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사랑방 (일반)/2013년 제47주

일반 사랑방
2013년 제47주
2013년 11월
44 28 29 30 31 1 2 3
45 4 5 6 7 8 9 10
46 11 12 13 14 15 16 17
47 18 19 20 21 22 23 24
48 25 26 27 28 29 30 1


장기간 삭제토론이 진행되지 않는 문서에 대한 삭제 편집

10월 3일에 파주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라는 문서에 대해서 이 문서의 핵심이 되는 명칭, 위치 등이 사실과 부합한 것을 발견하여 삭제토론에 부쳤습니다. 문서 내용이 허위라는 근거는 제가 삭제토론인 [1]에 자세히 기술하였습니다. 그런데 11월 중순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이 삭제토론에 한분만 의견을 제시해 주셨으며 지금까지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이런 글을 제가 독단적으로 삭제신청 틀을 붙여 삭제 신청을 해도 되는지 궁금하네요. 참고로 이 문서 최초 작성자 및 기여자는 모두 IP 사용자이기 때문에 따로 삭제토론 알림은 하지 않았습니다.--커뷰 (토론) 2013년 11월 18일 (월) 01:46 (KST)답변

지금까지 꾸준히 삭제 의견이 있다가 지금 의견이 없는 상황이니, 하셔도 됩니다 :) -- Jytim (토론)_기여 6000회 2013년 11월 20일 (수) 15:55 (KST)답변

Call for comments on draft trademark policy 편집

왜 이번엔 영어라 죄송하단 멘트가 없지...

재단에서 맨 위 배너처럼 트레이드마크 정책 수립을 도와달라네요. -- Jytim (토론)_기여 6000회 2013년 11월 20일 (수) 15:57 (KST)답변

위키백과를 이용한 도서 출판 편집

우연찮게 책을 보다가 제가 기여한 ‘이우 (1912년)’ 문서와 동일한 문장을 그대로 갖다 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본문의 한 문장은 위키백과 문서를 그대로 옮겼고, 역주의 문단은 역시 위키백과 문서의 한 문단을 그대로 옮기거나 약간 손질을 가한 상태입니다. 책의 참고문헌에는 위키백과를 참고하였다는 것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2013년 8월에 출간되어 이미 3쇄를 거친 책입니다. 예전에 집에 있는 상평통보를 찍어 공용에다가 올려놓았었는데 네이버 캐스트 김신국편에 상평통보 사진과 함께 제 아이디가 적힌 출처 표기(<출처: (cc) Lawinc82 at ko.wikipedia.org>)가 적혀있어 기분이 좋았는데 위의 상황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출판사에 전화해서 참고문헌에 위키백과의 해당 문서를 참고하였다고 표기해달라고 해볼까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0일 (수) 15:39 (KST)답변

한 문장... 하셔도 되지만 일단 교학사 교과서 등 위키백과랑 걸린 수정요구가 갑자기 늘어나면 혹 피해가 생길까 해서요. 한국 지부가 생기면 그쪽에 신고 접수나 그런 걸 둬서 했으면 하는데, 큰 사건은 아닐 것 같네요. -- Jytim (토론)_기여 6000회 2013년 11월 20일 (수) 15:54 (KST)답변

첫 번째 질문의 답변으로, 위키백과의 판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제가 외국의 어떤 서적을 확인해 보니 (영어판 기준으로) 위키백과 참조시 특정판(날짜) 및 기여자 목록을 그대로 나열해 놓았습니다. 비록 단순 기여이지만 제 사용자 이름까지 포함된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라이선스 표기는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으나, 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Ykhwong (토론) 2012년 4월 10일 (화) 11:54 (KST)

일단 제가 기여한 문서에서 인용한 문장과 문단은 제가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 책의 역주를 보았을 때 다른 문서에서도 인용 내지는 참고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방(위키백과:질문방/2012년 4월#저작권 명기에 대한 질문입니다.)에서 보았는데 외국 서적에서 참고문헌에 위키백과를 출처로 표기하였다고 하는 내용을 보았을 때 출판사에 위키백과를 출처에 넣어달라고 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닐 것 같군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0일 (수) 16:06 (KST)답변

사례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하고 결과를 모아두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거북이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09:55 (KST)답변

