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상(行相, 산스크리트어: ākāra)은 마음 혹은 마음작용에 나타난 형상(形相)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소연(所緣, alambana) 즉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이미지를 말한다. 즉, 마치 거울사물이 비추이듯이 가지게 되는 이미지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영상(影像)을 말한다.[1][2] 또는 이러한 영상을 가지는 마음 또는 마음작용의 인식작용 또는 이러한 영상을 가진 마음 또는 마음작용의 인식상태를 말한다.[3][4][5]

한편, 행상(行相)은 예를 들어 4제 16행상(四諦十六行相)의 경우처럼, 단순히 부분 · 세부[局部] 또는 측면[相狀]을 뜻하기도 한다.[6][7] 이 뜻은 마음에 나타난 형상(形相) 또는 마음의 인식작용이라는 의미에서의 행상(行相)과는 구분하여야 한다. 이 문서의 이하의 내용은 마음에 나타난 형상(形相) 또는 마음의 인식작용의 의미에서의 행상(行相)에 대해 다룬다.

행상(行相)에서 (行)은 행해(行解)를 뜻하고, (相)은 상모(相貌) 즉 마음 또는 마음작용 위에 나타난 이미지형상(形相)을 뜻한다. 행해소연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미지형상(形相)를 가진 후, 마음마음작용과의 협동 작업하에 그 이미지형상(形相)을 요별하여 환히 아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음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요별로서의 행해깨달음(무루혜)과 구분하여, 행해알음알이라고도 한다.[1][2][8] 한편, '안다'는 뜻의 한자어 (知, 산스크리트어: vit)를 알음알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9][10]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의 정의 편집

행상(行相)이 사물의 형상 · 모습 또는 영상이라는 점에서는 부파불교대승불교의 견해는 일단 일차적으로는 일치한다. 하지만, 마음사물의 관계에 있어서 사물 중심의 객관중심주의의 입장에 서있는 부파불교마음 중심의 주관중심주의의 입장에 서있는 대승불교는 행상을 정의함에 있어 차이가 있다.[11][12][13]

부파불교에서는 객관사물주관마음 위에 비친 영상(影像)을 행상이라고 한다. 즉, 마음이 비친 객관모습 또는 지각된 대상모습을 행상이라고 한다.[4][5]

이에 비해 대승불교에서는 객관사물주관마음 위에 비친 영상(影像)을 인식하는 작용을 행상이라고 한다. 즉 객관에 대한 주관의 인식 상태를 행상이라 한다. 즉 인식작용견분(見分) 즉 상분(相分)에 대한 작용(作用)인 능취분(能取分)을 행상이라 한다.[14][15] 달리 말하면,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에 비친 대상의 영상이란 마음과 분리된 별도의 실체가 단순히 마음에 비추인 것이 결코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그 사물과는 별도로 완전히 마음에 의해 조작되어 형성된 것도 아닌 것으로 본다. 이것은 기본적인 세계관 또는 인식론의 차이에 따른 것인데, 객관 세계는 전변이라는 유식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대상마음이 불가분리(不可分離: 분리하려 하여도 분리할 수 없음)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에서 기인한다. 간단히 말하면, 대승불교에서는 영상(影像)이란 객관의 사물과 주관의 인식 상태 또는 인식 작용과의 결합물이라고 본다.[4][5]

유행상 편집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교학에는 유행상(有行相, 산스크리트어: sākāra)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마음마음작용' 즉 ' · 심소'를 통칭하는 유소의(有所依) · 유소연(有所緣) · 유행상(有行相) · 상응(相應)의 4가지 명칭들 가운데 하나이다.[1][2]

유행상마음(심)과 마음작용(심소)이 모두 소연(所緣) 즉 인식대상[境: 6경]에 대해 '평등하게' 행상(行相)을 일으키는 것을 부각시켜 말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여기서 '평등'은 마음(심)과 마음작용(심소)이 인식대상에 대해 행상 즉 형상을 일으킬 때 마음마음작용이 서로 간의 관계에서 종속적인 관계로 형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즉 마음마음작용이 평등하게 상호협력하면서 형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1][2]

