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잉글랜드 런던의 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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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7일 (월) 23:58 판

영국잉글랜드의 수도 런던의 역사는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조그만 요새 도시에 불과했던 런던은 오늘날 금융과 문화 면에서 세계를 대표하는 수도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으로 대역병, 대화재, 내전, 대공습, 테러 공격, 폭동 등의 고난을 겪어온 도시이기도 하다.

시티오브런던그레이터런던 광역권의 역사적 중심부로, 줄여서 '시티' (the City)라고도 한다. 그레이터런던 전체 규모에 비해 극히 조그만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만 런던 최고의 금융지구로 기능하고 있다.

런던의 탄생과 선사시대

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브리타니아 열왕사>에 따르면, 기원전 1000년에서 1100년경 트로이의 브루투스가 브리튼섬으로 건너와 거인 고그마고그 (Gogmagog)를 물리치고 도시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런던의 기원이 되었다 한다. 브루투스의 도시는 '카이르 트로이아' (Caer Troia), '트로이아 노바' (Troia Nova, 라틴어로 '신트로이')라고 불렀는데, 민간어원설에 의하면 이 명칭이 '트리노반툼' (Trinovantum)으로 변형되었다 한다. 트리노반트족은 로마인이 도래하기 전 이 일대에 살았던 철기시대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제프리는 선사시대의 런던 지역사에 대하여 전설 속의 왕들을 알차게 나열해 놓았다. 예컨대 루드왕 (웨일스 신화의 루드도 참고할 것)은 마을의 이름을 '카이르 루데인' (Caer Ludein)으로 바꾸었는데 여기서 런던이란 지명의 유래가 되었고, 죽어서는 루드게이트에 장사지냈다 한다.

최근 일부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런던 일대 템스강 주변에서 극초창기 정착민이 세운 마을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1993년에는 템스강 남쪽 강변의 복솔 교 상류 지점에서 청동기 시대의 다리 유적이 발견되었다.[1] 이 다리는 템스강을 가로지르거나 지금은 사라진 섬과 연결됐던 것으로 보인다. 다리 자재의 수목을 조사한 결과 그 연대가 기원전 1750년~1285년경인 것으로 드러났다.[2] 2001년 추가 발굴조사에서는 템스강 남안, 복솔교 서쪽 지반에 수직으로 박혀 있는 통나무가 발견됐다.[3] 2010년에도 복솔교 남쪽 강변에서 기원전 4800년~450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큼지막한 통나무 구조물이 발견되었다.[4][5] 측정연대가 중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물이지만 정확한 기능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못했다. 이들 유적의 공통점은 템스강의 지류인 에프라 강이 본류로 흘러드는 지점의 남안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5]

한편 런던 일대 템스 강가에서 청동기, 철기 시대의 창날과 무기가 여럿 발견된 바 있다. 이 중 대부분이 전투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아, 템스강은 부족 간의 주된 영역 경계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6] 그러나 고고학자 레즐리 월러스 (Leslie Wallace)는 "런던에서는 로마 점령기 이전 철기시대 정착지나 이렇다 할 거주 흔적이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에, 광범위한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도 불구, 런던이 순전히 로마인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 없는 통상적인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했다.[7]

고대

로마 시대 (서기 47년 ~ 410년)

 
론디니움에서 발행된 카라우시우스 동전
 
296년 알렉투스를 무찌르고 런던을 탈환한 콘스탄티우스 1세의 메달

서기 47년 브리튼섬에 자리잡은 로마인들은 '론디니움' (Londinium)이란 이름의 민간인 마을을 세웠다. 서기 43년 로마 제국이 본격적으로 브리튼섬을 침공한 뒤 4년이 흐른 뒤였다.[8] 론디니움은 로마와 마찬가지로 강변의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강의 폭이 좁아 다리를 놓기에 충분했고, 유럽 대륙 곳곳을 쉽게 누빌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기도 했다. 론디니움 시절 런던의 영역은 비교적 좁아서, 오늘날 하이드 파크의 크기와 대략 일치한다. 서기 60년경에는 부디카 여왕이 이끄는 이세니족이 쳐들어와 폐허로 변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로마식 계획도시로 빠르게 복구되었고, 수십년에 걸쳐 급속한 성장을 이어가게 되었다.

