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팔리어: kusalavipāka-ahetukacittāni, ahetuka kusala vipāka citta, 영어: wholesome-resultant rootless consciousness, rootless moral resultant consciousness)[1][2]은 특히 상좌부의 교학과 아비담마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과거의 "유익한" 업 즉 선업 때문에 현재의 "과보"로서 일어나는 마음에 드는 대상 즉 즐거운 대상과 만나게 되고, 이 때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음의 총 8가지의 과보로서의 마음을 말한다. 즉, 그 자체로서는 단지 평온하게 또는 즐겁게 또는 기쁘게 느껴지는 결과일 뿐 "원인 없는" 즉 새로운 선업(유익한 업)이나 악업(해로운 업)을 만들 힘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3][4]

  1. 평온이 함께한 안식
  2. 평온이 함께한 이식
  3. 평온이 함께한 비식
  4. 평온이 함께한 설식
  5. 즐거움이 함께한 신식
  6. 평온이 함께한 받아들이는 마음
  7. 기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8. 평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불교에 따르면,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 또는 탐 · 진치 ·3불선근과 함께하는 마음만이 새로운 선업이나 악업을 만들 힘 즉 뿌리(근)를 가진다. 고수(고통, 신체적 괴로움) · 낙수(즐거움, 신체적 즐거움) · 희수(기쁨, 정신적 즐거움) · 우수(슬픔, 정신적 괴로움) · 사수(평온, 정신적 무덤덤함 또는 정신적 균형 상태)의 5수 그 자체는 새로운 선업이나 악업을 만들 힘을 가진 것이 아니다. 다만, 고수와 우수에는 3불선근이, 낙수와 희수에는 3선근이 부가적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악업 또는 선업을 쌓을 가능성이 클 뿐이다.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은 다음의 분류 또는 체계에 속한다.

유익한 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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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과보'는 과보가 유익하다 즉 과보가 선하다 즉 '과보 그 자체가 다시 유익한 업을 쌓아 현세와 미래에 좋은 과보를 가져온다'는 뜻이 아니며, 과거의 선한 업 즉 유익한 업에 의해 생겨난 좋은 과보 즉 마음에 드는 과보라는 뜻이다. 좋은 것은 그 자체로서는 선(유익함)이나 불선(해로움)이 아니며 무기(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음)이다.[4][5]

원인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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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에서 '원인 없는 마음'이란 아무런 원인도 없이 우연히 생겨난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다음 두 가지를 뜻한다.[5][6][7]

  • 인과법칙(업과 업의 과보)에 따라 생겨난 결과로서의 마음들은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건 결과로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서는 새로운 결과를 낳는 원인인 업을 쌓는 힘(선함과 불선함 즉 유익함과 해로움)을 가지지 않는다.
    달리 말해, 과보로서의 마음들은 '뿌리[根]' 즉 탐 · 진 · 치의 3불선근(三不善根)이나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三善根)을 가지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크게 보아 모든 과보로서의 마음은 무기이지만, 과보로서의 마음 중에서 아주 좋은 것은 그 안에 3선근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선한 업을 더 쉽게 쌓을 수 있게 하고 그 결과 더 좋은 과보가 나타나게 한다. 이러한 종류의 과보로서의 마음이 '욕계 아름다운 마음에 속한 욕계 과보의 마음 8가지'와 '색계 과보의 마음 5가지'와 '무색계 과보의 마음 5가지'와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 4가지'를 합한 총 22가지이다. 이 중에서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 4가지는 3선근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18가지와는 달리 출세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후유를 낳지 않는다. 즉, 선한 업도 쌓지 않는다. 선한 업에 비할 수 없는 출세간지혜무루의 지혜 즉 완전한 깨달음의 힘 즉 진여의 무분별지가 더욱 더 잘 발현되게 한다. 따라서 선한 '업'을 더 쉽게 쌓을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18가지가 있다.
  • 인과법칙(업과 업의 과보)의 진행에서 반드시 필요하여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마음들로서, 새로운 결과를 낳는 원인인 업을 쌓지 않고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들이 있다. (cf. 심불상응행법)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 중 욕계는 선(유익함) · 불선(해로움) · 무기(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음)의 세 가지가 모두 있으며, 색계와 무색계에는 선과 무기만 존재한다.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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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따르면, 모든 마음은 반드시 느낌[受]을 동반한다.[8] 즉, 크게 느낌을 세 가지로 구분할 때의 고수(괴로운 느낌) · 낙수(즐거운 느낌) · 불고불락수(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무덤덤한 느낌, 그저 그런 느낌)의 3수(三受) 중 어느 하나와 반드시 상응한다. 또는, 3수를 더 세분한 고수 · 낙수 · 희수 · 우수 · 사수5수(五受) 중 어느 하나와 반드시 상응한다.