상응과 행상 편집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의 주요 논서인 《성유식론》에 따르면, 아뢰야식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부터 전의(轉依)를 증득하기 이전까지의 모든 지위[位]에서 항상 변행심소에 속한 (觸) · 작의(作意) · (受) · (想) · (思)의 5가지 마음작용상응(相應)하는데, 이들은 '두루 작용하는 마음작용[遍行心所]'이기 때문이다.[16][17]

이 5가지 마음작용이숙식 즉 아뢰야식과는 그 행상(行相) 즉 인식작용견분이 다르다. 하지만 작용하는 때[時]가 동일하고[同], 의지처 즉 소의근[依]도 동일하며[同], 소연(所緣) 즉 인식대상상분은 비슷하고[等], 자체[事] 즉 자체분자증분도 비슷하다[等].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각각 시동(時同) · 의동(依同) · 소연등(所緣等) · 사등(事等)이라고 하며, 이들 4가지를 통칭하여 4의평등(四義平等)이라 한다. 그리고 어떤 2가지 법이 4의평등을 만족할 때 그 두 법을 상응(相應)한다고 말한다. 한편, 유식학에서는 마음마음작용의 행상 즉 인식작용견분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부파불교에서는 그것이 비슷하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4의평등행상등(行相等) 즉 유행상(有行相) 즉 행상평등(行相平等)을 추가한 5의평등(五義平等)을 말하며, 따라서 부파불교의 교학에서는 어떤 2가지 법이 5의평등을 만족할 때 그 두 법을 상응(相應)한다고 말한다.[14][15][18][19][20]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아뢰야식변행심소에 속한 (觸) · 작의(作意) · (受) · (想) · (思)의 5가지 마음작용들과 상응할 뿐, 나머지 다른 마음작용들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즉, 별경심소 · 선심소 · 번뇌심소 · 수번뇌심소 · 부정심소의 그 어느 마음작용과도 상응하지 않는다. 즉, 이들 마음작용과는 4의평등이 성립되지 않는다.[21][22]

참고 문헌 편집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남수영 (1998). 〈'유식이십론'의 극미설 비판〉. 《인도철학 제7집》. 인도철학회. 민족사.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오형근 (1988). 〈부파불교의 물질론 연구(I)〉. 《불교학보 제26집》. 동대불교문화연구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16 - T29n1558_p0022a03. '마음·마음작용'의 다른 이름
    "然心心所於契經中隨義建立種種名想。今當辯此名義差別。頌曰。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
    ...
    如心意識三名所詮義異體一諸心心所名有所依所緣行相相應亦爾。名義雖殊而體是一。謂心心所皆名有所依託所依根故。或名有所緣取所緣境故。或名有行相即於所緣品類差別等起行相故。或名相應等和合故。依何義故名等和合。有五義故。謂心心所五義平等故說相應。所依所緣行相時事皆平等故。事平等者。一相應中如心體一。諸心所法各各亦爾。"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세친 조, 현장 한역T.1558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21c16 T29n1558_p0021c16 - T29n1558_p0022a03]. '마음·마음작용'의 다른 이름"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8-190 / 1397. '마음·마음작용'의 다른 이름
    "그런데 심과 심소에 대해 계경 중에서는 그 뜻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명칭과 개념[名想]을 설정하고 있다. 이제 여기서 마땅히 이러한 명칭의 뜻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의(意)·식(識)은 그 본질이 동일하며
      심과 심소는 유소의(有所依)로도
      유소연(有所緣)으로도, 유행상(有行相)으로도,
      상응(相應)으로도 일컬어지니, 뜻에 다섯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
    ...
