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20년(일본어: 失われた20年 우시나와레타 니주넨[*])은 일본에서 거품 경제 붕괴 이후 1990년부터 약 20년 이상 경제가 침체한 시간을 말한다. "헤이세이(헤이세이 시대) 대불황"이라고도 한다. 일본 경제는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의 경제 노선인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서서히 회복세를 찾았다.[1] 2017년에 이르러 일본은 장기적인 플러스 성장세로 안착하고 주식, 부동산, 취업률에서 모두 상승세를 기록해 불황의 터널에서 탈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1][2]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보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3]

개요 편집

1990년부터 경기가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버블 경제(버블 경기)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소비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경제를 보통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문제를 계기로 세계 금융위기로 발전하고, 세계 동시불황으로 빠져 버블 붕괴 이후 경기침체가 개선되지 않아 이자나미(いざなみ) 경기 기간(2002년 2월~2008년 2월)을 포함하여 잃어버린 10년과 2000년대 경제를 합쳐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누가 언제부터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경위 편집

거품 경제의 후반 무렵부터 실물경제와 자산가격의 차이로 경제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89년 4월 1일부터 소비세가 도입되어 경제에 영향을 끼쳤고 일본은행에 의한 급속한 금융 긴축정책과 총량 규제를 계기로 한 신용 경색 등으로 경제 활동이 점차 수축되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1989년 최고치 38,915엔 87전을 정점으로 하락했으며 1990년에는 23,848엔 71전까지 하락했고 1990~1991년경 버블 붕괴를 초래했다.

본래대로면 정부가 경기대책에 전력을 쏟아부어야했을 시기지만, 당시는 55년 체제의 붕괴, 자민당의 분열과 비자민당 연립정권 탄생 이후 3당연립정권(자민당, 일본사회당, 신당사키가케)이 들어서는 등 정권의 틀이 계속 바뀌면서 유효한 경기 대책을 세우지 못 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긴급경기부양책 등으로 1993년경을 바닥으로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호전의 조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정의 재건을 서두르는 정부는 세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소비세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했다. 또한,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 피해의 회복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1997년 하시모토 정권은 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소비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하여 같은 시기에 발생한 아시아 통화위기, 부실채권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국가 대차대조표 조정에 따른 금융기관의 잇따른 파산 등이 겹치면서 경제상황이 악화됐다.

이후 인터넷버블(IT경기)과 그 붕괴에 따른 경기 변동 후, 2000년대 초반에는 고이즈미 구조 개혁의 영향으로 경기는 바닥을 치고 완만한 회복세를 지속했다.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은행의 불량채권 처리를 완료하고 대기업은 실적이 개선됐다. 성장률은 2% 내외로 유지됐으며 닛케이평균 주가도 상승했다. 장기적으로 제로금리 정책이 취해졌다. 하지만, 은행의 돈이 기업에 투자가 되지 않음으로써 닛케이평균 주가는 20,000엔을 넘지 못 했고, 2006년에는 17,225엔 83전이 최고였다. 이는 1990년대의 평균보다 낮은 값이다. GDP 디플레이터에 관해서도 1990년에 비해 100%를 삭감한 후 디플레이션으로 빠졌고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론 문제가 원인이 되어 세계동시불황으로 경기가 급격히 악화.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또한 리먼쇼크와 그리스위기로 달러와 유로의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에 엔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정부와 일본은행의 대응 지연으로 인해 엔고 추세를 막지 못하여 달러당 80엔대 중반까지 상승하고 원유가의 상승 등으로 수출 감소와 기업의 해외 유출이 진행되었다. 일본과 미국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중산층의 몰락(빈곤층으로의 전락)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2010년에는 가구소득이 1987년 당시 수준까지 떨어졌다.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미국채쇼크등이 일어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일시적으로 급격한 주가 하락과 엔고 현상이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日 성장률 편집

전후부흥기 편집

일본은 냉전의 체제 경쟁의 배경에서 미국의 지원 아래에 빠른 전후 복구를 완료했다. 1956년 일본 총리는 전후복구선언을 했고,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며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의 이미지를 굳혔다.