평온(平穩, 팔리어: upekkhā, 팔리어: upekṣā)은 5수 가운데 사수(捨受)를 말한다. 사수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수준이 있는데, 하나는 균형 · 평형 · 평정 · 좌로도 우로도 치우지치 않음 · 편견과 선호에 휩쓸리지 않음 · 좋음과 싫음에 휘둘리지 않음의 느낌의 뛰어난 상태 혹은 선한 상태의 (捨)의 마음작용을 말한다. 이 마음작용은 수염(修厭) · 4무량심(四無量心) 등의 수행을 통해 개발하여야 하는 마음작용이다. 다른 하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 그저 그런 느낌, 무덤덤한 느낌을 말한다. 이 마음작용은 자연히 존재하는 마음작용이다. 즉, 수행 등의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지은 바 업에 따라 그 과보로서 자연히 느끼게 되는 느낌이다. '평온이 함께한 안식' 등에서의 평온은 이 후자의 것을 뜻한다.[8]

즐거움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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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은 고수 · 낙수 · 희수 · 우수 · 사수5수(五受) 중 낙수를 말하고, 기쁨은 희수를 말한다. 낙수는 신체적인 즐거운 느낌이고 희수는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이다. 고수는 신체적인 괴로운 느낌이고 우수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이다. 사수는 정신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과거의 업이 유익한(선) 업일 때, 마음에 드는 대상 즉 즐거운 대상과 만나게 된다. 이 때 전5식신식은 다른 네 가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평온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사수함께하는 것과는 달리 즐거움의 느낌과 함께한다. 즉 기분 좋음을 느낀다. 말하자면, 눈(안근)의 즐거움이란 눈(안근)이 느끼는 즐거움이 아니라 뜻(의근)이 느끼는 즐거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과 만났을 때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보게 되어 즐거운 느낌(만나고 싶어하는 느낌)이 들었을 때, 봄(안식)은 신체적인 것 즉 감각적인 것이지만 이 봄(안식)과 함께 일어나는 즐거움은 정신적인 것이다. 즉, 낙수가 아니라 희수이다. 마찬가지로, 협화음의 음악을 듣게 되어 즐거운 느낌(만나고 싶어하는 느낌)이 들었을 때, 들음(이식)은 신체적인 것 즉 감각적인 것이지만 이 들음(이식)과 함께 일어나는 즐거움은 정신적인 것이다. 즉, 낙수가 아니라 희수이다. 참고로, 세친의 《대승오온론》 등에 따르면, 즐거운 느낌 또는 기쁜 느낌이란 헤어질 때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느낌 즉 만나고 싶어하는 느낌을 말한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보게 되어 '확정적인' 즐거운 느낌이 드는 것, 만나기 싫은 사람을 보게 되어 '확정적인' 괴로운 느낌(피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 딱히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딱히 싫은 사람도 아니어서 '확정적인' 무덤덤한 느낌이 드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인식과정'에서 그 인식과정의 여러 단계가 상당히 진행된 후의 거의 최종적인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안식을 예로 들면, 대상과 만나 안식이 그 대상을 보고, 이것 이후에 제6의식이 그 대상을 조사하는 단계가 진행된 후에서야 비로소 그 대상이 마음에 드는 대상인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인지에 대한 판단이 확정되고, 이 정신적인 판단의 확정과 더불어 느낌도 확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이 그 대상을 볼 때 즉 '봄'이라는 감각적 지각이 성립할 때, 안식은 아직 그 대상이 마음에 드는 대상인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아직은 정신적인 판단(심려결탁)이 내려지기 이전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다 자세히 말해, 아직은 제6의식이 그 대상이 마음에 드는 대상인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이전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안식사수(평온) 즉 정신적인 중립적인 느낌 즉 정신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과 함께한다. 이식 · 비식 · 설식도 안식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신식은 이들 네 가지와는 달리, 감각적인(신체적인) 느낌과 함께하기 때문에, 과거의 유익한 업 때문에 마음에 드는 대상과 접촉할 때(예를 들어, 부드러운 감촉의 천을 감촉할 때) 곧바로 낙수 즉 신체적인 즐거운 느낌과 함께한다. 즉 좋음을 느낀다.[4][9]

