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오승
전오승(全吾承, 1923년 3월 16일 ~ 2016년 7월 3일)은 대한민국의 기타 연주가 겸 작곡가이다. 본명은 전봉수(全鳳壽)이다.
![]() 全吾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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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전봉수 全鳳壽 |
출생 | 1923년 3월 16일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진남포 |
사망 | 2016년 7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93세)
국적 | 대한민국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
직업 | 음악가(기타 연주가 및 작사가 겸 작곡가) 겸 평론가 |
장르 | 트로트 & 영화OST |
활동 시기 | 1947년~1983년 |
악기 | 기타, 하모니카,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콘트라베이스 |
학력 | 1939년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진남포 실천고등상업학교 6학년 중퇴 |
가족 | |
종교 | 개신교 |
생애편집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진남포 지역의 어느 부잣집에서 부친 전상연(全常淵)과, 모친 장중차(張中次)의 사이에서 슬하 5남 4녀 중 맏이(장남)로 태어났다.[1] 1934년 일제 시대 평안남도 진남포 남포보통학교 졸업, 1939년 진남포 실천고등상업학교를 중퇴한 뒤 1942년 결혼을 한 그 이듬해 부인과 함께 1943년 일제강점기 경성부 종로(1945년 을유 광복 후 서울 종로)에 홀로 부부 단둘이만 월남해 1944년 경성(종로)에서 장녀 전진선 씨를 득녀 후 1945년 해방(을유년 광복)된 이후에는 서울 마포에 정착했고 서대문에 있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조두남의 자택을 드나들며 화성악(화성음악학)을 배웠다.
1947년 정동방송국(HLKA)의 경음악단 전속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이듬해 1948년 중앙방송국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1950년 춘사월 당시 차녀 전영선 씨(훗날 배우 활동)를 득녀하였다. 여동생 나애심(본명 전봉선)이 부른 《밤의 탱고》, 《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 유행가를 작곡했다. 《이별의 인천항》,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 우지마라》 등도 작곡했으며 명국환, 박경원 등에게도 곡을 줬다. 1978년 《전우가 남긴 한 마디》를 작사, 작곡한 것을 마지막으로, 1983년 당시에 활동을 사실상 모두 정리하고 1980년대 초반에 장녀 내외(큰딸 전진선 부부)가 이주 및 거주하고 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
가족 관계편집
기타편집
각주편집
- ↑ [1], 박성서, 음악 평론, 작가 탐구[03]작곡가 전오승, 악기 탐닉이 남달랐던 '기타꾼'이자 '낚시광'
- ↑ 1958년 이강천 감독 작품인 영화 《종말 없는 비극》의 아역 조연을 통하여 영화배우 첫 데뷔를 하였으며 결혼 후 1991년 영화배우 은퇴하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거주.
- ↑ 1933년 1월 22일일제 시대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 1944년 9월 당시, 일제 말기 평안남도 진남포여자중고등보통학교 1학년 중퇴 후 같은 해 동짓달(1944년 11월)에 일제 시대 경성부 종로 사갓집 살던 큰오빠 부부(전오승 내외)의 사저로 건너가 1945년 경성(종로)에서 을유 광복(1945 해방)을 목도하였으며 1954년 가수 첫 데뷔 후 1957년 김기영 감독 작품인 영화 《여성 전선》의 단역을 통하여 영화배우 데뷔하였고 1978년 가수 겸 배우 분야에서 모두 은퇴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이주(1978년 이후 미국 LA 거주). (9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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