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프로젝트토론:한국사/보존 2

마지막 의견: 8년 전 (ChongDae님) - 주제: 고려 황제

위안부 문서를 수정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금 위안부 문서가 일본인들로 인해 날조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위안부와 양공주는 다르며, 일본에게 끌려가 강제로 당한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지 양공주처럼 스스로 다리를 벌린 창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위키백과가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민감한 단어에 일본인이 들어와서 이렇게 날조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Godqhrgo1213 (토론) 2012년 4월 1일 (일) 20:05 (KST)


위안부 문서의 "또는 양공주 (洋公主)[1]로 불리고 있었다."
출처 “그날 나는 왜 그렇게 말하였던가”, 《New Daily》, 2009.06.01 작성.
" 네 부류 가운데 ‘위안부’는 미군의 위안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위안부라 하지 않고 보통 ‘양색시’ 또는 ‘양공주’라 했지요. "
--ilbe? (토론) 2012년 4월 1일 (일) 20:35 (KST)

번역이 필요한 문서들이 많아요. 작성하게 해주세요.

예를 들어 "을미사변"은 세계가 널리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Globaldreamer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네이버에서 국역 고려사 서비스 시작

네이버 지식백과에 국역 고려사의 검색이 추가되었습니다.[2] 역사 관련 문서를 편집할 때 유용하게 쓰였으면 합니다. -- ChongDae (토론) 2013년 1월 3일 (목) 16:18 (KST)

부여때 부터 대한민국, 북한 지도자를 나열한 둘러보기 상자 틀은 있는데 고조선은 없네요. 만들어 보실 분 있나요.--Leedors (토론) 2013년 1월 13일 (일) 22:49 (KST)

신축교난의 호칭 문제

제주에서 일어난 신축교난을 다룬 항목에서, ‘신축교난’이라는 제목의 단어 자체가 지나치게 천주교측 입장에 치우쳐 있습니다(특정 종교 편향). ‘교난’이라는 단어는 천주교측의 입장에서 종교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것일 텐데, 난의 성격상 당시 제주도에서 천주교는 대부분의 제주 사람들에게 제주의 전통에 도전하며 그것을 침해하는 외세의 하나로 여겨졌으며 실제로 난을 일으킨 이재수 등은 과도한 세금으로 오는 피해 즉 ‘세폐(稅弊)’와 함께 ‘교폐(敎弊)’ 즉 천주교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를 시정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세폐를 실제 일으킨 주요 봉세관들이나 그 하수인들이 당시 프랑스를 배후에 두고 있던 천주교로 개종하고 그것을 이용해 과도한 세금을 거두면서 제주 사람들을 수탈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마냥 무고하게 희생된 약자라고만 볼 수가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미군정에 영합한 친일파 세력과 그를 옹호하는 친일 경찰들의 횡포가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4.3 사건과 마찬가지로 당시 조정의 부패한 봉세관이나 외세 열강의 하나인 프랑스와 결탁한 천주교도가 난의 원인이 되었음이 분명한데도 신축교난이라는 용어를 씀으로서 1901년의 제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단순하게 ‘죄도 없는 천주교인들이 피해를 본 사건’으로만 인식하게 될 것이 걱정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떠나서 굳이 ‘이재수의 난’처럼 널리 알려진 이름을 두고 ‘신축교난’이라는 특정한 종교의 입장에만 치우친 듯 비칠 수 있는 용어를 써서 오해를 부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Qkqhrhkdtn (토론) 2013년 1월 4일 (토) 14:01 (KST)


이응준 장군에 대한 이견

역사인물에 대하여는 사실적 기록에의하여만 기술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당시 여류작가와 관련하여 문학작품을 다루는 작가의 시각으로 어느 인물에 대하여 다루는 것은 모라하지 않겠지만. 위키백과와 같이 사실만을 다루어야 하는 사이트에서는 자제하여 주시는것이 마땅하다 생각됩니다.

비판도 좋고 칭찬도 좋습니다만,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실이 확인된 것만 적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2014년 11월 13일 (목) 15:45 (KST)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

좋은 자료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nh 에 있는 신편한국사인데, 꽤 많은 자료가 공개되고 있어 위키백과 편집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유용한 자료를 프로젝트 문서에 한 문단으로 모아 놓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케골 2015년 2월 9일 (월) 01:06 (KST)

왕 or 태왕 or 황제

현재 사:일단술먹고합시다님께서 고구려 태왕들에 관한 문서에 있는 '태왕'을 '왕'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고구려의 왕들은 태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위키에서도 "고고학, 문헌사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고구려 태왕 칭호의 존재는 16대 고국원왕부터 26대 영양왕까지이다."라고 적혀 있더군요. (태왕 문서 참고.) 따라서, 의견이 분분하니 총의로 '태왕'이 맞는지 '왕'이 맞는지 결정하고자 합니다.
추신: 일단술먹고합시다님은 총의 없이 일방적으로 왕으로 바꾸는 행위는 삼가해주십시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1:50 (KST)

@양념파닭: 가장 먼저 위키가 아닌 역사적인 기록에서 해당 왕들에 '태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는 근거부터 가져 오시죠.ㅡ커뷰 (토론) 2015년 2월 15일 (일) 11:57 (KST)
@술먹고합시다: 토론 관련 이해당사자인 분도 이 토론에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ㅡ커뷰 (토론) 2015년 2월 15일 (일) 11:58 (KST)
당연히 왕으로 바꿔야죠.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5일 (일) 12:02 (KST)
일단 편집행위를 멈추고 토론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여서 발해, 고려의 황제 칭호에 대한 총의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5일 (일) 12:03 (KST)
(편집 충돌)  질문 예.. 뭐, 고구려는 그렇다 치고, 발해같은 경우에는 세자가 아니라, 태자 아닌가요? 발해가 특정 국가의 제후국이라는 것은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2:05 (KST)
@양념파닭: '내가 알기로는 이러이러하니 이게 맞다'식의 주장은 백: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표현을 했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토론을 해주셨으면 하네요.ㅡ커뷰 (토론) 2015년 2월 15일 (일) 12:08 (KST)
@커뷰: 질문입니다만?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2:09 (KST)
태왕은 문헌상으로 확인이 안됩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5일 (일) 12:09 (KST)
@Shyoon1: 확인이 되지 않는 명칭이라면 토론할 필요도 없이 지워야겠네요.ㅡ커뷰 (토론) 2015년 2월 15일 (일) 12:11 (KST)
엄밀히 따지자면 호태왕인거죠.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5일 (일) 12:13 (KST)
호태왕은 맞다봅니다. 광개토대왕의 시호는 국강산광개토경평안호태왕 맞습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2:14 (KST)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보았더니 삼국유사에서는 "광개왕"또는 "광개토왕"이라는 명칭을 쓰더군요.-- Skky999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2:18 (KST)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 몰라 좀 찾아봤습니다만 그 태왕 문서부터가 왜곡된 내용 내지는 독자연구인 것 같습니다. 광개토호태왕 말고 다른 왕들은 태왕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장수왕조차 太인지 大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자는 태자라고 부른 것 같은데 태왕이란 칭호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광개토왕릉비 보러가기, 중원고구려비 보러가기, 모두루 묘지명 보러가기 그리고 태왕이란 게 칭호가 아니라 세종대왕처럼 그저 왕을 높이는 존칭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흥왕순수비에서도 진흥왕을 진흥태왕이라 합니다. 근데 신라의 왕호는 왕이었죠. 진흥왕 순수비 보러가기 무엇보다 고구려는 항상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았으며 《삼국사기》부터 중국 정사까지 한국, 중국, 일본 사서 모두 고구려의 왕은 왕이라 호칭합니다. 태왕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즉 고구려에서 태왕을 정식 칭호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가 없으며 사서의 기록은 일관되게 왕이라 합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은 시호인 것이지 고구려에서 태왕을 정말로 국왕의 칭호로 썼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태왕에 대한 다른 기록이나 금석문이 발견되지 않는 한 태왕이란 칭호는 아직까지는 후대의 희망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5일 (일) 12:50 (KST)