받아들이는 마음조사하는 마음은 각각 의근제6의식이다. 과거의 유익한 업 때문에 마음에 드는 대상과 접촉할 때 받아들이는 마음으로서의 의근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이기 때문에 항상 평온과 함께한다. 과거의 아주 유익한 업 때문에 아주 마음에 드는 대상과 접촉할 때 조사하는 마음으로서의 제6의식은 기쁨(희수)과 함께하면서 조사한다. 그냥 유익한 업이면 평온(사수)과 함께하면서 조사한다.[4]

받아들이는 마음과 조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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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마에 따르면, 받아들이는 마음조사하는 마음인식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보(즉 과거 업의 결과)로서의 마음이다.[5][10][11] 받아들이는 마음6근의근, 즉, 18계7심계에 속한 의계이다. 조사하는 마음의식제6의식, 즉, 18계7심계에 속한 의식계이다.[12]

감각적 대상의 인식과정, 즉, 전5식의 대상 즉 색경 · 성경 · 미경 · 향경 · 촉경이 해당하는 근 즉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 앞에 나타날 때의 인식과정 중 초기 6단계는 아비담마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초기 6단계를 통해 그 감각적 대상을 대략적으로 인식하며, 그 감각적 대상을 세부적으로 명확히 인식하기까지에는 이후 여러 단계가 더 진행된다.[12][13]

  1. 색경(색깔과 모양) 즉 '18계색계'에 속한 한 감각적 대상이 눈(안근) 즉 '18계 중 안계' 앞에 나타난다.
  2. '오문전향의 마음' 즉 의근 즉 '18계의계'가 일어나서 이후의 마음의 흐름, 즉, 이 경우에는 안식의 흐름이 그 감각적 대상으로 흐르게 한다.
  3. 안식 즉 '안근의 알음알이' 즉 '눈의 알음알이' 즉 '18계안식계'가 감각적 대상을 본다. 즉, 안식이 자신의 본질인 봄 즉 '보는 작용'을 행한다.
  4. 받아들이는 마음의근 즉 '18계 중 의'가 일어나서 바로 앞 단계에서 발생한 식의 대상, 즉, 여기서는 안식의 대상, 즉, 감각적 대상을 받아들인다.
  5. 조사하는 마음의식제6의식 즉 '의근의 알음알이' 즉 '18계의식계'가 일어나서 감각적 대상을 조사한다.
  6. '의문전향의 마음' 즉 의식제6의식 즉 '의근의 알음알이' 즉 '18계의식계'가 일어나서 그 감각적 대상이 좋은지 나쁜지 결정한다. 이 때의 의문전향의 마음을 다른 이름으로는 '결정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즉, 이 단계에서 그 감각적 대상을 대략적으로 알게 된다. 즉, 대략적인 인식이 발생한다. 이 인식과 더불어 이 단계에서 느낌이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3수 중 하나로 확정된다. 또는, 보다 세밀하게는, 고수 · 낙수 · 희수 · 우수 · 사수의 5수 중 하나로 확정된다. 의문전향의 마음 그 자체는 언제나 사수와 함께하지만 이후의 마음은 확정된 느낌과 함께한다.
  7. 이후 그 감각적 대상을 세부적으로 명확히 인식하기까지의 여러 단계가 진행된다.

