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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宋象賢, 1551년 2월 12일(음력 1월 8일)~ 1592년 5월 25일(음력 4월 15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작가이며 임진왜란 때의 장수이다. 임진왜란 초기 동래성 전투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과 교전하다가 패전 살해되었다. 왜적은 그를 포로로 사로잡아 항복을 강요하였으나 항복하지 않자 처참하게 살해하였다. 는 덕구(德求), 는 천곡(泉谷)·한천(寒泉)이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본관여산(礪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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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宋象賢
생애 1551년 2월 12일(음력 1월 8일) ~ 1592년 5월 25일(음력 4월 15일)
출생지 조선 전라도 고부군 천곡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사망지 조선 경상도 동래부 동래성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본관 여산
덕구(德求)
시호 충렬공(忠烈公)
별명 호 천곡(泉谷)·한천(寒泉)
부모 아버지 송복흥, 어머니 안동 김씨
최종 계급 동래 도호부사
근무 승문원 정자, 사헌부 지평, 종계변무사 질정관, 배천 군수, 동래 부사
지휘 동래부 조선군
주요 참전 임진왜란
서훈 내역 자헌대부 이조판서 추증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추증
기타 이력 1576년(선조 9년) 별시문과 병과 급제
사당 황해도 개성시 숭절사(崇節祠)
충북 청주시 상당구 신항서원(莘巷書院)
충북 청주시 흥덕구 충렬사(忠烈祠)
전북 정읍시 정충사(旌忠祠)
함북 경성군 화곡서원(禾谷書院)
송상현 문집

목차

가계편집

아버지는 평강, 용안 등에서 현감을 지낸 후 임진왜란이 발발한 시점에서 이미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고 있던 송복흥(宋復興)이고, 할아버지는 송전(宋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승은(宋承殷)이다.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로 기묘명현인 묵재 이문건(李文健)의 손녀다.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으므로 일각에서는 그가 정발과 함께 일본군에 투항하여 일본군 장수가 되었다는 헛소문이 퍼지기도 했다.[1] 그 후 조정에서 그 아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제사를 지내 /9&7&$¥£오아시스

사후편집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동래성에 육박하자 항전했으나 함락되게 되자 조복(朝服)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은 채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의연함에 감동한 적장 중의 한 사람은 그가 죽은 뒤 시(詩)를 지어 제사지내 주었다. 사후 자헌대부 이조판서추증되었다가 다시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고, 동래 안락서원(安樂書院)에 제향되었다.

1595년 선조 28년에 묘소를 청주로 이장하고 충신문을 세웠으며, 1610년 광해군 2년에 사당 동래부사송상현충렬사(東萊府使宋象賢忠烈祠)을 창건하였다.

1742년 영조 때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추모하여, 송상현 장군이 순절한 정원루가 있던 곳에 송공단을 만들었으며, 매년 음력 4월 15일에 동래기영회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한 동래 충렬사에서도 동래성 전투와 부산진성 전투 등 임진왜란에서 전사한 여러 사람들을 모시고 있다.

또, 황해도 개성 숭절사(崇節祠), 청주 상당구 용정동 신항서원(莘巷書院)과 흥덕구 수의동 충렬사(忠烈祠),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정충사(旌忠祠), 함경북도 경성(鏡城) 화곡서원(禾谷書院) 등에 제향되어 있다.

가족 관계편집

  • 고조부 : 송호(宋瑚)
    • 증조부 : 송승은(宋承殷)
      • 할아버지 : 송전(宋琠)
        • 아버지 : 송복흥(宋復興)
        • 어머니 : 김승석(金承碩)의 딸
          • 부인 : 이온(李熅)의 딸
          • 장남 : 송인급(宋仁及)
          • 자부 : 유흔(柳昕)의 딸
          • 자부 : 최덕순(崔德峋)의 딸
          • 차남 : 송효급(宋孝及)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인물평편집

성격이 치밀하고 준비성이 많았다. 왜구가 쳐들어올 것을 미리 대비하여 동래성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어 복병을 숨기기 좋은 여건을 조성함과 동시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성이 보이지 않게 위장을 하고 성문 밖에는 능철과 마름쇠를 깔아 왜군의 보병과 기병에 대비하였다. 또한 기와를 뜯어 기왓장 마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도록 하는 등 동래성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를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해 동래성은 함락되었다.

주변인물편집

한금섬편집

한금섬(韓金蟾)은 통천군수 한언성의 서녀로 일찍이 기생이 되었다. 송상현이 함경도 경성판관으로 있을 때 그의 첩이 되어 동래로 따라왔으며, 미모와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동래성 전투 때에 송상현이 조복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여종 금춘(今春)과 함께 관아의 담을 넘어 송상현 곁에 달려갔다가 왜적에게 사로 잡혔다. 그 뒤 사흘 뒤까지도 꾸짖는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자 왜적에게 살해되었다. 지금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동래부사송상현충렬사 동문 밖에 별도 사당이 만들어져 있으며, 송상현의 묘 옆에 묻혀있다.[2]

이양녀편집

송상현의 또 다른 첩인 이양녀는 금섬보다 젊은데, 동래성 전투에서 왜적들이 사로잡아 범하려 하자 그들을 달래어 거절하였다. 왜인들이 절부로 칭찬하고, 일본에 끌려갔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이양녀를 후시미 성에 살게 하고, 일본인 부녀들의 스승으로 삼아 풍기를 지도하게 했다. 일본인 부녀 중에는 뒷날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처도 있었는데, 임진왜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과 화해하는데 그 처가 큰 조력을 하였다 한다. 마침내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고, 송상현 부사의 정부인과 청주에서 만나 손잡고 통곡했다 한다.[2]

각주편집

  1. 선조실록 32권, 선조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11월 25일(신사) 1번째기사 "유영길·김수를 인견하고 적병의 숫자, 영·호남의 전투 상황 등을 묻다"
  2. 이양훈 (2006). 《숨겨진 이야기 부산》. 162쪽: 사단법인부산컨벤션뷰로. 

관련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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