일단 출판사에 연락을 해보았는데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하여 제 연락처를 남겨두었습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전되면 다시 상황을 정리하여 사랑방에 글을 남겨 보겠습니다.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있을 수 있으니 거북이 님의 말씀처럼 사례를 정리하여 대처 방법을 문서화하여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키백과를 참고문헌에 적을 때 '백과사전 이름, 문서 이름(참고 당시 최종 수정일), url' 순으로 한국어 위키백과, 〈이우 (1912년)〉(2013년 00월 00일 최종 수정), http://ko.wikipedia.org/wiki/이우_(1912년)과 같은 형식으로 적어달라고 하면 될까요? 한국어 위키백과를 출처로 표기할 때 방법을 모르겠군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2:16 (KST)답변
가변의 여지가 있기에 '최종'이라는 문구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2013년 00월 00일 기준판' 과 같은 형식은 어떤가요? --비엠미니 2013년 11월 21일 (목) 12:42 (KST)답변
'기준 판'도 괜찮은 표현 같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5:38 (KST)답변
예, 저도 '기준판'이라는 표현이 좋아보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1월 27일 (수) 00:58 (KST)답변

해당 서적과 위키 문서 비교 편집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 강용자 지음/김정희 엮음/지식공작소(초판 1쇄 2013년 8월 1일/초판 3쇄 2013년 9월 25일)

(220쪽) … 영왕 전하와 마찬가지로 이들 형제도 유년학교와 학습원을 거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한일 병합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규율하기 위하여 1926년 12월 1일에 일본 황실령 제17호로 제정·공포되었던 《왕공가궤범(王公家軌範)》에 따르면 왕·왕세자·왕세손·공은 만18세에 달한 후 육군이나 해군 무관으로 임관하여야 하는 의무가 강제되었다. 게다가 일본은 조선 왕족을 일본 왕족이나 귀족하고만 결혼시키기 위해 《왕공가 규범》을 추가로 만들어 천황의 칙허가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78번 각주) 이우와 박찬주: 일본 궁내성과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황실의 자녀를 일본 황족 또는 화족의 자녀와 결혼시켜 혼인 관계를 맺으려 했다. 《왕공가궤범》 제119조에 따르면 왕공족의 혼인은 일본 천황의 칙허를 통해서만 인정되었다. 궁내성에서는 백작 야나기사와 야스츠구(柳沢保承)의 딸을 이우의 배우자로 내정해 놓고 있었다. 야나기사와는 이우의 이복형 이건의 장인 해군 대좌 마쓰다이라 아키라(松平胖)와 동이며, 이우의 숙부 영왕의 장인 나시모토미야 모리마사와도 동서 사이였다. 그러나 이우의 저항과 자신의 서손녀인 박찬주를 맺어주기 위한 박영효의 일본 정계 로비의 결과로 일본 궁내성과 이왕직은 이우와 박찬주의 혼약을 인정하게 된다.

한국어 위키백과 - 이우 (1912년)

(일본 유학과 입대) …한일 병합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규율하기 위하여 1926년 12월 1일에 일본 황실령 제17호로 제정·공포되었던 《왕공가궤범》(王公家軌範) 제59조에 따르면 왕·왕세자·왕세손·공은 만18세에 달한 후 육군이나 해군 무관으로 임관하여야 하는 의무가 강제되었다.[1]

(결혼) 일본 궁내성과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황실의 자녀를 일본 황족 또는 화족의 자녀와 결혼시켜 혼인 관계를 형성하려 하였다.[2] 이와 같은 목적으로 《왕공가궤범》 제119조에 따르면 왕공족의 혼인은 일본 천황의 칙허를 통해서만 인정되었다.[1] 영친왕, 덕혜옹주, 이건의 혼인과 같이 일본인과의 정략 결혼이 추진되어 궁내성에서는 백작 야나기사와 야스쯔구(柳沢保承)의 딸을 이우의 배우자로 내정해 놓고 있었다. 야나기사와는 이우의 이복형 이건의 장인 해군 대좌 마쓰다이라 아키라(松平胖)와 동서가 되었으며, 이우의 숙부 영친왕의 장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守正王)와도 동서 사이였다. 모두 옛 사가 번의 다이묘였던 후작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의 사위들로 궁내성의 계획대로 된다면 왕공족 남자 전부는 나베시마의 외손주 사위가 되는 셈이었다.[3]하지만 이우의 조선인과 결혼하겠다는 저항과 박영효의 일본 정계를 상대로 벌인 로비의 결과로 일본 궁내성과 이왕직은 이우와 박찬주의 혼약을 인정하게 된다.…

  1. 조선총독부황실령 제12호 (1941년 7월 10일). “왕공가궤범”. 국가법령정보센터. 
  2.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조선황족 이우, 그는 왜 야스쿠니에 있는가?”. 한국방송공사. 2007년 8월 14일. 
  3. 이기동, 위의 책, 234 ~ 235쪽.