정신적 대상인식과정, 즉, 정신적 대상의근 즉 '18계의계' 앞에 나타날 때의 초기 2단계는 다음과 같다. 이후 그 정신적 대상을 세부적으로 명확히 인식하기까지에는 여러 단계가 더 진행된다.[12]

  1. 법경 즉 '18계법계'에 속한 한 정신적 대상이 의근 즉 '18계의계' 앞에 나타난다.
  2. '의문전향의 마음' 즉 '의식' 즉 제6의식 즉 '의근의 알음알이' 즉 '18계의식계'가 일어나서 이후의 마음의 흐름, 즉, 이 경우에는 의식의 흐름 즉 제6의식의 흐름이 그 정신적 대상으로 흐르게 한다. 이 단계에서 느낌이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3수 하나로 확정된다. 보다 정확히는, 고수 · 낙수 · 희수 · 우수 · 사수의 5수 중 정신적 느낌인 희수 · 우수 · 사수 중 하나로 확정된다. 의문전향의 마음 그 자체는 언제나 사수와 함께하지만 이후의 마음은 확정된 느낌과 함께한다.
  3. 이후 그 정신적 대상을 세부적으로 명확히 인식하기까지의 여러 단계가 진행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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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5.

    §9. Wholesome-Resultant Rootless Consciousness (kusalavipāka-ahetukacittāni) — 8
  2. Mehm Tin Mon (2015). 《The Essence of Buddha Abhidhamma》. Third edition. Mehm Tay Zar Mon, Mya Mon Yadanar Literature. p.38.
    ROOTLESS MORAL RESULTANT CONSCIOUSNESS
    (Ahetuka Kusala Vipāka Cittas)
  3.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5.
    §9. Wholesome-Resultant Rootless Consciousness (kusalavipāka-ahetukacittāni) — 8

    8. Upekkhāsahagataṁ cakkhuviññāṇaṁ; tathā
    9. Sotaviññāṇaṁ;
    10. Ghānaviññāṇaṁ;
    11. Jivhāviññāṇaṁ;
    12. Sukhasahagataṁ kāyaviññāṇaṁ;
    13. Upekkhāsahagataṁ sampaṭicchanacittaṁ;
    14. Somanassasahagataṁ santīraṇacittaṁ;
    15. Upekkhāsahagataṁ santīraṇacittañ cā ti.
    Imāni aṭṭha pi kusalavipākāhetukacittāni nāma.

