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당성 서씨(唐城 徐氏)는 남양 서씨(南陽徐氏)에서 분적한 한국의 성씨이다. 당성(唐城)은 경기도 화성시 일대의 고구려 시대 지명이다.

당성 서씨 (唐城 徐氏)
관향경기도 화성시
시조서득부 (徐得富)
주요 인물서경덕, 서남수
인구(2000년)4,978명

역사편집

남양 서씨의 시조(始祖) 서간(徐趕)은 당나라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당성(唐城)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는 벼슬이 태사(太師)에 올랐고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졌다. 남양 서씨 시조 서간(徐趕)의 12세손으로 교리(校理)를 지낸 서원길의 둘째 아들인 서득부(徐得富)를 당성 서씨의 시조로 한다.

본관편집

당성(唐城)은 경기도 화성시(華城市) 남양읍 일대의 고구려 시대 지명이다. 고구려 때에는 당성군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때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하였고, 822년(헌덕왕 14)에 수성군(水城郡)에 병합되었으나 829년(흥덕왕 4)에 당성진을 설치하면서 분리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군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의 관할에 들었고, 후에 인주(仁州)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독립하여 감무를 두었고 재양현(載陽縣 : 安陽縣)을 관할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익주(益州)로, 후에 강령도호부(江寧都護府)로, 다시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남양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남양도호부가 되었다가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6년 경기도 남양군이 되었다가, 1914년 수원군에 병합되었으나, 1949년에 경기도 화성군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되었다.

인물편집

  • 서경덕(徐敬德, 1489년 ~ 1546년) : 자(字)는 가구(可久), 호(號)는 복재(復齋). 관직에 나가지 않고 송도에 머무르며 학문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여 송도3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있다. 독창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을 제창하였다. 북인
  • 서남수(徐南洙, 1952년 ~ ) : 전 교육부 장관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