2세기에 접어들면서 론디니움의 성장은 절정에 달했고, 카물로두눔 (Camulodunum)을 대신해 브리타니아의 수도로 등극하게 되었다. 당시 인구는 6만 명에 달했으며, 주요 공공건축물도 들어서면서 도시의 자랑이 되었다. 론디니움의 바실리카는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고, 그밖에도 로마 신전공중 목욕탕, 원형극장과 도시 방어를 위한 거대 요새도 있었다. 론디니움은 로마 제국 전역의 시민들로 구성된 다민족 도시였으며, 개중에는 브리타니아 현지인은 물론 유럽 대륙 출신, 중동 출신, 북아프리카 출신도 있었다.[9]

서기 180년~225년경 로마인들은 론디니움의 육지 방면을 두르는 런던 월을 건설하였다. 장벽의 길이는 총 3km, 높이 6m, 두께 2.5m에 달했다. 지어진 이후로 자그마치 1,600년간 살아남았던 이 장벽은 수백년 뒤 시티오브런던의 경계로도 삼게 되었다. 지금의 시티오브런던을 규정하는 경계선 역시 옛 장벽의 경로를 대략적으로 따라가는 모양새다.

3세기부터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 불안과 세력권 후퇴로 론디니움의 성장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3세기 말에는 색슨족 해적으로부터 수차례 침략을 당했다.[10] 이는 255년경부터 강변 쪽에도 장벽을 추가로 증설해, 론디니움을 한바퀴 빙 두르는 형태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런던에서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도시 입구가 일곱 곳 있는데, 그 중에서 루드게이트, 뉴게이트, 올더스게이트, 크리플게이트, 비숍게이트, 올드게이트의 여섯 곳이 바로 이 로마 시대에 지어진 장벽 입구에서 유래하였다 (무어게이트는 중세 시대에 유래한 지명이다).

5세기 들어 로마 제국이 급격히 쇠퇴하고, 410년에는 브리타니아 점령도 종말을 고했다.

각주

  1. “British Archaeology, no 46, July 1999: News”. britarch.ac.uk. 2015년 6월 13일에 확인함. 
  2. URL:https://vauxhallhistory.org/vauxhall-bridge/. 2018년 6월 23일 확인. (Archived by WebCite® at https://www.webcitation.org/70OhzxO2R)
  3. “Vauxhall Bridge Survey Report” (PDF). James Dilley. 2013년 12월 9일에 확인함. 
  4. London's Oldest Prehistoric Structure. BAJR. 2018-07-06. URL:http://www.bajrfed.co.uk/bajrpress/londons-oldest-prehistoric-structure/. 2018-07-06 확인.
  5. “Thames Discovery Programme - London's Oldest Foreshore Structure!”. thamesdiscovery.org. 2015년 6월 13일에 확인함. 
  6. 보관됨 7 12월 2006 - 웨이백 머신 (Original: “Time Team – On the banks of the Thames”. 《Channel 4》 (영어). )
  7. Wallace, Leslie (2015). 《Late pre-Roman Iron Age (LPR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9쪽. ISBN 978-1107047570. 2018년 2월 16일에 확인함. 
  8. Number 1 Poultry (ONE 94), Museum of London Archaeology, 2013. Archaeology Data Service, The University of York.
  9. DNA study finds London was ethnically diverse from start, BBC, 23 November 2015
  10. “Londinium – Excavating London’s Past”. 《Rome Across Europe》 (미국 영어). 2015년 7월 30일. 2019년 7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