    8. Eye-consciousness accompanied by equanimity; as are
    9. Ear-consciousness;
    10. Nose-consciousness;
    11. Tongue-consciousness;
    12. Body-consciousness accompanied by pleasure;
    13. Receiving consciousness accompanied by equanimity;
    14. Investigating consciousness accompanied by joy;
    15. Investigating consciousness accompanied by equanimity.
    These eight are the wholesome-resultant types of rootless consciousness.
  4.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p.35~36.
    Wholesome-resultant rootless consciousness (kusalavipāka-ahetukacittāni):
    The eight types of consciousness in this category are results of wholesome kamma. In the designation of the previous class, the word ahetuka, “rootless,” was not included because all unwholesome-resultants are rootless; there are no unwholesome-resultants that are accompanied by roots. However, as will be seen later, wholesome-resultants can be accompanied by roots, namely, by beautiful roots that are karmically indeterminate (abyākata). To distinguish the wholesome-resultants that are rootless from those with roots, the word ahetuka is included in their class designation.
    Seven of these types of consciousness correspond to the unwholesome-resultants. But, whereas the unwholesome-resultants arise in regard to an undesirable object, the wholesome-resultants arise in regard to an object that is desirable (iṭṭha) or extremely desirable (ati-iṭṭha). The first four sense consciousnesses here, like their counterparts, are associated with equanimity, that is, neutral feeling; but since the impact of the object on the body is strong, the feeling associated with wholesome-resultant body-consciousness is that of bodily pleasure (sukha).
    The rootless wholesome-resultants include one type of consciousness without a counterpart among the unwholesome-resultants. This is the investigating consciousness accompanied by joy (somanassa). Whereas the investigating consciousness resulting from unwholesome kamma is always accompanied by neutral feeling, that resulting from wholesome kamma is twofold: one accompanied by neutral feeling arisen in regard to a moderately desirable object, and one accompanied by joy, which arises when the object is especially desirable. Thus, there are eight types of consciousness in this class, in contrast to the seven types found in the former class.
  5.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4.
    Unwholesome-resultant consciousness (akusalavipākacittāni): The first category of rootless consciousness (ahetukacittāni) comprises the seven types of consciousness that result from unwholesome kamma. These types of consciousness are not themselves unwholesome but karmically indeterminate (abyākata). The word “unwholesome” (akusala) here means that they are resultants (vipāka) produced by unwholesome kamma; the word qualifies, not these states of consciousness themselves, but the kamma from which they are born.
  6.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4.
    Rootless consciousness (ahetukacittāni): The word ahetuka means “without roots” and qualifies those types of consciousness that are devoid of the mental factors called hetu, “roots.” These types, eighteen in number, do not contain any of the three unwholesome roots — greed (lobha), hatred (dosa), and delusion (moha) — nor do they contain the three bright roots — non-greed (alobha), non-hatred (adosa), and nondelusion (amoha) —, which may be either wholesome or indeterminate. Since a root is a factor that helps to establish stability in a citta, those cittas that lack roots are weaker than those that possess them. The eighteen cittas in this class fall into three groups: unwholesome-resultants, wholesome-resultants, and functional consciousness.
  7. Mehm Tin Mon (2015). 《The Essence of Buddha Abhidhamma》. Third edition. Mehm Tay Zar Mon, Mya Mon Yadanar Literature. pp.36~37.
    ROOTLESS CONSCIOUSNESS (Ahetuka Citta)
    Hetu: mūla : cause or root-condition.
    Akusala-hetu : immoral roots (lobha, dosa, moha)
    Kusala-hetu : moral roots (alobha, adosa, amoha)
    Consciousnesses without roots are known as ahetuka cittas whereas consciousnesses with roots are called sahetuka cittas.
    There are 18 ahetuka cittas. They may be classified into three groups as follows:
    1 Akusala-vipāka cittas — 7
    Immoral resultant consciousnesses that arise as the inevitable results of past immoral kammas
    2 Ahetuka kusala vipāka cittas — 8
    Rootless moral resultant consciousnesses that arise as the inevitable results of past moral kammas
    3 Ahetuka kiriya cittas — 3
    Rootless functional consciousnesses.
    Note: Vipāka : kamma-result
    Kiriya : kriya: functional
    Vipāka cittas and kiriya cittas are kammically neutral consciousnesses that are kammically ineffective, i.e., they produce no kammic results.
  8.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5.
    Accompanied by joy (somanassasahagata): The word somanassa, “joy,” is derived from su- = “pleasant” + manas- = “mind;” thus, it means, literally, a pleasant mental state. Somanassa is a type of feeling, specifically, pleasant mental feeling. All consciousness is accompanied by some feeling, which may be physical or mental, pleasant, painful, or neutral. Somanassa is a feeling that is mental rather than physical (bodily), and pleasant rather than painful or neutral. This feeling “accompanies” (sahagata) this type of consciousness in that it is inextricably blended with it, just as when the waters of two rivers meet, they blend together and cannot be distinguished. The Abhidhamma describes four cittas rooted in greed (lobha) and accompanied by a joyful mental feeling (somanassa). The other four cittas in this class are accompanied by equanimity (upekkhāsahagata). The word upekkhā is often used in the Pāḷi texts to signify the lofty spiritual quality of equanimity, or impartiality, the state of mind that cannot be swayed by biases and preferences. Here, however, the word is used simply to mean neutral feeling, a mental feeling that leans neither towards gladness nor sadness. In contrast to pleasant and painful feelings, which experience an object in diametrically opposed ways, upekkhā experiences the object in a neutral manner. Thus, upekkhā, or “equanimous feeling”, is also called “adukkhamasukhā vedanā,” “neither-painful- nor-pleasant feeling.”
  9.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4.
    Eye-consciousness (cakkhuviññāṇa): The first five types of resultant consciousness in both classes — the unwholesome-resultants and the wholesomeresultants — are those that are based on the sense-responsive matter30 (pasāda-rūpa) of the eye, ear, nose, tongue, and body. These ten cittas are collectively designated “the two sets of fivefold sense consciousness” (dvi-pañcaviññāṇa).
