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원

최효원(崔孝元, 1638년 2월 23일 ~ 1672년 8월 15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으로 숙빈 최씨의 친정아버지이자 영조의 외할아버지이다. 자(字)는 의경(義敬).

생애편집

그의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증조부 최억지, 할아버지 최말정, 아버지 최태일의 이름이 전하지만 이들은 모두 해주 최씨 족보에 실리지 못했고, 해주최씨의 시조 최온(崔溫)의 몇대 후손인가는 불확실하다.

사후에 증 의정부좌찬성추증된 최태일(崔泰逸)과 평강장씨(平康張氏)의 아들로, 형제자매에 대한 기록도 알 수 없다. 남양홍씨 홍계남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그의 둘째 딸이 숙빈 최씨였다. 선략장군 행충무위부사과(行忠武衛副司果)를 지냈다.[1]

1672년 35세로 사망했다. 사후 1734년 2월 외손자 영조에 의해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증직 추서되었다.

사후편집

묘소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산85번지에 있으며, 그의 묘소 주변에는 손자 최수강, 장인 홍계남, 홍계웅 일가의 묘소가 근교에 있다. 아버지 최태일(崔泰逸)과 할아버지 최말정(崔末貞)의 묘소는 은평구 불광동 산10-1번지에 있다.

가계편집

최효원이 등장한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것이 생전 직위였는지 그의 사후에 숙종의 후궁이 된 딸의 공으로 증직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2. 본래는 정3품 당상관과 종친(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척), 의빈(임금의 사위)에게 주어지는 품계이나 나이 80을 넘긴 대신에게 예우의 의미로 가자되기도 하였다. 인조시대에 이르러선 신분과 상관없이 80 혹은 90을 넘긴 노인에게 노인직으로 내려졌다.
  3. 생전에 관직을 지내지 못한 사람에게 붙여지는 칭호, 유학을 공부하던 유학(幼學)과는 따로 구분된다.
  4. 최종 관직은 통훈대부 맹산현감(孟山縣監)에 이르렀고 사후 가선대부 병조참판훈련원도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