태왕에 대한 출처가 없다면야... 인정합니다. 다만, 고구려왕같은 경우, 중국 황제에 버금가는 직책인건 확실하다 봅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2:52 (KST)
그리고 발해도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았던 나라입니다. 左驍衛大將軍 渤海郡王 忽汗州都督은 대조영이 당나라로부터 받은 책봉명입니다.(구당서) 흔히 말하는 무왕이나 문왕도 이 책봉명을 물려받으며 그 이후로도 책봉명의 변화는 있지만 대대손손 중국으로부터 책봉받습니다. 고려 역시 중국으로부터 책봉받았을 뿐더러 사서에서 모두 '왕'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발해와 고려 역시 왕으로 바꾸는 것이 맞겠지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5일 (일) 12:57 (KST)
고려 같은 경우엔 언뜻 보니 왕이라 부른 적도 있고, 황제라 부른 적도 있는 것 같군요. 일일히 따져봐야한다 생각합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3:00 (KST)
왕건 같은 경우엔 스스로를 천자라 불렀으니 말 다했고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3:02 (KST)
그리고, 그 중국의 책봉이라는게, 고려 황실에서 정식적으로 후진에 요청한건지, 아니면, 중국이 일방적으로 고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왕으로 책봉한건지 모르겠네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3:07 (KST)
후자라면, 고려는 자주국이 되는거고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3:08 (KST)
먼저 분명히 하죠. 우리는 광개토왕의 시호를 찾는 게 아니라 고구려 군주의 칭호를 찾는 겁니다. 세종대왕은 대왕이라 미칭(美稱)하지만 세종대의 군주의 칭호는 王입니다. 위에 제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와 〈금석문영상정보시스템〉을 링크해드렸습니다. 거기 가시면 각종 비문의 '탁본'과 '각종 판독문'과 해석문을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가져오신 태왕 문서를 다시 보니... 통용되는 해석은 무시(?)하고 그 중에 유리한 부분만 취한 거네요;; 조만간 수정해야겠습니다;; 각주 순서대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좀 길어질 듯 하네요; 위의 해당 링크에서 탁본과 같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① 일단 태왕 문서에서 인용하신 건 모두 5c 초중반 물건입니다. 그 앞과 뒤 시대에는 太王의 흔적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거의 광개토왕의 시호를 그냥 적은 거라서(광개토왕은 412년에 으앙쥬금) 군주의 칭호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② 광개토왕릉비에서는 太王과 王을 혼용해서 씁니다. 太王은 주로 광개토왕의 시호 자체로만 쓰입니다. 독립적으로 쓰인 경우도 2회가 있긴 합니다만... 걍 王이라 한 게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③ 모두루 묘지명과 중원 고구려비는 마모가 심각합니다. 중원 고구려비야 빨래판으로 썼었으니;; 그래서... 아주 거칠게 말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판독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보통 중원고구려비는 고려大王으로 판독합니다. 근데 太子는 太子ㅋ 물론 太王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중원고구려비는 건립목적과 위치 상 신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건 후술. ④ 태왕릉 청동방울도 보고 옵시다 大王이라 써져 있는데 太王으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눈에는 太王으로 보이는 마술 아... 본항목 문서에도 엔하식 드립치고 싶다 ⑤ 호우명 그릇과 은합우는 경주에 있는 호우총과 서봉총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호우총 그릇은 그냥 광개토왕의 시호니 별 의미가 없고 서봉총 출토 은합우가 주목되는데 그렇다면 정말로 太王이 이 시기(광개토or장수왕) 고구려 군주의 칭호였을까요?
신라에는 법흥왕대와 진흥왕대에 법흥대왕태왕론자들의 눈에는 이것도 太王으로 보인다는 게 함정과 진흥태왕이라 적힌 금석문이 있습니다. 천전리 각석 도록은 여기서 다운받기 걍 구글 이미지 검색이 편하다는 건 비밀 하지만 지증왕 이후 신라 군주의 칭호는 王입니다. 大王이나 太王이나 공식 칭호인 王의 존칭(尊稱) 내지 미칭(美稱)이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겁니다. 이는 광개토왕릉비에서 王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사실 太王과 大王은 뜻도 같고 형태도 같아서 혼용됩니다. 大王은 《삼국사기》에서 王의 미칭으로 자주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장수왕의 첩자 도림은 장수왕에게도, 백제 개로왕에게도 大王이라 합니다. 大王(혹은 太王)은 고려, 조선 때도 王의 미칭으로 계속 쓰입니다. 고려왕들이나 조선왕들이나 모두 시호엔 걍 王으로 끝나지 않고 大王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세종만 대왕이라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즉 현존하는 사서의 기록은 몽땅 王이라고 하고 大나 太는 王의 美稱으로 쓰이니... 덧붙여서 무수히 나오는 조공책봉기록...;; 물론 조공책봉체제는 당시 동아시아의 형식적 국제법이었을 뿐 실질적 지배관계는 아닙니다. 오히려 조공의 답례품인 회사의 액수가 훨씬 많고요.(그러니까 책봉 받는 측은 내정간섭도 없이 경제적으로는 이득인 장사) 그래서 宋에서는 아예 고려랑 놀지 말라는 상소도 많이 나옵니다. 이러니 군주의 칭호가 皇帝가 아니라고 해서 딱히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담으로 太는 '콩 태'자입니다. 그러니 太는 사실은 2인자라는 뜻이라는