    심·의·식의 세 가지 명칭은 그것이 드러내는 뜻은 다를지라도 본질이 동일한 것과 마찬가지로 온갖 심과 심소를 유소의(有所依)·유소연(有所緣)·유행상(有行相)·상응(相應)으로 이름하는 것 또한 역시 그러하여, 비록 그 말의 뜻은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 즉 심·심소를 모두 '유소의(sasraya)'라고 이름하니, 소의가 되는 근(根)에 의탁하기 때문이며, 혹은 '유소연(salambana)'이라고 이름하니, 소연의 경계를 취하기 때문이며, 혹은 '유행상(sākāra)'이라고 이름하니, 즉 소연의 품류를 차별함에 있어 [심과 심소가] 평등하게 행상(行相)을 일으키기 때문이며,92) 혹은 '상응(samprayukta)'이라고 이름하니, 평등하게 화합하기 때문이다.93)
    무슨 뜻에 근거하여 '평등하게 화합한다'고 일컬은 것인가? 다섯 가지의 뜻이 있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심과 심소는 다섯 가지의 뜻에서 평등[五義平等]하기 때문에 '상응'이라고 설한 것이다. 즉 소의·소연·행상·시(時)·사(事)가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평등이란, 하나의 상응 중에서는 심의 체(體)가 하나이듯이 여러 심소도 각기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94)
    92) 여기서 '행상(ākāra)'이란 심·심소 상에 나타난 형상으로서, '행'은 행해(行解) 즉 능연이 심(心) 을 뜻하고, '상'은 상모(相貌) 즉 마음 위에 나타난 이미지를 뜻한다.
    93) 즉 평등하게 동시[俱時]에 다른 심·심소와 화합하여 소연이 되는 대상을 행해(行解)하기 때문이다.
    94) 즉 유부에서는 심과 심소는 각기 개별적 실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의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들이 상응 구기(俱起)해야만 하는데, 양자는 이 때 다섯 가지의 관계로서 상응한다. 이를테면 동일한 시간[時, kala]에, 동일한 감관[所依, raya]에 의해, 동일한 대상[所緣, alambana]에 대한 동일한 형상 즉 이미지[行相, ākāra]를 갖는데, 이 때 심과 온갖 심소 자체[事, dravya]는 각기 하나이다. 예를 들 어 어떤 순간에 눈과 푸른 항아리에 의해 푸른색의 형상을 띤 1법의 시의식이 생겨났다면, 동일한 순간에 동 일한 소의·소연을 근거로 하여 동일한 형상을 띤 1법의 수·상 등이 심과 동등한 관계[평등, samatā]로서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제4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188 188-190 / 1397]. '마음·마음작용'의 다른 이름"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3. 星雲, "行相".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行相: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Activity; performance; mental activity.
    出處: 佛光電子大辭典
    解釋: 指心(心王)及心所所具有之 認識作用或所映現之影像狀態。心、心所以各自之性能,遊行於境相之上,又行於所對境之相狀,故稱為行相。最常見者,如散見於原始佛典中之「四諦十六行 相」,即是小乘佛教用以觀悟四諦之理之修習內容。於此觀悟過程中,修行者對苦、集、滅、道四諦各自浮現四種影像於心而分別解了、觀念之。然對「行相」一詞 之解釋,俱舍與唯識二家說法不同,稱為二種行相。在俱舍宗,係指映現於心之影像;在唯識宗,則指心與心所之認識作用。
