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저(金佇, ? ~ 1389년 11월)는 고려무관 관료정치가이며 최영 장군의 생질(甥姪)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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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저
金佇
생애 ? ~ 1389년 11월
출생지 고려 서해도 해주
사망지 고려 개경
본관 해주(海州)
정당 무소속
부모 김규(부), 동주 최씨 부인(모)
친척 최원직(외조부)
최영(외숙부)
복무 고려 군사
복무 기간 1372년 ~ 1389년
최종 계급 고려 관군 군사 대호군
지휘 대호군(大護軍)

생애편집

관직 출사편집

그는 공민왕 시대 말기인 1372년음서로 무관 관료 관직에 천거되었으며 이후 우왕 치세 시기에는 대호군(大護軍)이라는 직위로써 오랫동안 외숙부 최영 휘하에서 군직과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

위화도 회군 이후와 그의 최후편집

1388년 위화도 회군 직후 외숙부 최영이성계(李成桂) 장군 세력 일파에 의하여 사형되자 그 이듬해 1389년 최영의 최측근이었던 장군 정득후(鄭得厚)와 동반하여 양광도 여흥에 유폐되어 있던 우왕을 접견하여 이성계 암살 작전 청탁을 받고 개경에 귀환, 곽충보(郭忠輔)와 사전 모의하여 팔관회를 틈타 자리에 참석한 이성계를 암살할 것을 모의하였다.

그러나 모의에 가담하였던 곽충보가 이를 이성계에게 밀고했고, 이성계가 팔관회 참석을 취소하고 사저에 칩거해버려 모의는 실패로 끝났다. 하는 수 없이 정득후 장군과 재모의하여 이성계의 사저 잠입을 강행 끝에 이성계 암살을 실행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순군옥에 투옥되었다(김저의 옥사).

《고려사》에 따르면 김저는 처음에는 불복하였으나 칼로 발바닥을 몇 치 째고 불로 지지는 고문을 가한 끝에 자복하였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변안열, 이림, 우현보, 우인열, 왕안덕, 우홍수 등과 공모하여 계획을 모의하였다고 자백하였다.

이 일로 우왕은 교주강릉도 강릉에 이배되었으며 이에 아울러 창왕도 폐위가 되어 양광도 강화로 유배되었다. 끝내 김저 자신은 1389년 11월에 옥사하여 그 시체가 저자에서 능지처참된 데다가 김저가 작전하였던 수문하시중 이성계 장군 암살 작전 모의에 가담한 27명의 고려 신하들은 유배형에 처해지는 말로를 샀다.

김저가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생질(甥姪)은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 형제의 아들을 일컫는 호칭이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