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성씨)

한국의 성씨

(太)씨는 발해 고왕 대조영(大祚榮)을 시조로 하는 발해왕족의 후예이다.[1] 태(太)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06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12위이다. 본관은 협계(陜溪), 영순(永順), 남원등 14본이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함경북도에 밀집되어 있다.

2010년부터는 협계와 영순의 두 본관이 합본하여 백주 태씨(白州 太氏)가 되었으나, 모르는 후손이 많아 실질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발해의 태자 대광현(大光顯)이 고려에 망명하면서 황해도 백주(지금의 황해도 배천군)에서 정착한 것을 유래한다.

기원 편집

대(大)씨와 태(太)씨의 시조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大祚榮)의 아버지 대중상(大仲象)이다. 대씨(大氏)가 태씨(太氏)로 바뀐 연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 발해가 멸망한 뒤 934년(태조 17)에 태자 대광현(大光顯)이 발해 유민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하자, 고려 태조가 이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에게 원보수(元甫守)의 벼슬과 함께 태씨(太氏)를 하사하였다는 것이다.
  • 동국통감』에서 대조영을 태조영(太祚榮)이라 한 후로 자손들이 태씨를 칭하였다는 것이다.

협계 태씨 편집

협계 태씨(陜溪 太氏)의 중시조 태집성(太集成)은 대중상(大仲象)의 후손인 태화균의 8세손이다. 태집성은 1228년(고려 고종 15) 대장군(大將軍)으로 서북면병마사가 되었고, 몽골군을 격파한 공으로 협계에 봉해졌으며, 수 사공(守司空)에 올랐다.[2]

남원 태씨 편집

남원 태씨(南原太氏)의 중시조 태맹례(太孟禮)는 협계 태씨 중시조 태집성의 9세손이다. 태맹례는 조선 단종 때 진사(進士)를 지내다가 화를 입어 1454년(단종 2) 함경북도 길주로 유배되었는데 후손들이 그곳에 살면서 태명례를 시조로 하고 협계 태씨에서 분관하여 조상의 고향인 남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영순 태씨 편집

영순 태씨(永順 太氏)의 중시조 태금취(太金就)는 대중상(大仲象)의 18세손이다. 태금취는 고려 고종 때 금교(金郊)에서 몽골군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워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영순군(永順君)에 봉해졌다.[3]

인물 편집

각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