함께 보기 -- 왕건의 조공(932), 그에 대한 답례로 후당의 책봉과 그래서 후당 연호 쓰기 시작(933), 광종의 건원(950), 그러나 바로 꼬리내리고 후주 연호 씀(951), 광종의 조공(952), 그래서 후주가 책봉해줌(953), 그 이후로도 광종은 꼬박꼬박 조공(955). 개경을 황도라고 부르라고는 했으나(960) 이후로도 중국엔 착실히 조공(962), 宋이 세지니까 바로 송 연호 씀ㅋ(963), 책봉은 당연히 이쪽의 사신이 가서 청하는 것입니다. 한국사는 삼국이래 책봉 안 받은 역사가 거의 없습니다. 신라 초중기가 있긴 하지만 이건 국력이 쪼달려서 중국이랑 못 닿아서 그런 거ㅠㅠㅠ 참고로 광종은 황제 비스무리한 시늉은 한 것 같지만 직접적으로 황제를 칭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시호도 황제가 아니라 弘道宣烈平世肅憲懿孝康惠大成大王입니다. 장수왕 역시 남조에 조공해서 책봉받고(413), 북조에도 조공하고 책봉받습니다.(435) 이후로도 역시 꼬박꼬박 조공해서 북위와는 친하게 지내고 백제, 신라만 때려댑니다. 발해도 책봉받았다는 사실은 알려드렸고... 이 정도면 더이상 한국사에서 태왕, 황제 논란은 없겠지요? 추가 광개토왕에 대한 총의는 토론:광개토왕문서를 참고해주세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6일 (월) 07:43 (KST)
조금 틀린거 같습니다만. 황제라는 칭호를 쓴 것은 사실입니다. 성상, 황상, 황도, 태자, 제왕 등등 고려사에서는 황제국만이 쓸 수 있는 용어가 수두룩합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왕으로 칭했을 뿐이죠.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인종 때 묘청이 난을 일으킨 것의 주된 이유인 "칭제건원", 즉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쓰자는 것 역시 대외적으로 황제를 칭하자는 것입니다. 황제라고 더 자주국이고, 왕이라고 더 제후국이고 이런 거 없습니다.
그리고 가로줄은 사용 자제 부탁드립니다. 엔하가 아닙니다 이곳은.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6일 (월) 07:46 (KST)
가로줄은... 본항목도 아니고 좀 이완도 적절하게 해보려고 써봤습니다. 편집하기 이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토론문서와 사관 신청, 관리자 문서 등을 많이 봤는데...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이유는 서로가 너무 딱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광종은 님의 말씀대로 황도, 태자 등 비스무리한 시늉은 많이 했습니다만 직접적으로 황제를 칭했다는 기록은 없더라구요. 결정적으로 광종도 시호가 그냥 대왕입니다. 또 역시 말씀하신대로 왕이라고 더 제후국이 아니고 그냥 독립국인 건데 일부 태왕이나 황제에 집착하시는 분들이 보여서 사족을 남겼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6일 (월) 08:00 (KST)
그렇다 하더라도 가로줄은 가뜩이나 위키백과와 그리 좋은 관계에 있는 곳에서 대표적으로 쓰이는 문법이니 만큼, 사용을 지양하시는게 좋습니다. 황도, 태자, 제왕, 황성, 성상, 짐 등등 수많은 황제국식 용어가 구체화되어서 쓰인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냥 뭉뚱구려서 왕이라고 합니다만 외왕내제로 따르자면 적어도 조정 안에서는 황제 폐하로 불렀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한국의 수많은 사학자들도 안에서는 황제로 칭했다는 것에 부정하는 쪽은 없습니다. 고구려의 태왕과는 다르게요.
그리고 광종은 시호가 아닙니다. 묘호죠.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6일 (월) 08:02 (KST)
으음... 말씀하시는 게 대동소이해보이니 더 안 붙여도 될 것 같기는 한데... 네, 말씀하신대로 황제 비스무리한 시늉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근데 내부에서만 황제놀이를 했을 뿐 '공식 칭호'가 황제는 아니니까 결국 고려도 왕국이라는 거죠... 그리고 묘호는 조선 역시 썼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을 황제국이라고는 안 하죠. 결국 시호도 봐야 한다는 건데 광종의 시호는 弘道宣烈平世肅憲懿孝康惠大成大王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묘호는 광종이고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6일 (월) 08:18 (KST)
한국사에서 묘호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왕조가 고려조입니다. 그전에는 시호만 썼었죠. 묘호도 본래는 중국의 황제들만이 붙였던 것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왕, 대내적으로 황제 이거가지고는 딱히 이견은 없을텐데요. 당연히 조선을 황제국이라고 안하는게, 짐이나 태자를 쓰지 않았고 황성, 제왕, 제신같은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명나라를 사대의 예로 섬겼죠. 고려 때의 중국 왕조인 송나라는 고려의 사신을 제후의 사신이 아닌 국신사로 대접해주었습니다. 고려의 왕의 위치와 조선의 왕의 위치는 격이 다릅니다. 이미 외왕내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신걸로 알고 고려 황제 논란은 그만 마치지요.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6일 (월) 08:22 (KST)
군주의 칭호와는 전혀 관련 없는 개인적 의견인데 고구려, 신라나 고려나 조선이나 모두 외왕내제?? 식의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는 대동소이하지 않나 합니다. 모두 중국에 책봉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자국을 높이고 그에 따라 중국을 제외한 외국은 낮추는 천하관을 보여줬으니까요. 조선 역시 중국엔 조공하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았죠. 조선은 그저 고려보다 더 형식을 벗어버린 것일 뿐 기본정신은 같지 않나...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6일 (월) 08:45 (KST)
시대마다 지위는 다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6일 (월) 09:12 (KST)