고도성장기 편집

1960년대는 인류의 자본주의 황금기였다. 서구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발발부터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파리 평화조약까지 1950년~1973년 동안을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동안 인류 GDP는 6배 이상 성장했고, 이 시대의 기회를 잡아서 세계 무대에 우뚝 선 국가는   미국,   일본,   소련,   독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공업이 발달한 데 비해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지 않던 국가였고, 황금기 동안 3배의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일본,   독일만 7배 이상의 성장을 한 G5로 최대 수혜를 입었다.

미일 경제전쟁기 편집

일본의 고도성장에 미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는다. 일본의 저렴하고 성능 좋은 자동차는 미국 자동차 업계를 무너뜨렸고, 유류 파동과 더불어 도요타 자동차를 비롯한 일본 업계가 세계 업계의 중심을 차지한다. 미국 유대계 자본의 상징인 록펠러 센터미쓰비시사가 2,200억엔에 인수하며 미국인들의 '일본 공포증'은 극에 달한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G5 수뇌부를 불러, 플라자 호텔에서 플라자 합의를 한다.   일본,   독일의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상승시켜 수출과 경제성장을 억제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의 부진한 경제를 살려서   소련과의 냉전 대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게 요지였다.

장기불황기 편집

화폐 가치를 절상시킨 뒤 10년이 지나도 일본의 수출, 성장률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당시 일본의 기술이 이미 너무 발달한 상태여서 수출하는 상품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도 계속 소비자들이 찾거나 이미 시장 경제에서 과독점한   일본 재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일본의 기술을 원해서 정치적 압력을 넣어 미쓰비시 F-2 전투기를 공동개발로 만들어 일본의 앞선 기술인 탄소섬유(비행기 제작에 도움), 위상배열 레이다AESA(군사용 레이더에 도움)를 불평등하게 뺏는데 성공했다. 이를 당시 한국 언론들도 미일 기술역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독일  일본에 비해 플라자 합의의 영향에서 자유로웠다. 유로화 통일로 독일도 유로를 썼기 때문에 마르크 화폐 가치를 올린 타격은 피해갔다.

버블 붕괴 편집

플라자 합의에도 수출이 잘돼 성장을 너무 급격하게 한 일본은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빠른 급성장에 돈이 남아 돌던 일본 사회는 남아메리카북아메리카, 동남아시아에도 이미 충분히 해외 투자를 한 상태라 국내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부동산, 주식 시장에 돈이 몰려 지나친 투기가 시작됐고, 실제 가치보다 거품이 낀 거품 성장만 했다. 이를 거품 경제라고 한다. 이 때 도쿄 땅을 모두 팔면 미국을 살 정도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91년 6월, 2만5,000의 최고점을 찍던 닛케이 2257월 1만5,000으로 추락했다. 버블 붕괴로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이 때 일본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당시와 버금간다고 한다.

일본형 장기불황 편집

1991년 이후로 일본의 합계출산율경제성장, 취업률은 점차적으로 낮아졌고 헤이세이 시대내내 저조했다. 이 시기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른다. 경제 사정은 나빠지고 일본의 국제적 경제 위상은 추락했다. 일본 정부가 지방 소도시까지 과한 인프라 투자를 하고, 일본 정부에 세금을 내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도 많이 사라져서 일본 국가 부채는 증가해서 GDP대비 국가 부채는 세계 1위를 기록한다.

그럼에도 일본이 장기불황 동안 세계 정상급 경제대국 자리를 유지한 이유 편집

일본은 국가 부채가 200%가 넘었지만, 대부분이 자국인에게서 빌린 돈이라서 외국에게 갚아야 하는 형편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은 세계적인 채권 (금융)강국이다. 일본이 외국에게 빌려준 돈이 많아서   미국을 포함,   세계 경제 대국들이   일본에게 갚아야 할 돈도 만만찮게 많다. 그리고 일본은 독일처럼 작은 소재로 세계에 독점 수출하는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 많으며, 이런 기초가 튼튼한 제조업은 불황에도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었다. 일본 국민들이 이미   미국,   유럽에 못지 않게 자산이 많고 구매력이 있었기에 국가 단위로는 세계 2위 내수 시장을 가져서 수출이 안되어도 내수로도 충분히 경제를 부양할 수 있었다. 덤으로 일본이 해외에 가진 해외 자산도 많다.

