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관
김상관(金尙寬, 1566.1.9~1621.5.1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율(仲栗), 호는 금시재(今是齋) 본관은 (신)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都正)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김극효(金克孝)이고 어머니는 좌의정(左議政)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의 딸이다. 5남 중 둘째로 형은 우의정(右議政) 선원 김상용(金尙容)이고, 아우로 진사 김상건(金尙謇), 좌의정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경주부윤(慶州府尹) 김상복(金尙宓), 종형으로 형조참판(刑曹參判) 휴암 김상준(金尙寯)이 있다.
생애편집
음보(蔭譜)로 관직에 오른 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았다. 1599년(선조32년)에 호조정랑(戶曹正郞)으로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나라 파견군대에 군량을 조달·지원하였다. 그뒤 1604년(선조37년) 다시 호조정랑(戶曹正郞)으로 임용되었다. 1607년(선조40년) 진산군수(珍山郡守)로 부임하였고, 회양부사(淮陽府使), 판관(判官)을 거쳐 한달 내에 한번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진했다가 사헌부(司憲府)로부터 탄핵을 받은 적도 있었으나, 1609년(광해군1년)에 장단부사(長湍府使)로 부임했다.
둘째아들 김광찬(金光燦)은 삼촌인 청음 김상헌의 양자로 들어갔는데 그의 후손들이 조선후기 정권을 좌지우지했으며 조선말기 세도정치의 주역이였다. 김광찬 김수항 김창집 김제겸 김달행 김이중 김조순 김좌근 김병기로 이어지는 세도가문의 실제 선조이다. 첫째아들 김광혁(金光爀)은 1612년(광해군4년) 임자 식년사마시(壬子式年司馬試)에 진사 1등으로 합격하고, 1624년(인조2년) 갑자 알성문과(甲子謁聖文科)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냈다. 사후 후손들이 현달(顯達)하여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종1품 증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남양주시 이패동 산12-4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