 정보

태왕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고구려 금석문은 다음과 같다:

  1. 광개토왕릉비 비문(414년) [1]
  2. 호우총 출토 호우명(415년)[2]
  3. 모두루 묘지명(5세기 초) [3]
  4. 충주 고구려비 비문(5세기) [4]
  5. 태왕릉 출토 벽돌명과 청동방울(4-5세기) [5]
  6. 연수원년명합우(451년) [6]
    — 태왕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2:58 (KST)

 정보 삼국유사에서는 "광개토왕" 등 "왕"을 사용합니다. "태왕"을 사용한 흔적은 삼국유사에서는 없습니다.-- Skky999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5일 (일) 14:53 (KST)

외왕내제 이런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역사 기록 그대로 객관적으로 태왕이라고 칭했으면 태왕이라고 하고 고려 태조(연호:천수), 광종같이 독자적 연호를 쓰고 황제국을 칭했으면 그대로 기록하면 됩니다. 이런 걸 무시하고 실질적 황제국이었나 이런 걸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요, 금나라에게 칭신하고 조공을 바친 송나라도 전부 황제 명칭을 삭제해야 됩니다. 일부에서 왜 유독 우리역사에만 이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18일 (수) 16:26 (KST)

동의합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18일 (수) 16:27 (KST)
네. 역사 기록 그대로 왕이라고 하자는 겁니다. 왕건이나 광종이나 중국 중원이 혼란에 빠져서 쓸 연호가 없을 때 잠시 독자연호를 쓸 뿐 중원질서가 잡히면 바로 중국의 연호를 썼습니다. 제가 위에 고려사를 링크해드렸으니 역사 기록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려가 황제놀이를 한 건 분명한데 황제국을 칭했다고는 분명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송은 묘호도 쓰고 존호도 황제입니다. 금과 공존했던 남송 시절 까지도 말입니다. 반면에 고려는 묘호를 쓰긴 하지만 존호는 한결같이 대왕입니다. 또한 고려 역시 금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걸 빼먹으시면 안됩니다. 유독 우리 역사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닙니다. 모든 나라에 한결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자는 것입니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오히려 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0일 (금) 22:13 (KST)
고려가 황제놀이를 했다고 주장하시면 황제를 넘어 심지어 천황이라고 부르는 일본도 이른바 황제놀이를 했고 특히 남송이야말로 진짜 빼도박도 못하는 황제놀이를 한 것이 맞습니다. 발해도 역사 기록에서 보듯이 일관적으로 연호를 썼고 각종 유물에서 황제국임이 증명되는데 자꾸 왕국이라고 하시면서 왕, 세자 등으로 표현을 바꾸시고 하여간 저와의 예전 토론에서부터 자꾸 이런 식의 개인적인 주관적인 주장으로 자꾸 문서에 혼란을 주시는데 지양을 하시는 것이 바람직해보입니다. 그리고 고려가 금에 조공을 바쳤다고요?--Lhrdrth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7:02 (KST)
... 해당 토론의 주제는 '군주의 공식 칭호 찾기'입니다. 황제놀이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닙니다. 고려 군주의 공식 칭호는 무엇이었습니까? 발해 군주의 공식 칭호는 무엇이었습니까? 일본 천황은 천황을 공식 칭호로 사용했고(일본서기 참고), 남송은 황제를 공식 칭호로 사용했습니다(송사 참고). 고려나 발해는 왕을 공식 칭호로 사용했다고 이미 사료를 제시해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증거 제시는 없이 님의 개인적 의견만 개진하면서 '자꾸 이런 식의 개인적인 주관적인 주장으로 자꾸 문서에 혼란을 주시는데 지양을 하시는 것이 바람직해보입니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백:비난, 백:예절의 위반에 해당됩니다. 군주의 칭호를 왕이라 함은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사료가 말하는 바이며 원래의 총의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발해, 고려와 왕들의 토론문서를 확인하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려-금 관계는 이 기록을 확인해주세요. 뒤로 넘기면 조공기록이 계속 나옵니다. 서로 증거로만 얘기합시다. 고구려, 발해, 고려의 왕들이 공식 칭호로 태왕이나 황제를 썼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으시다면 이외의 발언은 삼가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8:56 (KST)
발해의 경우 일관적인 연호의 사용, 묘지 금석문이나 불상 비문 등에서 황제국이었음이 입증됩니다. 고려의 경우 황제놀이라고 자꾸 폄하하시지만 각종 용어 사용, 궁궐의 형태 등에서 황제국 체제를 지향했고 풍입송등의 사료를 보면 심지어 백성들조차 고려 군주를 황제라고 불렀습니다. 공식적인 칭호야 어떻든 이정도면 황제라고 칭해도 됩니다. 님께서는 심지어 태자라는 용어까지 세자라고 바꾸시는데 명백히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적드리는 것은 인신공격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나름 님의 논지 전개의 문제점을 지적드린 것이니 오해마시고 양해하시기바랍니다. 그리고 고려는 송, 요, 금 어느나라에도 무력으로 제압당한 적이 없고 오히여 요나라같은 경우는 무력으로 제압을 했습니다. 예를 드신 그런 종류의 일상적인 외교적인 물품 교류를 조공이라고하여 마치 그나라에 종속적이었다고 주장하심은 옳지못한 견해입니다. 송나라가 요, 금에 무력으로 제압당하고 나라의 생존을 위해 엄청난 수의 물자를 갖다바친 것이야말로 종속국의 명백한 증거지요. 이런 송나라가 자칭 황제라고 칭했다고 황제국이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송나라가 이른바 황제놀이를 한 것 아니겠습니까?--Lhrdrth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9:12 (KST)
'공식적인 칭호야 어떻든 이정도면 황제라고 칭해도 됩니다' <-?? 군주의 공식 칭호 찾기가 개설 토론의 주제입니다. 말씀이 길어지시다보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시는 듯 합니다. 발해도 금석문을 링크해드리겠습니다. 정혜공주 정효공주 문왕의 존호 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묘호도 쓰지 않고 그저 王이라 했습니다. 이것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자료 제시를 해드리는 것이 개인적인 주관적인 주장으로 자꾸 문서에 혼란을 주는 행위라서 문제라는 말씀이십니까? 님께서는 제가 제시한 사료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개인적인 의견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려와 금 관계는 제가 링크해드린 사료에서 1126년 기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미일. 정응문(鄭應文)과 이후(李侯)를 금나라에 보내 본국을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라 합니다. 그런데 남송은 '명백한 종속국의 증거'이고 고려는 '일상적인 외교적인 물품 교류'라는 말씀이십니까...? 이것은 이중잣대 아닙니까? 중립적 시각을 견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언제 고려가 종속국이라고 주장했었습니까? 혹시 오해를 살지 몰라 공식 칭호만 왕인 것일 뿐 황제국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독립국이라고 사족을 달았었습니다만? 어째서 남의 주장까지 왜곡하십니까? '군주의 공식 칭호'에 대한 님의 희망이 아닌 '증거'를 더이상 제시할 수 없으시다면 토론 끝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21:01 (KST)
