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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걸중상(乞乞仲象, ? ~ ?)은 고구려의 유민 지도자로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아버지이다. 이진충의 난이 발발했을 때 말갈 지도자 걸사비우와 함께 당나라를 탈출하였다. 발해가 건국되기 전에 죽었고 그 유지는 아들 대조영이 이어받았다. 이나 출신 등 여러 논란이 있다. 협계 태씨, 영순 태씨, 밀양 대씨에서는 시조로 받든다.

목차

생애편집

고구려 멸망 후 요서(遼西)의 영주(營州)로 이주하였다. 한편, 북한 학계에서는 이를 부인하며 이 시기에 걸걸중상 세력이 따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출처 필요] 696년 거란의 가한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문홰(趙文翽)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는 이때를 틈타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쪽으로 탈출하였다. 요수를 건너 태백산(太白山) 동북을 근거지로 삼고 오루하(奧婁河)를 막았다. 측천무후는 이들을 달래고자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에, 걸걸중상을 진국공(震國公)에 봉하였으나 걸사비우가 거절하였다. 이에 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이해고중랑장 색구(索仇)가 파견되어 이들을 토벌하였다. 걸사비우전사했으며 걸걸중상도 이미 세상을 떠나서 그 아들 대조영이 남은 무리를 규합해 달아났다.

성씨와 이름편집

걸걸중상의 이름을 사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 대(大)는 성, 사리(舍利)는 벼슬, 중상이 이름이라는 설(오대회요)
  • 걸걸중상까지의 성씨는 사리(舍利)였으나 그 아들인 대조영부터 성을 대(大)로 바꾸어 썼다는 설(발해국지)
  • 당 고종 시기의 장수인 사리아박(舍利阿搏)의 예를 들며 사리부(舍利部)의 추장족(酋長族) 사리씨(舍利氏)가 대(大)씨의 본래 성씨라는 설(통지(通志))

이 외에도 여러 설과 논란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대씨·태씨 족보와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현대의 3자식(三字式) 이름과 대조영성씨에 맞춰서 대중상이라 하기도 하는데, 사서로 인정되지 않는 족보를 제외하면 모든 기록에서 이름이 걸걸중상으로 나와있기 때문에 명백한 오류이다.

논란편집

걸걸중상의 출신이나 정체를 두고 여러 의견이 있다. 걸걸중상이 대조영과 무관한 사리라는 관명을 가진 거란인 호족이라는 학설[1], 걸걸중상과 대조영은 부자 사이로, 고구려에 귀화 내지 복속된 말갈인이라는 학설[2][3], 《구당서》에서 걸걸중상은 대조영에게 동일인물로 둔갑되었고 이런 즉, 걸걸중상은 고구려 종족인 대조영의 말갈식 이름으로, 걸사비우의 말갈과 우호적인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학설[4] 등이 있다.

가계편집

관련 작품편집

각주편집

  1. 井上秀雄 (1976년 1월). 《東アジア民族史 2-正史東夷伝》. 東洋文庫283. 平凡社. 426쪽. ISBN 978-4582802832. 
  2. 송기호 (1995). 《渤海政治史硏究》. 一潮閣. 43쪽. ISBN 9788933701775. 
  3. 森安孝夫 (1982). 《渤海から契丹へ》. 東アジア世界における日本古代史講座7. 学生社. 73쪽. 
  4. 김기흥(2011), 발해의 종족적 연원, 동북아역사논총-33, 446~447쪽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