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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길(鄭惟吉, 1515년 11월 30일[1] ~ 1588년 9월 28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선조 때 좌의정을 지냈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의 손자이며, 강화부사 정복겸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사간원정언을 지내고 정언과 이조정랑을 거쳐 당시에 홍언필, 윤인경, 성세창, 유관, 윤임, 정사룡, 신광한, 심연원, 유인숙, 권벌, 윤개 등과 윤원로를 탄핵해서 귀양을 보냈고, 이후 명종 때 의정부검상, 의정부사인을 지냈는데 검상, 사인에 이어 사헌부집의로 승진했다. 그리고 사복시부정을 거쳐 홍문관부교리가 되고, 시독관이 되어 명종의 총애를 받는다. 이후 시강관을 거쳐 교리로 있을 때 이준경, 이윤경, 심연원, 홍섬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하기도 했다. 이후 홍문관부응교, 홍문관응교로 승진을 하면서 대윤 잔존 세력과 연대를 했고, 훈구파와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서 존경을 받는다. 이후 시강관과 사인을 거쳐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오르며 명종의 총애를 얻어, 당시 조선의 폐단을 개혁하려 애썼고 이어서 명종의 총애로 좌부승지로 초배된다. 이후 참찬관과 색승지를 거쳐 우승지가 된다. 이후 도승지가 되는데, 도승지 시절에 이탁, 이명, 심연원, 홍섬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지만 윤원형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이후 홍문관부제학이 되며 윤개, 이량, 홍섬, 심연원, 심통원, 노수신, 이명, 정사룡, 신광한, 홍담 등과 반 윤원형 세력에 서게 되고, 참찬관을 겸하며, 이량 일파에 들어갔고, 심연원, 심통원, 이명, 이량, 정사룡, 이탁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하였다. 이후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다시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 이후 도승지로 참찬관을 겸했고, 이후 사헌부대사헌이 되고, 홍문관부제학을 겸하다 대사헌, 예조참판, 이조참판으로 승진하고 예조판서대제학으로 곧 승진한다. 이후 우참찬, 이조판서, 공조판서까지 되지만, 이량 일파로 몰려 탄핵을 받아 조정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이후 훈구파와 서인들과의 지속적인 친분으로 지중추부사가 되고,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숭정대부에 오르고 특진관을 겸하고 다시 예조판서가 되고 우찬성, 좌찬성으로 오르고, 병조판서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각주편집

  1. 『정유길 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