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지 홍패

최광지 홍패(崔匡之 紅牌)는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에 있는, 고려 말~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 최광지(崔匡之)가 1389년(창왕 1년) 문과 '병과 3인(丙科 第三人)'으로 급제하여 받은 필사본 문서이다. 2020년 4월 2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062호로 지정되었다.[1]

최광지 홍패
(崔匡之 紅牌)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2062호
(2020년 4월 23일 지정)
수량1점
시대1389년(고려 창왕 1)
관리전주최씨송애공파 종중
주소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지정 사유편집

보물 제2062호 '최광지 홍패'는 고려 말~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 최광지(崔匡之)가 1389년(창왕 1년) 문과 '병과 3인(丙科 第三人)'으로 급제하여 받은 문서로서, 약 630년 전 고려 말에 제작된 매우 희귀한 사료이다. '홍패(紅牌)'[주해 1]는 왕명으로 발급된 과거합격증을 말하며, 보통 홍화씨 등으로 붉게 염색한 종이로 발급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을 갖게 되었다.[1][2]

최광지[주해 2]는 고려 말기~조선 초기에 활동한 학자로, 활동연대는 대략 14~15세기에 이른다. 본관은 전라북도 부안에 집성촌을 둔 전주 최씨로, 당시 정치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전주최씨의 위상을 감안할 때 이 홍패는 고려 말~조선 초의 가문과 인물, 제도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1]

홍패에는 '성균생원 최광지 병과 제삼인[주해 3] 급제자'(成均生員崔匡之丙科第三人及第者)와 '홍무 이십이년 구월 일'(洪武貳拾貳年玖月日)이라는 문장이 두 줄로 적혀 있으며, 발급연월일 위에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3]의 국새가 찍혀 있다. 문서의 형식과 성격 측면에서도 ‘왕지(王旨)’라는 문서명과 국새가 찍힌 정황으로 보아 임금의 명령을 직접 실천한 공식문서로서 완결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1]

현재까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홍패는 총 6점으로, 시대는 ‘최광지 홍패’[주해 4]보다 빠르지만 왕명이 아닌 관청에서 발급되어 국새가 찍히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왕명의 직인이 찍혀 있고 형식상 완결성을 갖춘 고려시대 홍패로서는 이 '최광지 홍패'가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형식은 후대로 계승되어 조선시대 공문서 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1]

보물 제2062호 '최광지 홍패'는 1276년(충렬왕 2년)부터 과거합격증에 '왕지(王旨)'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을 처음 확인시켜 준 실물이자, 조선시대 문서제도와 관련성이 밀접하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 및 희소성이 인정되는 자료이다.[1]

주해편집

  1. 홍패란 고려~조선에서 발급된 문과(文科)와 무과(武科) 합격증을 말하며, 보통 홍화씨 등으로 붉게 염색한 종이로 발급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반면 생원‧진시시험 통과자에게는 합격증이 흰 종이로 발급되었기 때문에 이를 ‘백패(白牌)’라고 불렀다.
  2. 최광지(崔匡之): 생몰년은 미상이며, 고려 말기~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관. 족보에는 1389년 문과에 급제했다는 기록만 존재한다. 본관은 전라북도 부안에 집성촌을 둔 전주 최씨로, 당시 정치‧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전주최씨의 위상을 감안할 때 이 홍패는 고려 말~조선 초의 가문과 인물, 제도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3. 병과 제3인(丙科 第三人)이란 고려 말기 문과의 등제(登第) 중 ‘병과’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문과의 등제는 을과(乙科), 병과(丙科), 동진사(同進士)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정원은 총 32인으로, 을과에 3인, 병과에 7인, 동진사에 22인이었다. 따라서 ‘병과 제3인’의 최광지의 성적은 전체 6등에 해당된다.
  4. *고려 시대 홍패 현황
    연번 문화재명 발급 연대 지정현황 비 고
    1 장양수 홍패
    (張良守 紅牌)
    1205년(희종 1) 4월 국보 제181호
    2 우탁 홍패
    (禹倬 紅牌)
    1290년(충렬왕 16) 5월 비지정
    3 장계 홍패
    (張桂 紅牌)
    1305년(충렬왕31) 5월 보물 제501호
    4 이자수 홍패
    (李子脩 紅牌)
    1330년(충혜왕 1) 11월 비지정 원본은 현존하지 않고 족보에 내용만 전해짐
    5 양이시 홍패
    (楊以時 紅牌)
    1355년(공민왕 4) 2월 보물 제725호 ‘남원양씨 종중 문서 일괄’에 포함됨
    6 양수생 홍패
    (楊首生 紅牌)
    1376년(우왕 2) 6월 보물 제725호 '남원양씨 종중 문서 일괄'에 포함됨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20-37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제19737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20. 4. 23. / 19 페이지 / 662.8KB
  2. 유형문화재과. “고려 국왕의 국새(고려국왕지인) 찍힌 과거합격증 보물 지정”. 《문화재청》. 2021년 1월 25일에 확인함. 
  3.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 1370년(공민왕 19년) 명나라 황제 홍무제가 고려에 내려준 국새로, 조선 건국 후 1393년(태조 2년)년에 명에 다시 반납되었음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