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익(高宗益, 일본식 이름: 高島宗益, 高山宗益, 1915년 1월 17일 ~ 1995년 8월 5일)은 한국바리톤 성악가이다.

고종익
기본 정보
출생1915년 1월 17일
일제강점기의 기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사망1995년 8월 5일(1995-08-05) (향년 80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별남성
직업성악가
장르서양 고전음악

생애 편집

1935년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전국남녀현상콩쿠르대회에서 이인범과 함께 성악 부문 2위로 입상했다.[1]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 음악보국 음악회에 출연했고, 1943년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조직한 국민가창지도대라는 친일 음악 단체에 가입하여 지방을 순회하며 군국가요를 보급했다. 이 단체에는 현제명을 중심으로 마금희, 김성태, 이흥렬 등이 참여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포함되었다.

대한민국 초창기 오페라계에서 활동했다. 1948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가 공연되었을 때 출연했고,[2] 1950년 초에 공연된 《카르멘》에도 출연했다.[3]

한국 전쟁 개전 초기 조선인민군서울을 점령한 뒤 대한민국 출신 음악가들로 조직한 경비대협주단의 합창부에 속해 있다가 인민군이 후퇴할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4] 1956년부터 1962년까지 평양시 인민대의원을 역임했으며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참고자료 편집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4월 1일). 〈현제명 : 일제 말 친일음악계의 대부 (노동은)〉. 《친일파 99인 3》.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31. 
  • 송방송, 〈판소리 전통의 창조적 계승문제〉 (1990년 국악원 학술회의)

각주 편집

  1. 나운영 (해제: 홍정수). “홍난파에 관한 메모(1)”. 나운영기념사업회. 2007년 11월 8일에 확인함. 
  2. 예술로, 춘희 Archived 2007년 11월 8일 - 웨이백 머신
  3. 1950년 초에~: 국립극장, 국립극장 50년사 - 2. 본론 Archived 2007년 9월 28일 - 웨이백 머신
  4. 황문평 (1988년 9월). “기획특집/ 해방공간(1945∼50)의 우리 문화예술*대중예술 - 내일을 지향하는 대중예술의 가치관 정립”. 《문화예술》. 2007년 9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8월 1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