[참고] 《세월이여 왕조여》- 이방자, 경향신문, 1984. 8. 15.

…日本의 조선왕족 일본화정책에 의해 형님인 鍵公이 1921년 일본에 온데 이어 1923년에는 동생인 鍝公이 일본에 왔다. 英王전하와 마찬가지로 이들 형제도 유년학교와 학습원을 거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日本은 조선왕족을 일본왕족이나 귀족하고만 결혼시키기위해 「王公家規範」을 만들어 천황의 칙어가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참고] 《비극의 군인들》- 이기동, 일조각, 1982년

(234 ~ 235쪽) 李鍝公의 결혼은 장차 있을 李鍝公의 그것에 어떤 암시를 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실제로 당시 宮內省에서는 야나기자와(柳沢保承)伯爵의 딸을 그의 배우자로 정해 놓고 있었다. 英敏한 이우공은 이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이 같은 政略결혼 그 자체에 불만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일본식의 近親婚에 대해서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야나기자와 백작이라고 하면 그의 兄 이건공의 岳父 마쓰다이라大佐와 同婿가 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의 叔父가 되는 英親王의 岳父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王(梨本宮守正王)과도 동서간이었다. 본래 도쿠가와(德川)幕府시대 九州 사가(佐賀)지방 35만 石의 大領主였던 나베시마(鍋島)家의 후예인 나베시마(鍋島直大)후작은 5女를 두었다. 그 첫째 사위가 마에다(直田利嗣)후작이요, 둘째 사위가 모리마사王이요, 세째 사위가 후일 宮內大臣이 된 마쓰다이라(松平恒雄)영국大使인데 한편 그의 사위가 히로히토(裕仁)천황의 동생 치치부노미야(秩父宮)인 것이다. 또한 후작의 네째 사위가 마쓰다이라 해군대좌이며 다섯째 사위가 문제의 야나기자와 백작이었다. 결국 宮內省 계획대로 한다면 한국의 이른바 王公族 남자 모두는 나베시마 후작의 外孫婿가 되는 셈이었다.…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는 1984년 경향신문사에 연재되었던 이방자의 《세월이여 왕조여》를 원전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본문에서 언급된 문장은 해당 연재에서 전혀 적혀 있지 않은 사항으로 위키백과의 이우 문서에서 그대로 차용한 글입니다. 원전의 글 사이에 위키백과에서 인용한 문장을 삽입한 것입니다. 그리고 역주의 문단도 위키백과 문서의 문단을 그대로 가져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출판사 담당자와 통화하였는데 일단 상황을 파악하고 내일 다시 알려주기로 하였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7:10 (KST)답변

한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군요. 저건 인용을 하든 하지 않든 표절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나요? -- Hwangjy9 ( 토론 | 기여 | 편지 ) 2013년 11월 21일 (목) 18:10 (KST)답변
78번 각주는 아예 한 문단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8:46 (KST)답변

출판사에 대한 요구 사항 편집

전화상으로만 상황을 설명하여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내일(22일) 해당 출판사(지식공작소)에 위의 내용을 정리하여 팩스를 넣으려고 합니다. 해당 출판사에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위키백과 문서가 영리적 사용이 가능하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았으니 그 것에 대한 출판사와 엮은이의 사과와 재쇄부터 참고문헌 목록에 한국어 위키백과를 기재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옆에 사진은 해당 출판사에 제시할 요구 사항입니다. 확인해보시고 문제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00:44 (KST)답변