금나라 시기의 고려까지 황제국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술먹고님께서는 황제 칭호만 했으면 칭신하고 생존 목적의 진짜 조공까지 바친 남송도 황제국이라고 주장하시지 않습니까? 즉, 황제라는 칭호만이 황제국임을 결정하는 모든 요건이다라는 말씀이신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칭호를 왕이라고 했더라도 황제국을 지향하고 독자적 연호를 쓰고 "황상" 등의 칭호를 쓰고 "허왕부"같은 후왕 체제를 갖춘 발해나 그외 실질적으로 황제국 체제였으며 강성했던 전기 고려 정도면 그 왕들을 황제라고 칭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00:19 (KST)
님께서는 말씀이 자꾸 바뀌십니다. '고려가 금에 조공을 바쳤다고요?' -> '예를 드신 그런 종류의 일상적인 외교적인 물품 교류를 조공이라고하여 마치 그나라에 종속적이었다고 주장하심은 옳지못한 견해입니다.' -> '금나라 시기의 고려까지 황제국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 그럼 애당초 금나라와 고려 관계에 대한 질문은 왜 하시고 물품 교류라는 말씀은 왜 하셨습니까? 토론을 하자는 것인지 그저 반대를 하고 싶으신 것인지 헷갈립니다. '생존 목적의 진짜 조공'이라는 것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조공에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위키백과는 독자연구를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 고려와 발해는 일부에서 황제국만이 쓸 수 있는 용어를 썼었더라도 공식적으로는 왕을 지향했던 나라들입니다. 저는 고려와 발해가 왕을 칭했다는 것과 황제가 공식 칭호라고 말하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료와 금석문으로 증명해드렸습니다. 님께서는 독자연구를 발표하지 마시고 제가 제시했던 증거들을 반박하거나 반대 증거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라는 독자연호도 썼었고 밑에 왕도 뒀었고(ex.갈문왕) 묘호도 한 명이지만 썼었습니다. 그런데 신라를 황제국이라 합니까? 아닙니다. 반면에 대한제국은 레알 열강들의 침탈로 내정간섭을 받았는데도 우리는 대한제국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황제에 올랐다고 얘기합니다. 왜 대한제국은 황제라고 하는데 남송은 아니라는 거죠? '송나라가 자칭 황제라고 칭했'기 때문이라고요? 冊命爾為帝,國號宋(너(송 고종)를 황제로 책봉하고 국호를 송이라 한다. 《금사》77권 종필전) ... 자꾸 거짓된 사실을 근거로 말씀하시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고려인들과 발해인들은 자신들의 군주에게 스스로 王이란 존호를 올리고 王이라고도 자주 불렀는데 왜 자꾸 당사자들을 무시하시려는 겁니까? 지금까지 나왔던 것을 투박하지만; 표로 정리합니다.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해가며 반대를 위한 반대와 독자연구를 발표하시는 것은 그만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14:49 (KST)
표 자료
구분 독립국(황제국) 지향 내정 간섭 독자 연호 묘호 사용 자칭 시호가 황제 타칭 책봉명이 황제 시호가 왕 책봉명이 왕 타국 조공 여부 비고
남송 O X O O O O X X O
발해 O X O X X X O O O
고려 O X X O X X O O O 독자연호를 아주 짧은 시기만 사용
대한제국 O O O O O - X - X 참고용
고려가 왜 자칭 존호가 황제가 아니죠? 황제라고 한 예 여럿 있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22일 (일) 16:16 (KST)
음... 혼동의 여지가 있는 것 같으니 시호로 수정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17:42 (KST)
제 말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조공이라고 해서 전부 송나라같이 무력에 져서 생존을 위해서 물자를 바친 경우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나라간의 일상적인 무역 교류이나 이른바 중국(?) 측의 위신을 생각해서 명목상의 조공 형태를 빌린 것이고 책봉도 그나라에 칭신하고 종속국임을 맹세한 것이 아니고 국제적 교류관계에서 명목적으로 받아들인 것 뿐입니다. 고구려나 발해 전부 독자적인 천하관이 있었고 스스로 태왕국 또는 황제국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료, 고고학 금석문 사료 등에서 발견되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고 그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황제국이라 생각하고 황제라고 여겼는데 후세에서 이게 외왕내제다, 황제놀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황제, 태자의 칭호를 왕, 세자로 바꾼다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발해의 경우 공식적인 칭호는 대왕이었다고 하니 예를 들어 문왕을 문황제라고 기록하면 안되겠지만 일반적인 칭호로 발해의 군주를 황제라고 하는 것은 무방한 것 아닙니까?--Lhrdrth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16:32 (KST)
... 고려가 요, 금에 조공하고 그들 나라의 연호를 쓴 것은 '명목상의 조공 형태'고 남송은 '생존을 위해서'라며 달리 보시는 것 자체가 이중잣대라니까요. 계속 독자연구를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송은 그들 나라의 연호를 쓰지도 않았고, (형식상) 요나라의 위였으며, 남송은 해릉왕의 남침이 실패하면서 세폐도 깎고 숙질관계로 변합니다. 반면에 고려는 송, 요, 금으로부터 모두 왕으로 책봉받았습니다. 남송은 황제라고 책봉받을 때 말입니다. (남송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독자적인 천하관이 있었고 독립국인 것은 사실입니다. 근데 그것이랑 공식 칭호랑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고려가 송, 요, 금으로부터 황제로 책봉받았습니까? 왕으로 책봉받았습니까? 고려 왕들의 시호는 뭐죠? 고려의 그 군신관계라는 기록들은 뭐죠? 이게 어떻게 후세에 새롭게 해석한 겁니까? 제가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그 당시의 사서와 금석문들에 있는 내용인데요. 시호가 대왕이니 황제로 하는 것은 무방하다? 님께서는 세종대왕이 있었으니 조선은 황제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황제 칭호를 위하시는 것을 반 정도는 이해합니다만 중립적 시각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신라, 남송,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모두 일관적인 기준으로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째서 (당시의 기록은 무시한 채) 현재 자신의 입맛대로 재단하신단 말입니까? 고려와 발해는 황제국이라 하기에는 조건 몇 가지가 미달됩니다. 무엇보다 발해인과 고려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왕들의 시호를 왕이라 올렸습니다. 그 광종조차 말입니다. 이거면 솔직히 더이상의 토론은 무의미한 것 아닙니까? 사서와 금석문의 기록대로 공식 칭호인 왕을 사용하되 황제국과 비슷한 용어를 사용했으며 독자적인 나라였다는 것만 분명히 하면 되는 것을 왜 이렇게도 고집부리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17:42 (KST)
고집이 아닙니다. 도대체 세종대왕을 누가 황제라고 부릅니까? 조선이 스스로 황제국을 지향하고 연호를 사용했습니까? 그러나 고구려, 발해, 전기 고려는 다릅니다. 연호도 사용했고 스스로 황제국도 지향했습니다. 일단술먹고님께서는 심지어 태자도 세자로 격하시키시는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명목적 책봉 그게 무슨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제 주장은 공식적인 칭호가 왕이면 해당 왕의 공식적인 명칭을 무슨무슨왕으로 기록하는 것은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만 굳이 일반적 호칭으로 사용되는 황제를 일일히 왕으로 바꾸고 심지어 태자라고 불렀음이 명백한데도 조선같은 제후국을 자처한 나라가 사용한 세자라는 호칭으로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20:06 (KST)