현재 편집

2012년 아베 내각아베노믹스를 추진한다. 엔화를 일본 정부가 인위적으로 찍어내서 경기 부양을 하고, 화폐 가치가 떨어져 저렴해진 상품으로 수출 경쟁력도 확보해 침체된 일본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게 요지이다. 초기엔 경제학자들에게 많은 우려를 받았지만, 3년이 지난 2015년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5년이 지난 2017년닛케이 225가 버블 붕괴 후 최초로 2만4,000을 달성해서 성공으로 평가하는 경제학자들이 많아진 편이다.

 
짐바브웨 화폐.
양적완화 편집

화폐를 찍어내는데도 엔화가 여러번 오르는 위기가 생기는데 이건 일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질때마다 서양 금융은 엔화를 안전하다고 여겨서 사기 때문에 다른 기축 통화들이 떨어져도 엔화만 오르는 기현상을 보인다. 또 한, 화폐 가치라는 건 그 국가의 신뢰와 비례한다. 세계 상품을 제일 많이 수입해주는 미국이 달러를 무리하게 찍어내도 어느정도 까지는 세계 많은 나라들이 달러를 어쩔 수 없이 가치를 인정하고 사용한다.   미국,   일본은 세계적으로 아이폰, 도요타 자동차를 막대하게 팔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화폐가 많이 찍혀져도 세계가 써주지만,   짐바브웨의 경우, 자동차 한대 수출하는 일이 없어서 화폐를 많이 찍어내도 아무도 안 써줘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 휴지 값이 되고 만다.

취업 상황 편집

유효구인배율(아르바이트나 파견근로자 등의 비정규직도 포함하므로 주의해서 봐야한다.)도 1991년경을 정점으로 급락했고, 구인 수보다 구직 수가 웃돌게되어 대졸의 취업률도 70% 내외로 하락되어 취업빙하기라고 불리게되었다.

199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전반에 걸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1999년에는 유효구인배율이 0.48(파트를 포함해야 0.39)이었다. 대졸의 취업률도 60% 전후까지 떨어졌다. 또한 2.5% 전후이던 실업률도 5% 전후까지 상승, 자살자도 1998년부터 3만명 이상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취업 상황이 호전, 유효 구인 배율도 1.06(파트를 포함하면 0.94)까지 회복, 대졸의 취업률도 70% 전후까지 회복, 실업률도 4% 내외로 회복했지만 복구된 것은 도시가 대부분이었으며, 지방에서는 취업난이 계속되었다. 비정규직 비율도 계속 증가해 2005년에는 여성은 전체 세대 평균이 51.7%와 50%를 초과한 상태를 유지, 남성은 15~24세에 44.2%로 높은 상태에서 25~34세에도 13.2%로 2000년의 5.6%에 비해 2.5배 가까이 늘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의 세계 불황으로 다시 취업 상황이 악화되었고 실업률은 5% 안팎까지 상승했다. 특히 2009년에는 유효구인배율도 0.47가 되고 대졸의 취업률도 60% 내외로 떨어져 다시 취업빙하기가 되었다.

향후 전망 편집

이대로 경기회복이 되지 않으면 "잃어버린 30년"이 될 가능성도 있고, 이미 그렇게 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연구기관 "21세기 정책 연구소"는 2012년 4월 "잃어버린 20년의 상황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일본은 2030년경에 성장도면에서 한국에 추월되어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게 된다."라는 예측 결과를 내놓았다.

2011년의 유럽 금융 불안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일본의 많은 주요기업의 주가는 30년 전 주가까지 떨어져버려 주식에 관련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 무렵 미국과 서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도 일본을 따라가듯이 앞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에 돌입했다.(일본화) 성장의 한계에 의한 구조적인 경제침체에 돌입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선진국의 경기침체는 단순한 경기 순환으로는 설명하지 힘들어 의견과 진단이 다양하다. 경제학자 피터 틸은 20세기의 성장동력이었던 혁신이 끝을 맞이했기 때문에 향후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의 큰 성장은 바랄 수 없을 거라고 예측했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잃어버린 20년’은 옛말…“일본이 돌아왔다””. 《KBS 뉴스》. 2017년 6월 27일. 2018년 2월 24일에 확인함. 
  2. “일본, 8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4분기 GDP 0.8% 증가 전망”. 《뉴스핌》. 2018년 2월 2일. 2018년 2월 24일에 확인함. 
  3. “일본 성장률 -4.5%로 하향 조정…코로나19 여파”. 《아시아경제》. 2020년 7월 30일. 2020년 7월 3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