    (一)俱舍宗認可直緣心外之境,故以心、心所為能緣,以心外之境為所緣,其時,心與心所所浮現之影像即為行相。俱舍論記卷一末(大四一‧二六下):「言 行相者,謂心、心所,其體清淨,但對前境,不由作意,法爾任運,影像顯現,如清池明鏡,眾像皆現。」同書卷四又進一步闡論其義,並謂「行」為行解之意,如 了別之作用;「相」為相貌之意,如影像等,故以行解事物之相貌為行相。另據俱舍寶疏卷四載,能緣之心法於所緣之境,以品類不同,故行解於心上,亦生起品類 互異之相,如鏡照物類,於鏡面上有種種像差別之相。俱舍論頌疏卷三亦舉例說明之(大四一‧八四三下):「如緣青境,心及心所皆帶青上影像,此識上相,名為 行相。行謂行解,即能緣心也;相謂影像,即行上相也。行解之相,名為行相,依主釋也。」
    (二)唯識宗不認可直緣心外之境,而主張一切影像必於心內顯現,以之為所緣,更生起能緣之相,即心內有能緣、所緣之二相,所緣之相稱為相分,能緣之相稱 為見分,此見分即所謂之行相,是為見分行相,屬於心識之認識作用,而非影像等物。故由唯識宗之觀點而言,俱舍宗所說之行相實為相分行相,而迥異於唯識之見 分行相。成唯識論述記卷三(大四三‧三一八下):「小乘人心外有境,即以為所緣,大乘說無故,以彼小乘行相為大乘相分,大乘心得自緣,別立自體分,即以為 事,故以見分名行相。」〔成唯識論卷二、入阿毘達磨論卷下、成唯識論掌中樞要卷上、卷下、俱舍論要解卷一〕
    頁數: p2556
    出處: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 行事的相狀。行相有粗有細,如前六識的行相粗而易知,第八識的行相細而難明。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行相===瑜伽七十八卷二十頁云:行相者:當知宣說八行觀故。云何名為八行觀耶?一者、諦實故,二者、安住故,三者、過失故,四者、功德故,五者、理趣故,六者、流轉故,七者、道理故,八者、總別故。如彼卷二十頁至二十三頁廣釋。
    二解 瑜伽八十一卷四頁云:行相者:謂諸蘊相應,諸界相應,諸處相應,緣起相應,處非處相應,念住相應;如是等相應語言,或聲聞說,或如來說,或菩薩說;是名行相。
    三解 如道諦四行中說。
    四解 無性釋八卷十二頁云:於所緣中,相似而行;故名行相。
    五解 法蘊足論九卷二十二頁云:云何行界?謂六思身。即眼觸所生思,乃至意觸所生思。是名行界。
    六解 大毗婆沙論七十九卷十頁云:問:言行相者,自性是何?答:自性是慧。應知此中慧是行相。亦是能行,亦是所行。與慧相應心心所法,雖非行相;而是能行,亦是所行。與慧俱有不相應行,及餘有法,雖非行相;亦非能行;而是所行。有作是說:言行相者,總以一切心心所法為其自性。若作是說:諸心心所,皆是行相,亦是能行,亦是所行。餘一切法,雖非行相,亦非能行;而是所行。復有說者。所言行相,以一切法為其自性。若作是說;諸相應法、亦是行相,亦是能行,亦是所行。不相應法、雖是行相,亦是所行;而非能行。評曰:應作是說:言行相者,自性是慧。如初所說。如是名為行相自性我物自體相分本性。已說自性;所以今當說。問:何故名行相?行相是何義?答:於諸境相、簡擇而轉;是行相義。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解釋: ākāra; saṃskṛta-lakṣaṇa; gati; ākaraṇa, ākāraṇa, ākāratas, gāmin, carita, dharma, prakāra, pracāra, sākāra.
    頁數: P.3345"
  4. 운허, "行相(행상)".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行相(행상):
    [1] 소승에서는 주관의 인식 대상, 곧 객관의 사물이 주관인 마음 위에 비친 영상(影像)을 말함.
    [2] 대승에서는 주관의 인지하는 작용을 말하니 곧 마음에 비친 객관의 영상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운허"[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8A18CE79BB8rowno4 行相(행상)]". 2013년 4월 5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5. 곽철환 2003, "행상(行相)". 2013년 4월 5일에 확인
    "행상(行相): 산스크리트어 ākāra
    ① 사물의 형상·모습.
    ② 마음에 비친 객관의 모습. 주관에 형성된 대상의 모습. 지각된 대상의 모습.
    ③ 마음에 비친 객관의 모습을 인식하는 작용. 객관에 대한 주관의 인식 상태.
