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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楊平 龍門寺 은행나무)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이다. 1962년 12월 7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30호 '용문사의 은행나무'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楊平 龍門寺 은행나무)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천연기념물
종목천연기념물 제30호
(1962년 12월 7일 지정)
수량1주
소유용문사
위치
양평 용문사 (대한민국)
양평 용문사
주소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번지
좌표북위 37° 32′ 59″ 동경 127° 34′ 15″ / 북위 37.549724° 동경 127.570844°  / 37.549724; 127.570844좌표: 북위 37° 32′ 59″ 동경 127° 34′ 15″ / 북위 37.549724° 동경 127.570844°  / 37.549724; 127.570844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나이가 약1,100~1,500살로 추정되며 높이 42미터, 밑둥 둘레가 14미터로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은행나무이다.

한편 이 은행나무가 앞으로 200년을 더 산다고 할 때 그 경제적 가치는 약 1조 6,884억원이라고 한다.[2]

개요편집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한반도의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08-30호 Archived 2017년 9월 21일 - 웨이백 머신,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명승) 지정명칭 변경》, 문화재청장, 관보 제16730호, 17-46면, 2008-04-15
  2. “《대한민국 가치 대발견》 2005년 10월 29일 방송”. 한국방송공사. 2005년 3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1월 1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