 음악 밴드의 베이시스트 등으로도 활약, 그 후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베이시스트로 정식 데뷔를 하여[1] 전격적으로 히트하였고, 뛰어난 연주 실력을 인정받아 1977년에 '사랑과 평화'를 결성하여 《한동안 뜸했었지》를 발표, 활동하였다. 하지만, 멤버들 간의 잦은 불화로 탈퇴, 독자 노선을 걷다가 1988년 당시에 원년 멤버 최이철 등과 함께 '사랑과 평화'에 복귀한 뒤 3집을 발표하였다. 그 중 수록된 〈울고 싶어라〉에서 베이시스트이자 보컬로 나선 이남이는 개성 넘치는 음색의 보컬과 이미지로 공전의 히트를 친 동시에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그는 이후 또다시 '사랑과 평화'를 떠나 솔로 가수 활동에만 집중적으로 나섰고, 2001년 딸 이단비와 함께 철가방 프로젝트 음반을 발표했다. 2000년 6월, 김성호(음악가)의 ‘철가방 브라더스’를 전신으로 한 '철가방 프로젝트'는 전속 작가로 이외수가 참여하고, 이남이는 음악감독 등을 맡아서 8년간 2,800여회 공연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음악을 배달했다. 같은 해 2000년 10월부터는 지난 어린 시절 한국 전쟁 당시에 잠시 피난하였던 춘천시로 약50년여만에 본격적으로 정착해서 소설가 이외수 등과 지역 문화 운동을 했다.[2] 그 후 법무부 교화위원 등으로 위촉되어 춘천교도소와 안양교도소 등에서 창작 교실을 열어 재소자들의 교화를 도왔다.[3]
2006년 4월에, 종교를 불교에서 프로테스탄트(장로교)로 개종한 그는 2009년 11월에, 잦은 기침으로 인하여 병원을 찾았다가 결국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에서 투병하다 2010년 1월 29일 오후 2시 14분에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희와 슬하 2녀(장녀 이단비, 차녀 이이슬)이 있다.[4] 평소 하루 두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으나 입원 후 병문안을 온 지인에게 “담배는 끊기가 어려우니 아예 담배를 배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5]
참여곡
편집음반
편집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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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각주
편집- ↑ '폐암 사망' 이남이는 누구? 80년대 풍미한 가객(歌客) (뉴스앤)
- ↑ 라제기기자 (2010년 1월 29일). “'울고 싶어라' 이남이 폐암 사망”. 한국일보. 2012년 6월 30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오미정 기자 (2010년 1월 29일). “'울고싶어라' 이남이, 폐암으로 사망”. 스포츠한국. 2012년 6월 30일에 확인함.
- ↑ '울고싶어라' 이남이, 폐암으로 별세 (서울신문)
- ↑ 연합뉴스 (2010년 1월 29일). “고 이남이 "담배 끊기 어려워…배우지 말았어야"”. 조선일보. 2010년 5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3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