    ④ 관념."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곽철환2003"[httpstermsnavercomentrynhncid2886docId905770categoryId2886 행상(行相)]". 2013년 4월 5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6. 阿含辭典, "行相". 2013년 4월 27일에 확인
    "您所查詢的「行相」:
    有行有相貌: 南傳作「有這樣的行相與境遇」(sākāraṃ sa-uddesaṃ),菩提比丘長老英譯為「具他們的樣子與細節」(with their aspects and details, AN),「具他們的樣式與細節」(with their modes and details, SN)「具他們的樣子與局部」(with their aspects and particulars, MN)。"
  7. 星雲, "十六行相". 2013년 2월 2일에 확인
    "十六行相:  梵語 sodaśākārāh。又作十六行、十六行觀、十六行相觀、十六聖行、十六諦、四諦十六行相。行相,相狀之意。觀四諦時,各有四種差別,於其時所產生之行相共有十六種。據俱舍論卷二十六所載,苦聖諦有四相(苦諦四相):(一)非常(梵 anitya),待緣而成故。(二)苦(梵 duhkha),逼迫性故。(三)空(梵 śūnya),違我所見故。(四)非我(梵 anātman),違我見故。集聖諦亦有四相(集諦四相):(一)因(梵 hetu),其理如種子。(二)集(梵 samudaya),同於顯現之理。(三)生(梵 prabhava),能令續起。(四)緣(梵 pratyaya),能令成辦;譬如泥團、輪、繩與水等眾緣,和合而成一瓶。滅聖諦亦有四相(滅諦四相):(一)滅(梵 nirodha),諸蘊盡故。(二)靜(梵 śānta),三火息故。(三)妙(梵 pranīta),眾患無故。(四)離(梵 nihsarana),脫眾災故。道聖諦亦有四相(道諦四相):(一)道(梵 mārga),通行義故。(二)如(梵 nyāya),契正理故。(三)行(梵 pratipad),正趣向故。(四)出(梵 nairyānika),能永超故。十六行相名雖十六,實事唯七。謂緣苦諦者,名實俱四;緣餘三諦者,名四實一。說十六行相之目的,為治常、樂、我所、我見等見,故修非常、苦、空、非我等行相;為治無因、一因、變因、知先因等見,故修因、集、生、緣等行相;為治解脫是無之見,故修滅行相;為治解脫是苦之見,故修靜行相;為治靜慮及等至之樂為妙之見,故修妙行相;為治解脫是數數退墮而非永恆之見,故修離行相;為治無道、邪道、餘道、退道之見,故修道、如、行、出等行相。〔坐禪三昧經卷下、正法念處經卷三十四、大毘婆沙論卷七十九〕"
  8. 운허, "行解(행해)". 2012년 12월 28일에 확인
    "行解(행해): 주관인 심식(心識)이 객관인 대상에 작용하여, 그 모양을 분별하고 환히 깨치는 알음알이."
  9. 용수 조, 구마라습 한역 & T.1509, 제2권. p. T25n1509_p0072a21 - T25n1509_p0072a29. 노가비(路迦憊)
    "復名「路迦憊」:「路迦」秦言「世」,「憊」名「知」——是名知世間。 問曰:云何知世間? 答曰: 知二種世間,一眾生,二非眾生。及如實相知世間、世間因、知世間滅、出世間道。 復次,知世間,非如世俗知,亦非外道知;知世間無常故苦,苦故無我。 復次,知世間相,非有常非無常,非有邊非無邊,非去非不去,如是相亦不著,清淨、常不壞相如虛空——是名知世間。"
  10. 용수 지음, 구마라습 한역, 김성구 번역 & K.549, T.1509, 제2권. p. 87 / 2698. 노가비(路迦憊)
    "또한 노가비(路迦憊)154)라고도 한다. 노가(路迦)155)는 진나라에서는 세간[世]이라고 하고 비(憊)156)는 알다[知]라 하니, 이는 ‘세간을 아는 분’이 된다.
    [문] 어떻게 세간을 아는가?
    [답] 두 가지 세간을 아나니, 첫째는 중생이요 둘째는 비중생이다. 나아가 실상 그대로 세간과 세간의 원인을 알며, 세간의 멸과 출세간의 도를 안다.
    ‘세간을 안다’ 함은 세속의 알음알이 같은 것은 아니며, 또한 외도의 알음알이도 아니다. 세간은 무상한 까닭에 고이며, 고인 까닭에 무아라고 아는 것이다.
    세간의 모습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며, 끝이 있음도 아니고 끝이 없음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모습에도 집착되지 않고 청정하여 항상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 허공과 같다고 아는 것이다.
    이것을 ‘세간을 안다’ 하는 것이다.
    154) 범어로는 Lokavit. 여래 10호 가운데 하나이다. 의역해서 세간해(世間解)라고도 한다.