    Eye-consciousness arises based upon eye-sensitivity (cakkhu-pasāda). Its function is simply to see, to cognize directly and immediately, the visible object. The other types of sense consciousness also arise based upon their respective sensitivity, and their function is simply to cognize their respective objects — to hear sounds, to smell smells, to taste tastes, and to feel tangibles. In the case of unwholesome resultants, the object is unpleasant or undesirable (aniṭṭha). However, the impact of the object on the first four sense faculties is weak, and, thus, the associated feeling is neutral, that is, equanimity. But, in the case of the unwholesome-resultant body consciousness, the object’s impact on the body faculty is strong, and, thus, the accompanying feeling is bodily pain (dukkha).
    30 That is, matter that responds to sense stimuli — the five physical sense organs.
  10.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p.34~35.
    Receiving consciousness (sampaṭicchanacitta): When a sense object impinges on a sense faculty at one of the five sense doors, for example, a visible form on the eye, first there arises a citta adverting (āvajjana) to the object. Immediately after this, eye-consciousness arises seeing that form. This act of seeing lasts only for a single mind-moment. Immediately thereafter, a citta arises that apprehends, or receives, the object that had been seen by eye-consciousness. This is the receiving consciousness, which results from the same type of kamma that produced the eye-consciousness.
  11.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5.
    Investigating consciousness (santīraṇacitta): This is another rootless resultant consciousness, which arises immediately after the receiving consciousness. Its function is to investigate, or examine, the object that had just been cognized by the sense consciousness and apprehended by the receiving consciousness. The receiving consciousness (sampaṭicchanacitta) and the investigating consciousness (santīraṇacitta) arise only in the five sense doors, and both are results of past kamma.
  12.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7~38.
    Five-sense-door adverting consciousness (pañcadvārāvajjanacitta): When an external sense object impinges on one of the five physical sense organs, before the appropriate sense consciousness can arise — for example, eye-consciousness seeing a form —, another consciousness must have arisen first. This consciousness is the fivesense- door adverting consciousness (pañcadvārāvajjanacitta), which has the function of adverting (āvajjana)31 to whatever object is presenting itself at one of the five sense doors (dvāra). This consciousness does not see, hear, smell, taste, or touch the object. It simply turns to the object, thereby enabling the sense consciousness to arise in immediate succession.32
    31 This is the turning of the mind towards an object. Āvajjana forms the first stage in the process of consciousness. When an object of the five physical senses is involved, it is called “five-sense-door adverting consciousness” (pañcadvārāvajjanacitta); in the case of a mental object, “mind-door adverting consciousness” (manodvārāvajjanacitta). Cf, Nyanatiloka, Buddhist Dictionary: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fourth revised edition [1980]), pp. 30—31.
    32 A single unit of sense perception (for example, visual consciousness), being conditioned through a sense organ and its corresponding object, forms in reality an extremely complex process, in which all the single phases of consciousness follow one another in rapid succession, performing their respective functions, for example:
    “As soon as a visible object has entered the range of vision, it acts on the sensitive eye-organ (cakkhu-pasāda), and, conditioned thereby, an excitation of the subconscious stream (bhavanga-sota) takes place.
    “As soon, however, as subconsciousness is broken off, the functional mind element, grasping the object and breaking through the subconscious stream, performs the function of ‘adverting’ (āvajjana) the mind towards the object.
    “Immediately thereupon, there arises at the eye-door, and based upon the sensitive eye-organ, the eye-consciousness, while performing the function of ‘seeing’ (dassana)…
    “Immediately thereafter, there arises the mind-element, performing the function of ‘receiving’ (sampaṭicchana) the object of that consciousness…
    “Immediately thereafter, there arises…the mind-consciousness element, while ‘investigating’ (santīraṇa) the object received by the mind-element…
    “Immediately thereafter, there arises the functional, rootless mind-consciousness-element, accompanied by indifference, while performing the function of ‘determining’ (votthapana) the object…
    “Now, if the object is large, then immediately afterwards there flash forth six or seven ‘impulsive moments’ (javana-citta), constituted by one of the eight wholesome (kusala) or twelve unwholesome (akusala) or nine functional (kiriya or kriyā) classes of consciousness.
    “Now, if, at the end of the impulsive moments, the object at the five-sense doors is very large and at the mind-door clear, then there arises, once or twice, one of the eight root-accompanied kamma-resultant classes of consciousness of the sense-sphere, or one of the three rootless kamma-resultant mindconsciousness- elements… Because this consciousness, after the vanishing of the impulsive moments, possesses the faculty continuing with the object of the subconsciousness, taking the object of the subconsciousness as its own object, thereby, it is called ‘registering’ (tadārammaṇa, literally, ‘that object’ or ‘having that as object’).” (Visuddhimagga XIV, 115ff.)
    If, however, the sense-object is weak, then it reaches merely the stage of “impulsion” (javana), or of “determining” (votthapana); if very weak, only an excitation of the subconsciousness takes place.
    The process of the inner, or mind, consciousness, that is, without participation of the five physical senses, is as follows: in the case that the mind-object entering the mind-door is distinct, then it passes through the stages of “adverting at the mind-door” (manodvārāvajjana), “the impulsive stage,” and “the registering stage,” before finally sinking into the subconscious stream. Cf, Nyanatiloka, Buddhist Dictionary: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fourth revised edition [1980]), pp. 227—228.
  13. Mehm Tin Mon (2015). 《The Essence of Buddha Abhidhamma》. Third edition. Mehm Tay Zar Mon, Mya Mon Yadanar Literature. pp.37~38.
    IMMORAL RESULTANT CONSCIOUSNESS (Akusala Vipāka Citta)
    The seven akusala vipāka cittas are given the following symbols and names.
    cakkhu      ghāna       kāya        santī
       —    —     —     —     ^     —     —
           sota       jivhā       sampa


