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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묵

(안중근의사유묵에서 넘어옴)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다.

유해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책임있는 일본정부의 자세일 것이다.

년년세세화상사세세년년인부동편집

년년세세화상사세세년년인부동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3호
(1972년 8월 16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리움미술관(이건희소유)
제작시기 1910년(순종 융희 4) 2월

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유희이(劉希夷)의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백발을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 속의 가장 유명한 구절로,'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하네' 자연의 섭리는 그대로이나, 세월따라 사람들은 변하고 있다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걱정하는 구절이다. 1910년 2월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글씨이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다.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편집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4호
(1972년 8월 16일 지정)
소재지 소재불명(도난)
제작시기 1910년(순종 융희 4) 2월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은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가난하고 천한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안의사의 인생관이 반영된 말이다. 1910년 2월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글씨이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중인 1976년 홍익대 이사장 이도영에 의해 청와대에 기증되었으나, 현재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있다.[1][2]

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련편집

동양대세사묘현(東洋大勢思杳玄)
유지남아기안면(有志男兒豈安眠)
화국미성유강개(和局未成猶慷慨)
정략불개진가련(政略不改眞可憐)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5호
(1972년 8월 16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1-1
숭실대학교 박물관
제작시기 대한제국 순종 융희 4년(1910년) 3월

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련(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略不改眞可憐)은 1910년 3월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글씨로 '칠언절구'의 자작시를 쓴 것이다.

"암담한 동양의 대세를 생각해보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기개있는 남아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게다가 아직 동양 평화의 시국을 이루지 못한 것이 더욱 개탄스럽기만 한데, 이미 야욕에 눈이 멀어 정략 즉 침략정책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이 오히려 불쌍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소장의 유묵에서

동양을 보존하려 한다면 우선 일본의 정략을 고쳐야 하니, 때가 지나 기회를 놓친다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 아래 해당 유목의 인용내용 참조)

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뜻깊은 내용이다. 나중에 독일나치즘, 이탈리아파시즘과 함께 세계침략전쟁으로 변질돼가는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발판으로 침략의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던 1910년 경술년(庚戌年) 당시,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침략정책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칠 것을 촉구하였으며, 일본인 집정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3]

이들 내용과 관련하여 안중근은 옥중에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지었다. 그중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는 완성되었지만, 논설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 1'만 지어졌고 나머지 '현상 2', '복선 3', '문답'은 목차만 제시된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당시 안중근이 이를 집필하기 위해 사형집행 날짜를 한 달쯤 늦추도록 고등법원장 '히라이시'에게 청하여 약속을 받았으나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동양평화론》의 서문에서 안 의사는 것이다.

마치 논어 위령공 편에서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필히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는 구절을 응용한 듯하다. 즉, 먼 장래를 내다보는 원대한 계획이 없이 그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면 필히 아침저녁으로 급박한 걱정이 생길 것이며, 그러면 결코 대업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좌씨전 양공 편에 '군자는 멀리 생각하고 소인은 가까운 것을 좇는다'라는 구절도 있듯이 먼 장래를 생각하는 군자의 도리를 언급한 것이다. 1910년 2월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글씨이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다.

오로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편집

오로봉위필(五老峯爲筆)
청천일장지(靑天一丈紙)
삼상작연지(三湘作硯池)
사아복중시(寫我腹中詩)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9호
(1972년 8월 16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 72-1
홍익대학교 박물관
제작시기 대한제국 순종 융희 4년(1910년) 2월


앞쪽에 '증맹경시(贈猛警視)'라 쓰여있는데 '타케시'라는 일본 경관에게 써준 듯하다. 말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다.

박학어문 약지이례편집

박학어문 약지이례
(博學於文 約之以禮)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13호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제작시기 1910년(순종 융희 4) 3월

박학어문 약지이례(博學於文 約之以禮,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하라)는 안중근 옥중에서 남긴 글씨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여순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옥중에서 많은 붓글씨를 남겼으며 이 글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글은

인내편집

인내
(忍耐)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18호
(1972년 8월 16일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중구

오리타 간지는 일본 대학병원 중 유명한 것으로 알려진 오카야마 대학(岡山大學)병원의 암 진료 권위자로, 1989년 2월 20일, 천안 단국대병원 개원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단국대학교 장충식 총장에게 기증된 유목이다.

장충식 단국대학교 명예총장은 “오리타 간지 씨를 단국대병원 개원 기념으로 초청하자 고마움의 인사로 유묵을 기증했다”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개인이 소장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중국 뤼순 감옥안중근 의사 유묵은 일본을 거쳐 단국대학교에 오게 됐다.

장충식 단국대학교 명예총장은 이것을 “정치권력에 단 한 번도 아부하지 않은 의연한 대학”에 안 의사의 담대한 영혼이 찾아온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중근 의사는 적국이었던 일본에서 숭모의 대상이 되어 있다.

한시준 단국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0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매 달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을 하는 모임이 있을 정도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안중근 의사 유묵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이 문서에는 문화재청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배포한 국가문화유산포털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과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대신문 1260호, 2009년 10월 14일자 6면 참조)

국가안위 노심초사편집

국가안위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22호
(1993년 1월 15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471
안중근의사기념관
제작시기 1910년(순종 융희 4) 3월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는 안중근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행서 글씨 두 폭이다. 그 가운데 한 폭은 오른쪽 위에 "증안강검찰관"이라 쓰여 있듯이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 있을 때 자신의 취조를 담당했던 여순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 야스오카는 사망하기 직전 이 유묵을 큰딸 우에노에게 물려주었고, 그 뒤 동경 국제한국연구원최서면 원장을 통하여1976년 2월 11일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었다.

선지에 모두 여덟 글자를 한 줄에 썼는데, 내용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라는 뜻이다. 말미에 "경술년 3월 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이라 낙관하고 왼쪽 손바닥으로 장인을 찍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편집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
대한민국의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569-23호
(1993년 1월 15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471
안중근의사기념관
제작시기 1910년(순종 융희 4) 3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은 안중근이 공판정을 왕래할 때 경호를   본 문서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지식공유 프로젝트를 통해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저작물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