    155) 범어로는 Loka. 세상을 뜻한다.
    156) 범어로는 vit."
  11. 권오민 2003, 56–61쪽.
  12. 남수영 1998, 205–206쪽.
  13. 오형근 1988, 1쪽.
  1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1c26. 상응(相應)
    "此五既是遍行所攝。故與藏識決定相應。其遍行相後當廣釋。此觸等五與異熟識行相雖異。而時依同所緣事等。故名相應。"
  1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 125 / 583. 상응(相應)
    "이 다섯 가지는 변행심소에 포함되기 때문에 장식(藏識)과 반드시 상응한다. 그 변행심소의 양상은 나중에33) 마땅히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이 촉 등 다섯 가지 심소는 이숙식과 인식작용[行相:見分]이 다르지만,34) 작용하는 때[時] · 의지처[依]가 동일하고[同], 인식대상[所緣:상분] · 자체[事:자체분]는 비슷하다[等].
    따라서 ‘상응(相應)’이라고 이름한다.35)
    33) 이 논서의 제5권에서이다.
    34) 유식학에서 심왕과 심소는 자체가 다르다고[王所體別說] 보기 때문에 인식작용[行相:견분]을 달리한다. 심왕은 대상의 전체적인 윤곽[總相]을 취하고, 심소는 총체적인 모습과 함께 구체적인 모습[別相]까지 취함으로써,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35) 『삼십송』의 제3게송에서의 상응(相應)이라는 말을 해설한다. 상응(相應, saṁy- ukta)의 개념에는 네 가지 뜻[四義]이 있다. 즉 첫째 심왕과 심소가 현기(現起)함에는 시간이 동일하고[時同], 둘째 심왕과 심소는 감각기관[所依根]이 동일하고[依同], 셋째 심왕과 심소는 그 인식대상[所緣:相分]이 비슷하고[所緣等], 넷째 심왕과 심소는 그 자체분[事]이 비슷하다[事等]. 여기서 사등(事等)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즉 유식학에서는 왕소체별설(王所體別說)의 입장이므로, 심왕과 심소가 동일찰나에 비슷한 대상에 각기 하나씩 현기(現起)한다. 그 수(數)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씩 일어나므로, 자체분이 비슷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사의평등(四義平等)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식학에서는 심왕과 심소의 인식작용[行相:견분]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소승에서는 그것이 비슷하다고 보고 사의평등에 행상등(行相等)을 첨가해서 오의평등(五義平等)을 말한다."
  16.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1b16.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此識與幾心所相應。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阿賴耶識無始時來乃至未轉。於一切位恒與此五心所相應。以是遍行心所攝故。"
  17.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 118 / 583.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이 식(識)은 몇몇 심소(心所와 상응하는가?1)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와 상응한다. 아뢰야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전의(轉依)2)를 이루기 이전3)까지 모든 지위에서 항상 이 다섯 가지 심소와 상응한다. 이것은 두루 작용하는 심소[遍行心所]4)이기 때문이다.
    1) 이하 아뢰야식과 상응하는 5변행심소(遍行心所) 각각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것을 심소상응문(心所相應門)이라고 한다.
    2) 전의(轉依, āśraya-parāvṛtti) 수행에 의해 ‘소의(所依:依他起)를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의타기성, 8식 혹은 持種依인 아뢰야식)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로부터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8식이 네 가지 지혜로 전환된다[轉識得智]. 곧 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전환된다.
    3)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를 가리킨다.
    4) 변행심소(遍行心所)는 8식 모두에 언제나 상응해서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의 3성(性)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遍起], 3계(界) · 9지(地) 어디에서나 작용한다[一切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一切時], 변행의 5심소는 언제나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一切俱]. 이에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가 있다."
