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테무르

엘 테무르(몽골어: ᠡᠯᠲᠡᠮᠦᠷ El Temür 1285년 ~ 1333년 5월)는 원나라의 정치가인 중서우승상이자, 태사(太師)이고, 그전에는 킵차크 칸국의 9대 우즈베크 칸의 친위대 사령관이었다. 태평왕(太平王)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1328년부터는 원나라의 실권자였으며, 원 문종때에는 중서우승상이었다.

생애편집

킵차크의 부족장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 토토가쿠 은 몽케의 동생 쿠빌라이의 측근으로, 시리기의 반란고민, 카다안의 반란 등 쿠빌라이 치세 말기 몽골 제국의 반ㄹ란 진압에 참여했다. 아버지의 손쿠루원 무종 퀼리그 칸 카이산이 즉위하기 전, 퀼리그 칸 카이산을 도와 우구데이 칸국의 카이두 와 교전하는데 참여했다. 이 때 소년이었던 엘 테무르도 아버지 따라 군사를 이끌고 출정, 퀼리그 칸 카이산의 막하에서 활약했다. 이때부터 퀼리그 칸 카이산 의 총애를 받아 퀼리그 칸 카이산이 무종으로 즉위하자 좌군지휘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원나라킵차크인으로 구성된 군벌의 사령관이 되어 킵차크으로 구성된 군대를 지휘했다. 진종 예순테무르가 즉위하자 그는 첨추밀원사(僉樞密院事)에 임명되었다.

1328년 예순테무르가 붕어하고 투그테무르(문종)가 킵차크 칸국의 사령관 엘 테무르에 의해 대도에서 대칸으로 즉위하였다. 그의 형 쿠살라(명종)는 먼 중앙 아시아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한편 예순테무르(태정제)의 아들 라기바그(천순제)는 상도에서 즉위하였다. 라기바그와 투그테무르 사이의 황위 쟁탈전에서 투그테무르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제위 쟁탈전을 지켜본 투그테무르의 형 쿠살라는 몽골과 차가타이 칸국의 장군들을 모아서 월등한 대군으로 카라코룸으로 입성하였다. 형의 대군에 두려움을 느낀 투그테무르는 양위를 선언하고 다음해 엘 테무르는 동생의 양위 소식을 쿠살라에게 전하러 가고 대도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였다. 쿠살라는 카라코룸에서 즉위하고 투그테무르는 황태제가 되었다. 대도로 가던 쿠살라는 투그테무르와 만나고 4일 후에 엘 테무르에 의해 독살되었다. 그리하여 투그테무르는 복위하였다.

엘 테무르는 명종 코실라의 아들 엘 테구스를 자신의 사저에서 양육하였다. 투그 테무르는 1332년에 사망하였고 다른 아들 엘 테구스가 있었지만 쿠살라의 아들이 황위를 계승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일설에는 투그 테무르의 황후 부다시리가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되는 것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양했다고도 한다. 엘 테무르는 토곤 테무르 대신 원 명종의 정실부인 소생 아들 린친발을 1332년 10월 칸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린친발은 그해 12월 갑자기 사망한다.

그러나 토곤 테무르(혜종)는 이 시기 권력을 장악하던 승상이자, 태평왕(太平王) 엘 테무르에게 묶여 있어, 엘 테무르가 병사할 때까지 정식으로 즉위할 수 없었다. 거기에 엘 테무르의 사후에는 아스트 친위대 사령관인 메르키트 바얀이 엘 테무르의 아들 텡기스와 타라카이의 반란을 토벌하고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장악했고, 1340년에는 메르키트 바얀의 조카 토크토가 백부를 쿠데타로 축출하고 그 권력을 빼앗는 등, 원나라의 궁정은 거의 군벌의 내부항쟁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가족 관계편집

기년편집

엘테무르 원년 2년
서력
(西曆)
1332년 1333년
간지
(干支)
임신(壬申) 계유(癸酉)
연호
(年號)
지순(至順)
3년
지순(至順)
4년

엘 테무르가 등장한 작품편집

전임
영종 린친발 카안
몽골 제국/원나라의 섭정
1332년 12월 ~ 1333년 5월
후임
순제 토곤테무르 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