전기 고려에서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한 것은 매우 짧습니다. 사료를 직접 보여드렸는데도 자꾸 독자연호를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며 방해편집을 하시니 다시 알려드립니다. 고려 때 독자연호를 사용한 것은 왕건과 광종 뿐이고 다른 왕들은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전기 고려라고 뭉뚱그리시는 것은 왜곡입니다. 그리고 왕건과 광종조차 매우 짧은 시기만 씁니다. 왕건은 건국부터 15년 정도까지 나라의 기틀이 잡히지 않았을 때만 독자연호를 사용했고 태조16년부터 후당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독자 연호를 스스로 폐기합니다. 광종은 26년 정도 재위를 하는데 딱 5-6년만 독자연호를 사용했습니다. 나머지 20년은 중국의 연호를 씁니다. 그 독자연호를 쓰는 시기도 후한->후주. 후주->송으로 바뀌는 혼란기에만 썼을 뿐입니다. 이래도 '전기' 고려에서 독자연호를 사용했다고 계속 거짓 주장하실 겁니까? 발해는 묘호를 전혀 쓰지 않았다고 알려드렸고, 역시 '자칭'타칭 공식칭호가 왕이라고 기록들을 보여드렸습니다. 발해인과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군주를 王이라고도 부릅니다. 전 책봉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던 게 아니라 내부적 모습에서도 그 요인을 찾아드렸습니다. 표를 통해 몇 가지 조건이 미달된다는 것도요. 발해와 고려 역시 말씀하신 조선처럼 스스로 생존을 위하여 중국에 조공하며 명목상 제후국으로 책봉받습니다. 이거면 이미 끝난 겁니다. 누구의 조공은 가짜고 누구의 조공은 진짜라는 독자연구는 여기서 발표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또 왜 은근슬쩍 끼워넣습니까?; 또한 전 고려의 태자를 세자로 격하시킨 적이 없습니다. 자꾸 거짓 주장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발해의 세자 대광현 뿐인데 그것은 기록에 따른 겁니다. 渤海國世子大光顯率衆數萬來投(발해 세자 대광현이 무리 수만을 이끌고 왔다. 《고려사》2권 태조17권) 其世子大光顯(《고려사》93권 최승로전) ... 그리고 황제가 언제부터 일반적 호칭이었습니까?;; 사실 일반적 호칭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니까 이리도 강하게 고집부리셨던 것 아닙니까? 애당초 님께선 독자연구를 전제로 한 것이었네요;; .... 그럼 모든 문제는 해결된 것 같군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3일 (월) 06:45 (KST)
조선에서 펴낸 고려사는 황제국을 지향했던 고려의 용어 등을 제후국을 자처했던 당시 성리학자들이 전부 세자 등으로 뜯어고친 겁니다. 하물며 발해 태자라고 가만 놔뒀겠습니까? 세종대왕도 이문제에 유감을 표시한 적도 있지요. 이를 모르실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말씀을 하시니 심히 유감입니다. 발해 발굴 비문을 보면 발해군주를 황상, 비를 황후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자를 태자라고 했겠습니까? 명목상 책봉받아서 얘기가 끝이면 무력에 져서 스스로 칭신하고 자진해서 책봉받은 남송은 도대체 어떤 끝일지 궁금합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3일 (월) 14:23 (KST)
마침 위키백과에 좋은 자료가 있네요. 이 문서를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역사 부풀리기도 문제지만 분명히 황제국이라고 했는데 황제놀이니 뭐니해서 아니라고 깎아내리는 것도 그못지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3일 (월) 15:01 (KST)
그 황상이라고 써놓은 묘비명에 王이라는 글자도 2번 나옵니다.(엄밀히 말하면 3번인데 다른 1번은 발해의 왕호와는 관련 없음) 묘비도 다 링크해드렸는데 확인은 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위키백과 문서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말씀이십니까? 애당초 출처표기도 제대로 안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로 그 문서에도 발해는 황제의 칭호와 다른 내용이 적혀있고 고려의 왕호 역시 황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 토론의 주제는 독자적인 천하관의 유무가 아니라 왕호 찾기입니다! 또 현재의 《고려사》가 당시 성리학자들이 전부 세자 등으로 뜯어고친 거란 말씀입니까? 고려사 서문은 읽어 보셨습니까? '고려사 편찬할 때 해프닝이 있었다'와 '그래서 현재의 판본이 뜯어고쳐진 거다'는 뜻이 다른 문장입니다. 마지막으로 님과 같은 논리라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칭신하고 자진해서 5대와 송에게 왕으로 책봉받은 고려는 남송보다 더 아래로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송은 그래도 싸워보기라도 하고 왕호도 황제를 지키고, 군신관계에서 숙질관계로 변화시키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고려는 귀주대첩 후로도 요에게 조공하고 요의 연호를 갖다 씁니다.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꾸 독자연구를 기반으로 토론하시는데 이건 정책과 지침 위반 아닙니까? 최대한 좋은 의도로 봐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이제는 백:방해편집의 의도로 보여집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02:50 (KST)
자꾸 방해편집이 그러시는데 심히 유감입니다. 그리고 고려가 5대와 송에게 무력으로 진압을 당했습니까? 그리고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책봉은 명목적인 것입니다. 고려는 오대국가와 송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요를 무력으로 제압한 국가입니다. 고려는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전기간은 아니지만 일정기간 황제국을 지향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 그걸 뭘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연호 문제 제기를 잘하셨네요. 연호 사용이야말로 이른바 황제국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존속기간 내내 연호를 사용한 발해가 황제국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연호 사용하는 국가의 왕위 계승 1순위자를 당연히 황태자 내지 태자라고 했지 제후국의 용어인 세자라고 했겠습니까? 이건 상식적인 것 아닙니까? 어쨌든 이번 토론도 그렇고 일단술먹고님과의 토론은 항상 팽팽한 접점으로 진전이 없으니 이점도 유감입니다. 제발 한발짝만 물러서셔서 본인의 주장에만 의미를 두시지말고 그 반론의 의미도 잘 새겨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3:56 (KST)
객관적으로 태왕을 칭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도 얘기했듯이 호태왕이지 태왕이 아닙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8일 (수) 16:29 (KST)
양념파닭님께서 제시하신 자료를 보면 태왕을 칭한 적이 없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른 것 같고 하여간 기록이나 고고학 자료에서 입증되는대로 기록하면 된다는 것이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18일 (수) 16:43 (KST)
태왕이란 용례가 그나마 사서에서 정확하게 기록되는건 삼국사기에서 몽고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면서 태조(太祖)의 묘호를 태왕(太王)으로 격하시킨 거 말고는 문헌학적으론 찾을 수 없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8일 (수) 17:01 (KST)
태왕과 관련해서 위에 많은 기록이나 고고학 자료들을 링크해드렸으니 확인하시면 될 듯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0일 (금) 22:13 (KST)

