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 하씨
진양 하씨(晋陽 河氏 또는 晋州 河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하공진(河拱辰), 하진(河珍), 하성(河成)의 세 계통으로 알려졌으나, 하성의 계대가 1828년 순조 28년에 발간된 사직공파<진양하씨세보 무자보>가 발굴되어 사직공파의 계보로 밝혀졌다.[1][2] 오늘날 진주 하씨로 통용되어 있다.
이칭 | 진주 하씨(晋州 河氏) |
---|---|
나라 | 한국 |
관향 | 경상남도 진주시 |
시조 | 하공진(河拱辰) 하진(河珍) |
집성촌 | 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남도 남해군 경상남도 창녕군 경상남도 합천군 경상북도 경주시 |
주요 인물 | 하륜, 하연, 하위지, 하응림, 하재세, 하경덕, 하승무 |
인구(2015년) | 226,143명 |
역사
편집하씨는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성씨라고 전해지지만 확실한 정보가 없다. 《진양하씨대동보에 따르면 하씨는 고려시대부터 넓은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충렬왕 때 하즙이 선조들이 진양대도호부에 모여 사는 것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 조선 문종 때의 문신인 영의정 하연이 편찬한 《경태보》[3]에 따르면 진양 하씨는 조상을 같이하는 3가지 계통이 있으며, 같은 조상을 뿌리로 뒀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 시랑공파(侍郞公波) - 시조 하공진(河拱辰) 고려 현종 때 좌사시랑(左司侍郞)을 역임했고 사후에 평장사(平章事)가 되었다.
- 사직공파(司直公波) - 시조 하진(河珍)은 정종과 문종에 걸쳐 사직(司直)을 역임했다.
진양 하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4명과 상신2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하였다.
인구
편집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진양 하씨는 총 226,143명이다.
조사 연도 | 전체 인구 (명) | 가구 | 남자 (명) | 여자 (명) | |
---|---|---|---|---|---|
1985년 | 178,866 | 43,237 | 정보 없음 | 정보 없음 | |
2000년 | 192,869 | 60,705 | 98,365 | 94,504 | |
2015년 | 226,143 | 113,616 | 112,527 |
지역별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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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을 기준으로 KOSIS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진양 하씨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38,573명으로 본향인 경상남도이다. 그 다음으로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경기도 순서대로 많이 거주하며, 가장 적게 거주하는 곳은 제주도이다. 약 21%의 진양 하씨가 경상남도에 거주하고, 약 18%의 진양 하씨가 서울특별시에 거주한다. 0.4%의 진양 하씨만이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다.[4] 1985년과 비교해 인구는 14,003명, 가구는 17,468가구 증가했다.그리고 진양 하씨의 전체 씨족 인구 중, 80% 이상이 사직공파 후손 가운데 문효공 하연 선생의 후손이다.[5]
지역 | 전체 인구 (명) | 가구 (가구) |
---|---|---|
전국 | 178,866 | 43,237 |
서울특별시 | 33,134 | 8,128 |
부산광역시 | 30,117 | 7,155 |
대구광역시 | 11,524 | 2,866 |
인천광역시 | 4,622 | 1,144 |
경기도 | 13,013 | 3,226 |
강원도 | 3,102 | 761 |
충청북도 | 3,197 | 731 |
충청남도 | 7,211 | 1,566 |
전라북도 | 9,590 | 2,146 |
전라남도 | 11,298 | 2,579 |
경상북도 | 12,601 | 3,150 |
경상남도 | 38,573 | 9,567 |
제주특별자치도 | 893 | 218 |
항렬자
편집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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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賢) 수(秀) |
운(運) 도(圖) |
재(載) 치(致) |
진(鎭) 준(駿) |
영(永) 석(錫) |
근(根) 태(泰) 제(濟) |
병 (炳)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
경□(慶) | □기(基) | □진(鎭) | □낙(洛) □홍(泓) |
영□(榮) 룡□(龍) 상□(相) |
□섭(燮) □용(容) □대(大) |
주□(周) 재□(在) 원□(垣) 재□(載)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선(善) □호(鎬) □종(鍾) □석(錫) |
태□(泰) 홍□(洪) 청□(淸) 옥□(沃) |
□래(來) □수(秀) □목(穆) □권(權) |
헌□(憲) 성□(性) 연□(然) |
□철(喆) □준(埈) □배(培) |
상□(商) 정□(鋌) 용□(鏞) |
□순(淳) □해(海) □구(求)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동□(東) 병□(柄) 병□(秉) |
□희(熙) □열(烈) |
중□(重) 규□(圭) |
□전(銓) □현(鉉) |
준□(準) 영□(永) |
□식(植) □근(根) |
환□(煥) 병□(炳) |
진양하씨 사직공파 발상지 집성촌
편집-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여사촌
인물
편집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새로 편찬된 2000년판 진양 하씨 사직공파 대동보에 충렬공 하위지 선생의 계보가 합보되었다. 이유인즉, 하위지의 계보가 하성을 시조로 하는 후일 명명된 단계공파(丹溪公波))의 8세손으로 알려져 왔으나, 하위지의 부친인 하담(河澹) 이전의 하성으로 하는 시조(계보)로 하는 계보를 역사적 문헌으로 상고할만 자료가 전혀 없는 가운데 1828년 순조 28년에 발간된 사직공파<진양하씨세보 무자보>가 발굴되어 상고해보니, 단계공파의 동일 계대와 하위지 선생의 부친인 하담 선생이 진양 하씨 사직공파의 6세손인 하의(河義) 선생과 동일한 계대로 밝혀짐에 따라 진양하씨대동보 2000년판 경진보에 합본되고 하위지 선생은 사직공의 13세손으로 밝혀지게 된 것이다. 아울러 19세기 해남윤씨 종가에서 발간한 종합보인 <만가보>를 보더라도 하담 이전의 계대가 사직공파의 계대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은 보면 이는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하승무 저,<晉陽河氏 家門人物硏究(2015년)>"
- ↑ 무자보 자료링크 [1]
- ↑ 조선조 최초의 족보인 문화 류씨 영락보에 다음으로 편찬한 진양 하씨의 세보를 최초로 밝혀낸 서문
- ↑ “행정구역(구시군)/성씨·본관별 가구 및 인구”. 국가통계포털. 2014년 8월 27일에 확인함.
- ↑ “행정구역(구시군)/성씨·본관별 가구 및 인구”. 국가통계포털. 2014년 8월 27일에 확인함.
- ↑ “진주하씨(晋州河氏)”. 뿌리를 찾아서. 2014년 9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8월 27일에 확인함.
- ↑ “晋陽 河氏 司直公波 大同 항렬도”. 晋陽河氏 司直公波. 2015년 2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8월 2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