  18. 星雲, "四義平等". 2013년 4월 4일에 확인
    "四義平等:  謂心王與心所相應關係有四種平等。此乃唯識宗之主張。即:(一)時平等,謂心王心所同一剎那生起作用。(二)所依平等,謂心王心所二者之所依相等。(三) 所緣平等,謂心王心所所緣之相分非同一,但卻相似。(四)事平等,謂心王心所之自體分非同一而卻類似。成唯識論卷三(大三一‧一一下):「行相雖異,而時依同所緣事等,故名相應。」
     俱舍宗於上述四義平等之外,認為心王與心所對於所緣之外境,其行解之相亦皆平等,即行相平等。故俱舍宗主張五義平等。〔俱舍論卷四〕(參閱「五義平等」1169) p1784"
  19. 星雲, "五義平等". 2013년 4월 4일에 확인
    "五義平等:  心王與心所互相對應作用(相應法),共有五義,即:(一)所依平等,如心王依眼根,心所亦依眼根;此乃兩者依於相等之事物。(二)所緣平等,指心王與心所所取之對象平等。(三)行相平等,指心王、心所中顯現之對象的形態平等。(四)時平等,心王與心所同時作用,故稱時平等。(五)事平等,心王與心所作用時,乃一個心王與同一種類之心所起作用,並非同時有兩個以上的心王或心所。亦有主張除去行相平等,而說四義平等者。〔俱舍論卷四〕 p1169"
  20. 운허, "五義平等(오의평등)". 2013년 4월 4일에 확인
    "五義平等(오의평등): 불교에 대한 심리(心理)의 설명에서 마음의 작용을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의 둘로 나눔. 이 심왕과 심소가 서로 응하여 여의지 않는 데 5의가 있으므로, 5의평등이라 함. (1) 소의평등(所依平等). 눈ㆍ귀 등의 6식. 심왕이 눈ㆍ귀 등의 6근(根)에서 어느 것을 소의(所依)로 할 때 심소도 심왕과 같은 소의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 (2) 소연평등(所緣平等). 심소는 심왕과 동일한 대상(所然)을 취하는 것. (3) 행상평등(行相平等). 심왕과 심소가 동일한 행상을 생각하여 떠오르게 하는 것. (4) 시평등(時平等). 심왕ㆍ심소의 작용이 동시인 것. (5) 사평등(事平等). 사(事)는 체(體)란 뜻. 심왕과 심소가 각각 체가 하나인 것."
  2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10. 아뢰야식의 비상응
    "如何此識非別境等心所相應互相違故。謂欲希望所樂事轉。此識任運無所希望。勝解印持決定事轉。此識瞢昧無所印持。念唯明記曾習事轉。此識昧劣不能明記。定能令心專注一境。此識任運剎那別緣。慧唯簡擇德等事轉。此識微昧不能簡擇。故此不與別境相應。此識唯是異熟性故。善染污等亦不相應。惡作等四無記性者。有間斷故定非異熟。"
  2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 127 / 583. 아뢰야식의 비상응
    "[문] 어째서 이 식은 별경심소(別境心所) 등과 상응하지 않는가?40)
    [답]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욕(欲)심소는 좋아하는 것을 희망하여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업에 따르며 희망하는 것이 없다. 승해(勝解)심소는 결정된 사물을 분명히 지녀서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몽매하여 분명히 지니는 바가 없다. 염(念)심소는 오직 예전에 익힌 일을 분명하게 기억해서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어둡고 미약해서 분명히 기억하지 못한다. 정(定)심소는 능히 심왕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기울이게 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자연히 찰나마다 따로 반연한다. 혜(慧)심소는 오직 덕(德) 등의 일을 간택해서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미세하고 어두워서 간택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것은 별경심소와는 상응하지 않는다.
    이 식은 오직 이숙성이기 때문에 선 · 염오 등의 심소와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다.41)
    오작(惡作) 등 네 가지42)에 대해서는, 무기성이긴 하지만 잠시 단절됨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숙이 아니다.
    법에 네 가지가 있으니 선(善)과 불선(不善), 유부무기(有覆無記)
    40) 다음에 제8식이 5변행심소 이외에 다른 심소와 함께하지 않는 까닭을 밝힌다. 이것은 외인(外人)의 질문이다.
    41) 제8식이 선심소(善心所) · 번뇌심소(煩惱心所) ·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와 상응하지 않음을 밝힌다.
    42) 네 가지 부정심소(不定心所), 즉 회(悔)ㆍ면(眠)ㆍ심(尋)ㆍ사(伺) 심소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