토론 끝내죠. 일괄되게 왕, 시호에선 대왕(大王)으로 칭하면 되는 것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2월 18일 (수) 16:33 (KST)

고구려, 발해, 고려 모두 더이상의 역사적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면 기존의 자료들이 입증하는 바와 같이 2014년 중반까지의 총의를 재확인하면서 일괄되게 군주의 공식 칭호는 왕이라고 하면 될 듯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0일 (금) 22:13 (KST)

고구려 태왕건에 대해서는 한발짝 물러납니다. 하지만, 발해와 고려에 대해서는 술먹고님의 의견에 도저히 납득이 안가네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24일 (화) 13:59 (KST)

음... 물론 의견에는 납득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는 독자연구나 소수의견의 부각은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처 몇 개를 더 제시하겠습니다. 황제는 공식 직함이 아니어도 쓰일 때가 있습니다.《조선왕조실록》 귀주대첩 승전 후에 요나라에 보내는 고려의 국서입니다. 요나라를 上國이라 하고 요나라의 군주는 황제 폐하로, 고려의 군주는 왕이라 칭합니다. 또한 요나라에 부지런히 조공을 바치며 제후의 책봉을 받고 선주(宣州)와 정주(定州)를 떼어주었기 때문에 돌려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즉 전쟁에선 이겨서 직접지배를 피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래라는 뜻입니다. 이것 말고도 요나라에 보내는 국서는 한결 같습니다. 《고려사》〈찬수범례〉에서는 참람된 일이기는 하지만 당시 칭한 바에 따라 기록했다고 써져 있습니다. 《고려사》에서 王을 검색했습니다. 《고려사절요》, 〈대안사광자대사비〉(광덕 2년)에서는 광종을 왕이라 합니다. 〈고미현서원종〉(준풍4년)에서도 광종을 왕이라 합니다. 광덕과 준풍은 광종의 26년 재위 동안 독자 연호를 썼었던 5-6년의 시기 입니다. 무엇보다 광종이 직접 발원한 《대반약파라밀다경 사경》〈권수〉(광덕4년)에서는 내수용인데도 광종이 스스로를 王이라 일컫습니다.[7] 발해 대조영의 책봉명은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이고, 선왕 같은 경우엔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도독 발해국왕'입니다. 《구당서》 다른 왕들도 모두 왕이라 책봉받고 관직까지 받고 있습니다. 〈정혜공주〉〈정효공주의 묘비〉에서도 王이라 합니다. 발해 〈순목황후 묘비〉에서는 王의 皇后라 하여 왕은 왕이고 왕비는 황후라 표현하는 이중성을 보여줍니다.[8] 발해는 결정적으로 묘호도 안 쓰고 그냥 무왕, 문왕이라 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통사 《신편한국사》에서도 발해와 고려의 군주들을 모두 왕이라 합니다. 다른 백과사전에서도 일괄적으로 광종을 왕이라 합니다. 발해도 일괄적으로 왕이라 합니다. 이상과 같이 고려는 왕,왕후,태자. 발해는 왕,황후,세자라 하고 있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7일 (금) 09:41 (KST)

각주

    • 원문 출처
      • 탁본
        1. 酒 影信本, 1881∼1883.
        2. 水谷悌二郞本, 1887∼1889.
        3. 林基中本.
      • 석문
        1. 水谷悌二郞. 《書品》.  .
        2. 王健群. 《好太王碑硏究》.  .
        3. 武田幸男. 《廣開土王陵碑原石拓本集成》.  .
        4. 林基中. 《廣開土王碑原石初期拓本集成》.  .
    • 번역: 사단법인 고구려발해학회
  1. 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
  2. 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한국고대금석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國岡上聖太王(국강상성태왕), 國岡上大開土地好太聖王(국강상대개토지호태성왕)  |인용문=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6) (도움말)
  3. 高麗太王(고려태왕), 太王國土(태왕국토)
  4.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 辛卯年好太王(신묘년호태왕)(())()(())九十六(구십육)
  5. 延壽元年太歲在辛卯三月中 太王敎造合杅 用三斤六兩 (바닥)
    延壽元年太歲在辛卯三月國太王造合杅 三斤

    — 고려대학교 박물관, <<한국 고대의 Global Pride, 고구려>>,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박물관 특별전, 2005.
  6. 이기백 편저, 《한국상대고문서자료집성》, 일지사
  7. 송기호, 〈용해구역 고분 발굴에서 드러난 발해국의 성격〉, 《고구려발해연구》, 고구려발해학회, 2010

고려는 황제국?

