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화인(華人, 영어: overseas Chinese)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그 나라에 활동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한국어권에서는 화교(華僑)라고 통칭한다. 한국, 동남아시아, 미국,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등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수는 약 4천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로 광동, 복건계가 많지만, 최근에는 상하이나 베이징계 화교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출신지와 거주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며, 최근에는 표준 중국어와 영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주로 광동, 복건 등의 화남 지방 출신이 많다. 또한 화교들은 중국인 혼혈아들이다.
- 화교(華僑) :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또는 대만(중화민국))에서 태어나 중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해외에서 이민자로 체류하는 사람. 한국어권에서는 화교·화인·화예를 구분하지 않고 화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 화인(華人) : 체류국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 넓은 의미로 화교·화인·화예를 구분하지 않을 때는 화인이라 부른다.
- 화예(華裔) : 국적에 관계없이 중국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 민족을 말합니다. 중화 인민 공화국 정부는 해외화인(海外華人)이라 부르며 시민권에 관계없이 중국 외부에 거주하는 중국 민족을 지칭하기 위해 간혹 사용합니다. 좁은 의미로는 완전히 체류국에 동화된 사람만을 가리킨다.
![]() 海外华人 | |
총인구 | |
5천만 명 이상![]() ![]() ![]() ![]() ![]() ![]() ![]() ![]() ![]() ![]() ![]() ![]() ![]() ![]() ![]() ![]() ![]() ![]() ![]() ![]() ![]() ![]() ![]() ![]() ![]() | |
언어 | |
중국어 이외 | |
종교 | |
주로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소수의 이슬람교 | |
민족계통 | |
근연민족 | 중국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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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화교편집
서방의 화교들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육체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뿌리를 내렸는데, 미국 건설노동자, 설탕 제조에 필요한 사탕수수 추수 노동자 등으로 근무했다.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의 부인 호미리도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계 화교이다.
한국의 화교편집
한국에 있는 화교들은 중국인 혼혈아들이다. 이 중국인들은 중국에 있을 때 예전부터 몽골인과 만주족의 지배하에 의해 강제로 몽골인과 만주족에 혼혈화되기도 하였다. 한국에 화교 사회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며 임오군란으로 군인들이 인천에 있을 때 그들의 식사와 허드랫일들을 도우기 위해 파견된 청나라 소작농과 노비 등 하층민 중국인 남성 여성들이 인천에 건너왔고 생업을 위해 상업을 하였다. 군인들은 몇 년 지나고 모두 돌아갔지만 이들은 청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돌아가지 못하고 인천에 살기 시작했다. 청나라는 서양 열강들에 거의 반식민지화되면서 식민지와 조계지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임오군란을 핑계로 조선을 속국으로 명시하고 서양 열강들처럼 인천에 조계지를 설치하였고 중국 화교들은 청나라의 지령으로 조선의 서민들을 수탈의 대상으로 삼으며 경제적 수탈을 행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화교에 의한 경제적 수탈에 의해 조선에서 약 1억엔이라는 자본 유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 의한 만보산 학살 등도 일어났으며 조선인들이 화교들의 후안무치에 폭동을 일으켜 화교 배척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20세기 초반부터 요식업에 종사하는 화교가 늘어났다. 거의 대부분 중국 대륙에서 건너 왔지만, 도중에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인해, 국적은 종전의 중화민국으로 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화교가 경제적인 실권을 쥐는 것을 지속적으로 견제해 왔는데 1961년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으로 화교들의 부동산 소유를 제한했고 1962년 화폐개혁 등으로 돈을 끌어냈다. [3] 이어 1884년 인천 제물포항 주변에 청국조계지가 설정되면서 본격적으로 화교가 들어와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4] 그러나 화교 사회는 우리 정부의 각종 제도적 제한과 차별 대우 아래 위축되어 갔다.[5][6] 10만명에 가깝던 화교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70년대까지 화교 경제 진출을 막기 위해 각종 제한을 걸어 대만, 홍콩, 마카오 등으로 이주해 한때 2만명까지 줄었다. 그 이후 1998년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정책이 시행되면서 2001년도에는 22,917명으로 점차 안정적이 되었다. 1990-2000년대 이후 다시 돌아오고 있어 2010년대 귀화자를 포함한 화교 인구는 5만명 정도이다. 2010년 기준으로 화교 숫자는 21,490명 수준이다. 이중에 13,316명이 영주권비자(F-5)이며 거주비자(F-2)는 6,569명이다. 다만 이들은 자발적인 집계이고 실제 숫자는 현재 화교 3세까지 합산하면 5만명 가량이며 모계가 화교인 혼혈들까지 합하면 10만명 가량이다. [7]
지역 | 화교 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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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8,769명 |
경기도 | 2,484명 |
인천광역시 | 2,839명 |
부산광역시 | 1,732명 |
대구광역시 | 871명 |
충청남도 | 647명 |
전라북도 | 585명 |
충청북도 | 569명 |
강원도 | 558명 |
대전광역시 | 514명 |
경상북도 | 432명 |
경상남도 | 358명 |
광주광역시 | 334명 |
제주시 | 295명 |
울산광역시 | 282명 |
전라남도 | 221명 |
신 화교편집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에 대한민국에 새로 들어온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족들과 한족 혹은 기타 종족의 중국인을 말한다. 이들의 숫자는 이미 100만을 넘었다.
동남아시아의 화교편집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예전부터 이민을 왔다.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등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같이 보기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 죽망(竹網, en:Bamboo network)
- 재일 중국인
- 재일 대만인
- 인도네시아 화교 - 세계 최대의 화교(2010년 기준 약 880만 명, 전 국민의 3.7% 차지)
- 중국계 싱가포르인(en:Chinese Singaporean) - 싱가포르에서 최다민족(2011년 기준 약 280만 명, 전 국민의 74.1% 차지)
- 강화어운동(講華語運動, en:Speak Mandarin Campaign, SMC) - 동남아 화교 중 유일하게 간체자 사용 이유.
- 말레이시아 화교
- 중화학교
- 월교
각주편집
- ↑ “Department of Statistics Malaysia Official Portal”. 2017년 2월 6일에 확인함.
- ↑ “Asian Alone or in Any Combination by Selected Groups: 2015”. U.S. Census Bureau. 2017년 8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0월 15일에 확인함.
- ↑ http://www.d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5107
- ↑ http://news.donga.com/3/03/20141208/68426101/1
- ↑ “보관된 사본”. 2015년 12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2월 22일에 확인함.
-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9365
- ↑ http://news.mk.co.kr/newsRead.php?no=990922&year=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