    1 Upekkhā-sahagataṁ cakkhuviññāṇaṁ
     eye-consciousness accompanied by neutral feeling.
    2 Upekkhā-sahagataṁ sotaviññāṇaṁ
     ear-consciousness accompanied by neutral feeling.
    3 Upekkhā-sahagataṁ ghānaviññāṇaṁ
     nose-consciousness accompanied by neutral feeling.
    4 Upekkhā-sahagataṁ jivhāviññāṇaṁ
     tongue-consciousness accompanied by neutral feeling.
    5 Dukkha-sahagataṁ kāyaviññāṇaṁ
     body-consciousness accompanied by painful feeling.
    6 Upekkhā-sahagataṁ sampaṭicchana-cittaṁ
     receiving consciousness accompanied by neutral feeling.
    7 Upekkhā-sahagataṁ santīraṇa-cittaṁ
     investigating-consciousness accompanied by indifference.

    Of the seven cittas mentioned above, the first five are known as pañca-viññāna, i.e., five cittas that are conscious of the five senses. The last two, i.e., sampaṭicchana-citta and santīraṇa-citta, represent two connecting stages in the process of cognition (awareness of an object).
    For example, when a visible object appears in the eye, a series of consciousness has to arise and perish in order to see the object. First pañca-dvārāvajjana (five-door directing consciousness) directs the consciousness stream towards the object. Then cakkhu-viññāṇa (eye consciousness) sees the object and transmits it to the next consciousness.
    Then sampaṭicchana (receiving consciousness) receives the sense object. Then santīraṇa (investigating consciousness) investigates the sense object. Then mano-dvārāvajjana (mind-door directing consciousness) determines the sense object whether it is good or bad. We are aware of the sense object roughly at this stage.
    Similarly, when an audible voice strikes the eardrum, a series of consciousness, i.e., pañca-dvārāvajjana, sotaviññāṇa, sampaṭichana, santīraṇa, mano-dvārāvajjana, etc., has to arise and perish before we can hear the voice.
    Thus sampaṭicchana-citta, santīraṇa citta together with pañca dvārāvajjana citta and mano-dvārāvajjana citta are essential for cognition of the senses at the five sense-doors (eye, ear, nose, tongue and b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