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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朴熺太, 1938년 8월 9일 ~ )는 대한민국정치가이다.

박희태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38년 8월 9일(1938-08-09) (80세)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학력 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경력 민주정의당 대변인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제42대 법무부 장관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제18대 후반기 국회의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배우자 김행자
자녀 슬하 2녀
종교 무종교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3·14·15·16·17·18
정당 무소속
지역구 경남 양산시

목차

학력편집

생애편집

박희태는 1938년 8월 9일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58년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였고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이후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하였다. 제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의 공천을 받아 경남 남해군·하동군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1993년김영삼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이중 국적을 가진 차녀가 이화여대에 특례입학 혜택을 받았던 사실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 10일 만에 사직하였다. 초선 의원 때인 1988년부터 민정당의 대변인을 맡았고 4년 3개월 동안 대변인을 계속하였다.[1]대변인 시절에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등의 수많은 정치 조어들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5선을 기록한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중진 의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8년에 실시된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그해 7월 3일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정몽준을 제치고 한나라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이듬해 9월 7일에 실세된 경남 양산시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당 대표직을 사퇴하였다. 당시 민주당이 내세운 친노 후보 송인배에게 고전하다 4.1% 차이로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2010년에 제18대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17년 1월 새누리당에서 제명되었다.

논란편집

친일파 인적청산 논란편집

1993년 말부터 1994년 초 사이에 당시 민주당김원웅 의원이 여야의원 137명의 서명을 받아 반민법의 취지를 이어받은 민족정통성회복특별법안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강력한 저항에 밀려 무산됐는데,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박희태는 완강히 심의를 거부하여 이는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2]

장녀의 대학 편법 입학편집

검사 시절 유씨 버클리 국비 유학 중, 태어난 장녀가 건강상의 문제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미국 국적을 그때까지도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에 해외 국적자 정원외 입학한 것이 알려지며 이중국적이 위법인 관계로 박희태는 법무부 장관 직에서 물러났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편집

한나라당고승덕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가 돈봉투을 살포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고승덕 의원 외에도 다른 의원들에게도 광범위하게 살포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고승덕 의원으로부터 300만원을 돌려받았던 박희태의 전 비서 고명진이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돈봉투를 반환했다고 검찰에 진술하는 등 논란이 거듭되었다. 의혹이 거듭되자 박희태는 결국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했다.[3] 그 뒤 2012년 12월 27일에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동일하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4]

캐디 성추행 논란편집

2014년 9월 11일에 박희태는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다 여성 캐디인 김모 씨의 신체 일부를 만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모 씨는 라운딩 도중 관리 직원에게 캐디 교체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5]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박 전 국회의장은 결국 법정에서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부디 관용을 베풀어 주시길 바란다”면서 부인했던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이 순간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인 만큼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며 박 전 국회의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신상등록,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수강명령도 내렸다. 판결에 불복한 박 전 국회의장이 항소했으나 기각당하였고 이후 대법에 상고했으나 기각되었다.

부산 형제 복지원 사건편집

2015년 3월 21일 대한민국 방송사 SBS의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977회 방송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취재 및 조사 하였다. 본 프로그램에서 당시 사건 수사를 맡았던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김용원에게 사건 축소 및 외압을 지시 했다는 내용을 취재 하였다. 박희태는 당시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이었다.[6]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3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3대 민주정의당     52.9% 46,381표 1위  
제14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4대 민주자유당    60.2% 49,378표 1위  
제15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5대 신한국당      75.8% 49,874표 1위  
제16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6대 한나라당      59.6% 38,615표 1위  
제17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7대 한나라당    53.5% 34,106표 1위  
10·28 재보궐선거 국회의원(경남 양산시) 18대 한나라당     38.13% 30,801표 1위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이정우
제42대 법무부 장관
1993년 2월 26일 ~ 1993년 3월 7일
후임
김두희
전임
하순봉
제4대 한나라당 원내총무
1998년 8월 10일 ~ 1999년 1월 15일
후임
이부영
전임
서청원
제3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3년 1월 30일 ~ 2003년 6월 25일
후임
최병렬
전임
조부영
제17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제2당)
2004년 6월 7일 ~ 2006년 5월 29일
후임
이상득
전임
강재섭
제11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8년 7월 4일 ~ 2009년 9월 7일
후임
정몽준
전임
김형오
제18대 후반기 국회의장
2010년 6월 8일 ~ 2012년 2월 27일
후임
강창희
  전 임
박익주
최치환
제13대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민주정의당무소속민주자유당
후 임
박희태
 
  전 임
박희태
제14대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민주자유당무소속신한국당
후 임
박희태
 
  전 임
박희태
제15대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신한국당무소속한나라당
후 임
박희태
 
  전 임
박희태
제16대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무소속한나라당
후 임
박희태
 
  전 임
박희태
제17대 국회의원(경남 남해군·하동군)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
후 임
여상규
 
  전 임
김양수
제18대 국회의원(경남 양산시)
2009년 10월 29일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무소속새누리당
후 임
윤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