크게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추후에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시, 참조할 수 있도록 해당 내용의 텍스트를 파일의 토론란에 <!-- -->를 사용해 기재해 두는 것도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비엠미니 2013년 11월 22일 (금) 00:51 (KST)답변
좋네요. 다음 쇄에 반영되는 정도면 무난하리라 생각해요. --거북이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7:34 (KST)답변
다음 주에 재쇄 발행시 출처를 반영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공문을 메일로 보내주기로 하였습니다. 공문이 오면 위키백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7:47 (KST)답변
귀찮이즘을 극복하신 것 참 대단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위키백과 편집자 전체를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하신 것 같습니다. --케골 2013년 11월 23일 (토) 22:38 (KST)답변
과하신 칭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 앞으로 있을지 모를 유사 사례를 위해서도 위키백과를 인용할 때 필요한 도움말들을 보강하여 사용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4일 (일) 10:14 (KST)답변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 공문 양식은 디자인이 예쁘군요. 나중에 다른 곳에 재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1월 24일 (일) 03:25 (KST)답변
감사합니다 :) 제가 만든 공문이 나중에 참고가 된다면 기분 좋은 일입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4일 (일) 10:14 (KST)답변

위키백과 콘텐츠를 외부에서 사용하는 경우에 대한 도움말도 백:저작권 등에 보강할 필요가 있겠네요. en:WP:REUSEen:WP:CITEWIKI 등을 참고해서요. -- ChongDae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7:52 (KST)답변

고맙습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내용인데 이제서야 보게 되네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8:00 (KST)답변
그런데 우리가 위키백과의 명의로 공문을 보내거나 할 권한이 있는 건가요? 엄밀히 말해서 위키백과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법인은 더더욱 아니고) 발신명의로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 각자는 재단의 직원도 아니기 때문에 재단의 명의로 보내는 것도 무리라고 봅니다.——라노워엘프 푸르게 (토론) 2013년 11월 26일 (화) 23:03 (KST)답변
출판사에 팩스로 보내려다가 직접 방문하여 위의 문서를 건냈습니다. 일단 출판사에는 제가 위키백과에서 해당 문서를 편집한 편집자라고 밝혔고, 출판사에서는 저를 위키백과에 소속된 직원으로 인식하지는 않았습니다. 위키 로고를 문서 상단에 배치하여 오해의 소지는 있겠으나 해당 문서에서 직접적으로 발신 명의를 위키백과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향후 이와 같은 유사 사례에서 어떻게 발신 명의를 하고 대처할지에 대하여 사용자들의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7일 (수) 00:02 (KST)답변
원칙적으로 저작권은 사용자 개인에게 귀속됩니다만 이런 문제제기에 있어서 저작자가 (추후에 생길) 재단 지부에 위임하면 되지 않을까요? – Kwj2772 (msg) 2013년 11월 27일 (수) 01:04 (KST)답변
편집자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9일 (금) 19:19 (KST)답변

엮은이 메일 편집

위키백과에 사과드립니다 (받은날짜: 13-11-26(화) 14:46)

안녕하세요.
<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의 엮은이 김정희입니다.
글쓴이 강용자 선생님께서는 올해 6월 25일 지병으로 타계하셨습니다.
글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사과를 드리는 것은 엮은이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이 하도 오래 된 텍스트라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위키백과의 저작권을 본의 아니게 침해 하게 되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그런 결과를 초래한 점을 사과 드리며
실수로 표기하지 못함을 다시 한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지식공작소는
1. 추가로 제작될 책에는 220쪽 주석 부분과
2. 참고문헌에
한국어 위키백과, 이우(1912년) 2013.7.16 기준판 http://ko.wikipedia.org/wiki/이우_(1912년)
를 넣어 추가적으로 표기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혹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라도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하시는 일 모두 다 잘 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의 엮으신 김정희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해당 메일의 내용을 위키백과 편집자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6일 (화) 18:56 (KST)답변

귀찮은 일 해 주셨군요. 일이 좋게 마무리되었고, 앞으로의 좋은 선례가 될 것 같습니다. --콩가루 (토론) 2013년 11월 26일 (화) 23:22 (KST)답변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 일이 좋게 마무리되어서 기쁩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6일 (화) 23:52 (KST)답변
여러모로 번거로운 수고를 거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훗날 본 토론을 참고하는 사용자가 나타날테니 필히 유용하리라 봅니다. --비엠미니 2013년 11월 27일 (수) 01:01 (KST)답변
말씀 감사합니다. 제 경험이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3년 11월 29일 (금) 19:19 (KST)답변

공유마당 편집

저작권위원회가 만든 CC나 PD 저작물 아카이브 입니다. 공유마당. 그냥 커먼즈에 올려도 좋을텐데요. -_- --거북이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0:29 (KST)답변

