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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법조인)

대한민국의 법조인

김용준(金容俊, 1938년 12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용준
金容俊
대한민국 제2대 헌법재판소 소장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출생일 1938년 12월 2일(1938-12-02) (79세)
출생지 일제 강점기 경성부
본관 광산(光山) 양간공파 > 전리판서공파 > 전서공파 > 둔암공파 > 병사공파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석사
경력 제2대 헌법재판소장
한양대학교 법학과 초빙교수
한나라당 법률행정위원
새누리당 헌법연구위원
자유한국당 헌법교육연구위원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정당 무소속

목차

생애편집

광산김씨 -양간공파 > 전리판서공파 > 전서공파 > 둔암공파 > 병사공파 조선총포화약주식회사(한화그룹 전신) 대표를 지낸 김봉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시절 아버지가 납북되는 바람에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으며 그 이유로 원하던 고등학교인 경기고교에 진학하지 못하기도 했다. 서울고등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1957년 제9회 고등고시 사법과에서 합격함으로써 최연소 수석합격자가 되었으며, 1960년에는 최연소 판사가 되었다.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법조계 활동을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에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담당[1] 하기도 했고, 1994년 대법관을 물러난 후 2000년까지 헌재소장을 역임했다.

헌재소장에서 퇴임한 뒤에는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장, 대검찰청 공안자문위원장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지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법률문화상도 수상했다.

그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어왔으나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며 2013년에는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 지명되었으나 각종 의혹이 제기되어 5일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주요 경력편집

  • 1957년 : 제9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 1960년 : 대구지방법원 판사
  • 1961년 : 서울지방법원 판사
  • 1966년 : 서울고등법원 판사
  • 1969년 : 대법원 재판연구관
  • 1970년 : 서울고등법원 판사
  • 1973년 : 사법연수원 교수
  • 1973년 :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 1975년 :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 1977년 : 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
  • 1979년 :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 1980년 :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
  • 1981년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1984년 : 서울가정법원장
  • 1988년 : 대법원 대법관
  • 1994년 : 제2대 헌법재판소장
  • 1997년 : 한양대학교 법학과 초빙교수
  • 2000년 :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 2004년 :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 2011년 : 법무법인 넥서스 고문변호사
  • 2012년 : 새누리당 중앙선거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2012년 :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논란편집

형제복지원 사건 판결편집

자녀 병역기피 의혹편집

준비단은 김용준의 두 아들이 체중미달, 통풍 등의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했다.[2] 서영교 의원은 "김용준의 장남의 키가 170cm 안팎이라며, 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45㎏ ~ 47㎏은 돼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170cm인 장남에게 체중이 45㎏ ~ 47㎏이 될 순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민주당 관계자도 "통풍은 아무리 빨라도 40대 쯤에 오는 질환인데 20대였던 차남에게 올 리는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내부정보 통한 부동산 매입 의혹편집

2013년 1월 28일 서울신문은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두 아들의 공동 명의로 편법 증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땅이 대법원검찰청 등의 법조 기관이 들어선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땅을 매입해 시세 차익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보도하였다.

김 후보자의 두 아들 소유인 부동산의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서초동 부동산 매매 계약은 김 후보자가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었던 1975년 8월 1일에 이뤄졌고 매매 계약일 3일 후에 8월 4일자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가 대법원, 검찰청 등 11개 사법 기관을 비롯한 주요 기관을 서초동으로 이전하는 ‘서울시 인구 집중 억제 시안’을 마련해 경제차관회의에 보고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는 것이다. 실제 주요 법조 기관들이 서초동으로의 이전을 확정, 추진한다는 사실이 공식 확정된 것은 2년 뒤인 1977년 2월이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은 “1975년 당시 서초동 부지의 매입 가격은 200만원”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부동산은 1993년 대법관이었던 김 후보자가 고위공직자 신분으로 재산 공개를 할 당시 19억 8700만원(공시지가)이었고 2013년 현재 시점에서 공시지가로 44억원이며 부동산 업계에서는 실제 거래 추정액을 60억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3]

수상 내역편집

  • 2011년 : 제42회 한국법률문화상

학력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평가편집

'원로 법조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그동안 강조해 왔던 '법과 원칙'을 중심가치로 구현할 적임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헌재소장에 오르는 등,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중도보수적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