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의의 난(趙思義ㅡ亂)은 1402년 11월 안변부사 조사의가 동북면(함경도)에서 일으킨 반란을 일컫는다.

조사의의 난
날짜1402년 11월
장소
결과 태종 이방원의 승리
교전국
조선의 기 조선 조사의 반란군
건주여진
지휘관
조선 태종
민무구
민무질
박순 
송류 
이지란
이숙번
조영무
박은
하륜
마천목
이천우
조선 태조 항복
조사의 
강현 
먼터무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방번과 방석(芳碩)이 희생되었다. 안변 부사 조사의신덕왕후 강씨(태조 이성계의 계비)의 조카 강현은 그 원수를 갚는다면서 태종(이방원) 때인 1402년 태상왕 태조의 위세(태조 이성계의 배후 가능성)를 등에 업고 봉기하였다. 안변을 중심으로 동북면 전 지역이 거점이며 여진족의 참여 가능성(이성계의 활동무대) 조정에서 박순(朴淳), 송류(宋琉) 등을 파견하여 반군을 회유하였으나 도리어 죽음을 당하였다. 초기에는 반군이 우세하여 관군의 선봉 이천우(李天佑)를 격파하였으나 그 후 관군이 군을 재정비하고 재공격을 가하자 반군은 무너졌고 조사의 등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함흥차사(咸興差使)의 고사(古事)가 바로 이 사건에서 연유되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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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조선 양반사회의 성립"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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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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