PD로 풀린 어문저작물들은 몇 년 전부터 한국어 위키문헌에 올라가고 있고, 이미지 자료들은 공용에 지속적으로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Sotiale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0:34 (KST)답변
다행이네요. 아예 저작권위원회가 직접 올리면 좋을텐데 그런건 또 잘 안하려들더라구요. 며칠전 그쪽에서 하는 간담회에 다녀왔는데, 뭔가 열심히 하려나봅니다. '창조'경제와 맞는 일이라서요 -_- --거북이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0:39 (KST)답변
금년 10월 2일 즈음에 공공누리 설명회였나, 그러한 것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 (공공누리가) 정책상으로 공공누리 제1유형을 창조 경제의 입장에서 장려한다.. 는 식의 답변을 한 적이 있었지요. 창조라는 이번 정부의 키워드와 무관하게 이번 기회로 자유 저작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작물이 많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공공누리 라이선스로 풀리는 저작물의 약 90%에 가까운 양이 제4유형으로, 변경 금지, 상업적 이용 금지 등등.. 제약조건이 최고로 걸려 있다보니 사용할 수가 없으니까요. 공공기관에선 직접 할 이유가 없다보니 안 하려고 하지요.. :p --Sotiale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0:43 (KST)답변
다음번 저작권위원회의 초청연사로 sotiale님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 --거북이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1:22 (KST)답변
그럴 일도 없겠지만 나가도 말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 --Sotiale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1:33 (KST)답변
최근 핫한 이슈인 창조 경제와 연결해서 공공누리 1유형으로 대폭 풀어달라고 청와대에 요구하면 들어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공약사항인데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요? --팝저씨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7:46 (KST)답변
공공누리 측에서는 이미 ‘정책상으론 제1유형 권장’이라고 해당 설명회에서 말한 바 있지만 그에 대한 질문에서 ‘관리담당자로서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공누리측에서 ‘제1유형이 권장이기는 하지만 보는 것으로도 참고가 될 수 있으니 유형에 관계 없이 많이 풀어돌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Sotiale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7:49 (KST)답변
아무래도 자기네 로고가 악용될 가능성 때문에 겁먹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도 올해 언젠가 공공기관 로고 사용 문제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질의를 했었으나, 예전에 검찰 로고를 삽(!)으로 바꿨던 예를 들면서 변경에 대한 문제는 매우 민감해 하더군요. --팝저씨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7:51 (KST)답변
로고의 수정은 기관을 대표하는 것의 문제가 얽혀있기도 해서 단순한 공공저작물 문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로고에 국한하기보다는.. 좀 더 확대해서 보면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공공저작물은 양이 상당합니다. 공공누리가 적극적으로 홍보되기 시작한게 3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지 저작물 분류에 664,406개, 텍스트 저작물 분류에 258,464개, 영상 저작물 분류에 10,410개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아직 더 나올 부분이 있다는 말은 그보다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다는 말이지요. 물론 대다수는 정말 이용 '허락'이라는 목적에 맞게 제4유형으로 배포되어 있습니다. 저작물에 비상업적 이용과 변경 금지를 걷어내고 배포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법적인 문제를 기관쪽에서는 무시할 수 없도록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고요. --Sotiale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7:59 (KST)답변

재단이 구성되면 저런 곳도 상근위원분들이나 회원분들이 자주 방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llif (대화) 2013년 11월 22일 (금) 05:28 (KST)답변

새로운 기능 편집

특수기능:대량메시지(미디어위키 MassMessage) 기능이 들어왔네요. 사용자토론:Sotiale/대상목록에 나와 있는 양식처럼 {{#target:이름공간:문서이름}}으로 메세지가 전달될 목록을 만들고, 메세지를 보내면 이것이것처럼 목록에 있는 모든 곳으로 글이 갑니다. 전달자 계정명으로 가나 했더니 MediaWiki message delivery 이름으로 가고, 메세지 전달은 봇 편집으로 처리되어 최근 바뀜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용자 이름공간의 경우 사용자토론 이름공간으로 자동 변환되어 가는 듯 하네요. 관리자만 쓸 수 있는 기능이긴 합니다만 편리한 기능으로 응용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록은 특수기능:기록/massmessage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Sotiale (토론) 2013년 11월 21일 (목) 17:45 (KST)답변

