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군 이복생(石保君 李福生, 생몰년 미상)은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 제 2대 정종의 열네번째 서자이다.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생애Edit

조선 제 2대 정종의 서자이자, 9남으로 생모는 숙의 윤씨(淑儀尹氏)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정부인으로는 학성군부인 원주 김씨(鶴城郡夫人 原州金氏)이 있다. 자녀로는 정부인 김씨가 낳은 장남 연산부정(燕山副正)와 차남 인양부정 정(仁陽副正 整), 3남 곡성군 금손(鵠城君 金孫) 장녀 이씨와 차녀 이씨, 3녀 이씨, 4녀 이씨, 5녀 이씨가 있다. 본성이 청렴검소하고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며 학문에 통달하여 ‘대문장가’라 일컬었다. 그러나 관직에는 뜻이 없어서 늘 산간에 은거하고 세상 일에 관여치 않았다.[1]

1427년(세종 9년) 이복생은 약계춘, 보금 등과 간통하였으며, 태종의 국기(國忌)때에 광대들을 모아놓고 노래하고 춤추고 술마신 일과 효령대군과 관계한 약계춘, 의성군과 관계한 보금등과 간통하였고 음란한 짓을 일삼아 세종이 매우 미워하였고 원주로 유배되었다.[2]

1436년(세종 18년) 왕에게 거짓보고 하여 해주온정에 목욕한다고 아뢰고는 아버지인 정종의 기신(忌辰)에 기생이 있는 춘천에 가서 순평군(順平君)이라 사칭하고, 여러 날 동안 유숙하면서 매를 놓아 사냥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왕명에 의해 직첩을 회수당하고 외방에 귀양보내졌다.[3] 사헌부에서 다시한번 왕을 능멸한 죄를 물어 대죄로 다스리기를 청하였으나 세종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1872년(고종 9년) 석보정에서 석보군으로 추증되었다.

가족관계Edit

  • 부 : 조선 제 2대 정종
  • 모 : 숙의 윤씨(淑儀尹氏)
    • 형님 : 수도군 덕생(守道君 德生)
    • 형님 : 임언군 녹생(林堰君 祿生)
    • 동생 : 장천군 보생(長川君 普生)
    • 동생 : 인천옹주(仁川翁主), 하가 행부사 이관식(行府使 李寬植)
  • 정부인 : 학성군부인 원주 김씨(鶴城郡夫人 原州金氏) - 대경공(戴敬公) 김연지(金連枝)의 딸
    • 장남 : 연산부정(燕山副正)
    • 차남 : 인양부정 정(仁陽副正 整)
    • 삼남 : 곡성군 금손(鵠城君 金孫) - 정종의 11남 임성군의 양자로 출계
    • 장녀 : 창녕 성씨(昌寧成氏) 성숙(成淑)에게 출가(出嫁)
    • 차녀 : 여산 송씨(礪山宋氏) 송계장(宋季璋)에게 출가(出嫁)
    • 삼녀 : 남양 홍씨(南陽洪氏) 홍맹손(洪孟孫)에게 출가(出嫁)
    • 사녀 : 손효장(孫孝章)에게 출가(出嫁)
    • 오녀 : 진주 정씨(晋州鄭氏) 정윤서(鄭允?)에게 출가(出嫁)

관련 문화재Edit

출처Edit

  1.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석보군”. 2016년 3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월 29일에 확인함. 
  2.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5월 9일 병신 2번째기사
    음란한 행위로 정윤 이무생과 이복생의 직첩을 거두고 외관으로 부처시키다
  3. 세종실록》 75권, 세종 18년(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10월 23일 을유 2번째기사
    임금에게 거짓보고하고 사냥을 즐긴 이복생을 귀양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