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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유편집

이전 고국원왕 문서는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저작권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박영규 씨가 소설적 상상력으로 펼쳐낸 허무맹랑한 내용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에 기본 사료인 《삼국사기》, 기타 중국 사서의 내용을 참고하고 근거가 없는 소설적 내용은 삭제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08년 11월 26일 (수) 12:11 (KST)

소열제는 수서의 오기편집

고국원왕은 소열제가 아닙니다. 고구려는 칭제하지 않았습니다. 소열제라고 기록돼 있는 수서의 기록은 오기입니다.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김용만의 글을 참고하여 글을 쓰겠습니다. 『수서』「고려전」에 "위궁의 현손의 아들이 소열제다. 모용씨에 의해 공파되었다. 모용씨가 환도에 들어가 그 궁실을 불태우고 크게 약탈한 후 돌아왔다. 소열제는 뒤에 백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는 기록이 보입니다. 여기서 소열제는 고국원왕의 행적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하지만, 『위서』「고구려전」에는 이와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위궁의 현손이 을불리다. 리의 아들이 쇠(釗)다. 열제때에 모용씨와 더불어 서로 공격하였다. 건국 4년에 모용원진이 무리를 이끌고 쇠를 공벌하였다. … 쇠는 뒤에 백제에 의해 살해되었다." 위서와 수서의 편찬 연대와 양 사서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위서』가 원본이고, 『수서』는 그것을 다시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열제"는 북위의 건국자인 탁발규가 도무제라는 이름으로 칭제를 하면서 자신의 조상인 예괴를 추존하여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장을 잘못 끊어 읽으면서 소열제라는 이름이 나온 것으로 『수서』의 편찬자의 오기인 것입니다. --고구려인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01:38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7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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