해당 봇 계정 사:MediaWiki message delivery 의 사용자 문서를 생성해 보았습니다. 해당 문서에 메시지 수신 거부 방식이 나와 있습니다. 그나저나 위키프로젝트 알림 쓸 때 유용하겠네요. 관리자가 필요하긴 하지만요. --by 레비ReviDiscussSUL Info at 2013년 11월 22일 (금) 21:40 (KST)답변
관리자들이 위키프로젝트에 많이 협조해 주셨으면 해요. 그래서 백:관요가 아까운 거기도 합니다. 영어판처럼 사용자들이 많으면야 해결될 일이겠지만... -- Jytim (토론)_기여 6000회 2013년 11월 24일 (일) 18:37 (KST)답변

단과대학의 저명성 편집

각각의 대학교에 딸린 단과대학중 어느정도 수준의 대학교라면 단과대학을 별도의 문서로 분리할 수 있을까요? --황제펭귄 (기여) 2013년 11월 22일 (금) 09:38 (KST)답변

저명성 있는 대학교의 단과대학이라는 것만으로는 문서 독립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해당 단과대학의 내용이 대학교 문서에서 매우 큰 문단을 차지하고 있다면 분할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요. 근데 그 정도의 단과대학인가요? -Привет(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4:32 (KST)답변
확실히 저명성만으로 분리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단과대학 단위의 문서 독립은 토막글만 양산할 것 같기도 하고요. -- 흑메기Sjsws1078 (토론·기여) 2013년 11월 22일 (금) 15:33 (KST)답변
 의견 대한민국에서는 서울대학교, KAIST,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급의 대학이라면 일부 단과 대학에 한해 독립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대학별 로스쿨 문서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연세대학교 이과대학문서가 있고 영어 위키백과에는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의과대학, 사범대학, 정경대학 문서.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공대 문서가 있습니다. --황제펭귄 (기여) 2013년 11월 22일 (금) 17:31 (KST)답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과 연세대 이과대학은 학과 소개만 줄창 하고 있군요. 나머지도 서울대로 합쳐도 무방해 보입니다만... -- 흑메기Sjsws1078 (토론·기여) 2013년 11월 22일 (금) 17:49 (KST)답변
제 생각으로는 대학교 별 단과대학 문서는 거기서 더이상 발전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입니다. 단과대학 내 교수라던가 학과에서 있던 큰 사건들은 보통 언론이나 다른 곳에서 소개할 때 "○○대학교 ☆☆대학"으로 하는게 아니라 대부분 "○○대학교"로만 소개할게 뻔하기 때문이지요. 차라리 각 대학교 문서로  병합시켜버리는게 나아 보입니다.--커뷰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8:35 (KST)답변
동의합니다. 더더구나 그 서연고급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도 애매하구요. 이화여대, 한양대 공대같은 문서들에 대한 처리도 애매합니다.--아드리앵 (토·기) 2013년 11월 22일 (금) 22:04 (KST)답변
동의합니다. 단과대학별로 저명성이 있다고 하여 독립 문서를 만들기보다는 더 큰 주제의 문서에 하나로 병합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1월 24일 (일) 03:19 (KST)답변
위키프로젝트 사용자들에게 알리는 게 어떨까요? :) 근데 영어판에서는 무슨 근거로 그런 단과대 문서를 우리보다 많이... 대한민국 대학은 저명성 근거가 한국어 뉴스일 텐데요. -- Jytim (토론)_기여 6000회 2013년 11월 24일 (일) 18:34 (KST)답변

숨김 틀 이상 해결. 편집

지난 번부터 있어 왔던 숨김 틀 이상이 해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chongdae님이 미디어위키를 수정해주셨습니다. 저도 제 사용자 문서의 css 문서를 비우고 확인해보니 정상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요청하여 사용자 css 문서를 고치신 사용자께서는 문서를 비워보시고 확인하는 것을 부탁드립니다. -Привет(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4:36 (KST)답변

틀 이상은 확실히 처리된 것 같네요. Priviet님이 말하신 CSS 문서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오전까지 작동치 않던 틀이 이젠 잘 작동하네요. -- 흑메기Sjsws1078 (토론·기여) 2013년 11월 22일 (금) 15:32 (KST)답변
저도 정상작동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팝저씨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5:38 (KST)답변
확인해보니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커뷰 (토론) 2013년 11월 22일 (금) 18:39 (KST)답변
정상작동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아드리앵 (토·기) 2013년 11월 22일 (금) 22:06 (KST)답변
저도 숨김 틀이 잘 보입니다. ChongDae 님 등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1월 27일 (수) 01:15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