개인적으로 봤을때 고려 같은 경우 국내적으로는 황제, 대외적으로는 왕으로 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경우 왕국으로 표기해야하는지 황제국으로 표기해야하는지 모르겠네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3월 11일 (수) 19:53 (KST)

위에 토론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해진것 같지 않아, 부득이하게 토론 엽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3월 11일 (수) 19:54 (KST)

바로 위에서 다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제가 광종조차 독자연호를 쓰던 시절에 스스로를 왕이라고 일컬었다는 확인할 수 있는 출처도 모두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어떠한 반증도 없이 그저 토론을 또 개시하시는 것은 솔직히 조금 심하시지 않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3월 11일 (수) 20:00 (KST)
이거요?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3월 11일 (수) 20:03 (KST)
내부로도 황제라고 칭한게 분명한건 사실이므로 황제국이라도 써도 무방합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13일 (금) 11:16 (KST)
그리고 이미 위에서 황제 왕 이런건 끝났다고 했는데 왜 또 다시 엽니까?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13일 (금) 11:17 (KST)
그런데 내부로도 황제라고 칭했다는 것조차도 분명하지 않다는게 위의 기나긴 토론 내용인 것 같은데요. 외왕내제는 내부적으로 황제국에 준하는 요소가 있었다는 것이지, 대놓고 황제 칭호를 사용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발해의 예처럼 황상과 왕, 황후를 제멋대로 혼용하고 있는 사례를 생각해 보세요. 고려도 마찬가지로 황도와 왕을 혼용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동양의 작위 체계만 알고 있어서 외왕내제가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것이지, 실상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이런 사례는 흔해요. 중세 프랑스만 해도 신성로마의 황제보다 명백한 하위 작위였지만 프랑스 내부에서는 프랑스 왕도 황제와 동급이다는 논리로 황제의 입김을 무시하죠. 그렇다고 대놓고 황제라고 칭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현실인걸요. 고려나 발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내부적으로 대놓고 황제를 칭한 베트남의 사례가 특수한 것이라고 봅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3월 13일 (금) 14:07 (KST)
엄밀히 말하면 황제국을 "지향"했던 것은 사실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왕국의 체제랑 황제국의 체제를 섞어가면서 쓴 것은 사실이니까요. 정 그렇다면 그냥 자주국이라 쓰던지요.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13일 (금) 14:43 (KST)
고려에 대해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거 같아서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3월 13일 (금) 14:13 (KST)
무엇이 안 이뤄졌습니까? 위에서 부를 떄는 왕으로, 시호는 대왕으로 하자고 이미 결판난거 아니었습니까?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13일 (금) 14:43 (KST)
개인적으로 봤을때” 이 토론을 시작하는 문구입니다. 위키백과에서 이 문구 자체가 인정이 되는 것인가요? 이 문구를 놓고 보자면 토론 자체가 될 사안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자료에서 볼 때 내부적으로 황제라 칭했다고 해야 비로소 토론 사안이 되는 거죠.--Xakyntos (토론) 2015년 3월 13일 (금) 15:28 (KST)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볼 사항이라면 의견 요청을 달아서 사용자들을 모으는 것보다는 스스로 토론에 참여한 사용자들에게 사용자토론란에 가서 자문을 받는 것이 맞죠. 말씀하신대로 개인적인 문제에 굳이 이렇게 모여서 토론하는 것이 어색합니다. 참고로 양념파닭씨는 굳이 개인적인 궁금점때문에 의견 요청을 단 것이지 황제가 맞느냐 아니냐같은 증거를 다신 건 본 적이 없군요.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13일 (금) 16:21 (KST)

궁금점 풀리셨으면 의견 요청 지웁니다. 의견 요청을 사적인 이유로 달진 말아주세요.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14일 (토) 03:09 (KST)


황제칭호에 관한 당대인들의 금석문 자료

그렇습니다. 위키 편집자의 극소수가 토론을 열고 그들끼리 의견을 모으고 결정한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고려 황제의 칭제기록은 [[3]] 이곳에서 당대인들의 금석문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하셨던 4대 황제 광종의 예도 황위에 올랐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 19대 황제 명종. 20대 황제 신종의 예도 황제를 옹립한 최충헌묘지명에서도 명종을 皇, 신종을 皇太弟로 기록한 증거가 있습니다. (최충헌묘지명) 본인은 현재 여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관계로 대중국(外王)칭호 왕→ 황(皇帝)으로 수정은 않겠습니다만, 무조건적인 왕칭호만을 고집하지 말아 주십시오. 의견은 존중합니다만, 위키는 소수의 의견만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기에 글 적고 갑니다.

추가 '드라마 보고 바꾸는 것이 아닌, 금석문 기록을 보고 수정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금석문 기록에서도 王과 皇이 혼용된 것은 사실이므로, 둘 다 사용하는 것 또한 무방합니다. 편집법을 잘 모릅니다. 양해바랍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82.211.144.71 (토론 · IP 정보)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서명을 하시려면 물결표 4개(--~~~~)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네. 황제라고 표현한 금석문들이 존재합니다. 소수요. 그것조차 거의 개인적인 기록들입니다. 안타깝게도.... '금석문을 포함한' 대다수의 기록... 특히 공문서나 정사류에서는 왕이라고 합니다. 역사란 일부 특이한 기록이 있다고 하여 바로 그것에만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료를 골고루 취합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보아야 하며 그것을 교차 검증, 사료 비판 따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나 님과 같은 위키 편집자들은 그렇게 전문가들이 낸 연구업적을 그대로 싣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황제라고 하면 안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고려 군주들의 공식 직함을 왕이라고 합니까? 황제라고 합니까? 백:독자연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토론은 이미 예전에 끝났으나 혹시 신규 사용자가 오해할 수도 있어 사족을 달아둡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4일 (화) 20:39 (KST)

삼강행실도삼강행실도 (부산)은 서로 다른 문서인가요?

각각 다른 대상을 서술하는 문서인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Realist (토론) 2015년 4월 22일 (수) 19:02 (KST)

같은 겁니다. 여러 판본 중의 하나입니다... 삼국사기삼국유사, 고려사는 큰집에서 여러 판본들이 같이 살고 있는데 희한허게 얘만 분가를 했군요. 쪼렙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합치고 좀 다듬으면 좋을 듯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25일 (토) 06:50 (KST)
같은 문서라면 저도 일단술먹고합시다님 의견에 찬성합니다. --Realist (토론) 2015년 4월 26일 (일) 00:06 (KST)
예, 저도 '사:일단술먹고합시다' 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4월 26일 (일) 00:24 (KST)

후백제, 태봉 항목과 설립년도 분류

사실상 독립한 각각 892년 설립과 898년 설립 분류를 붙일까요? 아니면 정식으로 국호와 왕을 선포한 것을 기준으로 각각 900년 설립과 901년 설립 분류를 붙일까요?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철수와영희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조선의 과거 제도 문서에 기여 부탁드립니다.

해당 문서의 내용이 상당히 부족하고 부정확해 보입니다만,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편집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실력자분들께서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Realist (토론) 2015년 11월 6일 (금) 12:46 (KST)답변

고려 황제

특수:기여/219.254.165.223이 고려의 군주 문서를 모두 황제로 바꿔놓았군요. 일단 링크와 분류 등이 망가져 모두 되돌려놓았습니다. -- ChongDae (토론) 2015년 12월 17일 (목) 17:39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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