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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량(鄭羽良, 1692년 ~ 1754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자휘(子翬), 호는 학남(鶴南)이다.

생애편집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서 설서, 정언, 수찬, 검토관을 지내고 수찬, 교리를 거쳐 부수찬, 시독관을 지내고 정언으로 있다가 개성부 시재 어사를 거쳐 시독관, 교리, 지평, 수찬, 헌납, 부수찬, 교리, 검토관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고 시독관을 지내고 이조정랑이 되었다. 교리, 부수찬, 부교리, 헌납을 두루 거쳐 이조정랑, 부응교, 집의, 시독관, 사간, 응교, 부응교를 거쳐 승지가 되고 이후 대사간, 대사성, 승지를 지내고 참찬관을 거쳐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대사성, 승지, 형조참의를 지내고 대사성을 거쳐 황해도관찰사가 되고 좌승지를 거쳐 이조참의로 승진한다. 이후 수원부사를 지내고 문위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부제학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고 연이어 대사성을 거쳐 승문원부제조를 하다 이조참의를 거쳐 개성유수가 되고 다시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이후 이조참판을 거쳐 이천부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연이어 홍문관제학을 거쳐 부제학, 이조참판, 동지의금부사를 거쳐 이후 한성부좌윤, 이조참판, 예문관제학을 두루 거쳐 승지와 참찬관을 겸한 뒤 도승지, 형조판서, 이조판서로 동지성균관사를 겸하고 이조판서, 우참찬을 하며 지경연사, 우빈객을 겸한 뒤 좌참찬, 우참찬, 예조판서, 예문관제학, 이조판서를 하다 예문관제학, 예조판서, 홍문관제학까지 하고 우참찬, 좌참찬, 병조판서를 하고 판의금부사, 병조판서를 거쳐 홍문관제학, 지경연사, 판의금부사를 하고 이후 다시 병조판서판의금부사를 거쳐 판돈녕부사, 예문관제학을 거쳐 판의금부사, 이조판서를 지냈다. 이후 예문관제학, 이조판서를 지내고 1749년(영조 25) 우의정에 올랐으며 판중추부사로 퇴직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가족편집

  • 조부 : 정인빈(鄭寅賓)
    • 아버지 : 정수기(鄭壽期)
    • 어머니 : 윤희수(尹希壽)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