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타 티사 3세

제타 티사 3세(싱할라어: ජෙත්ත තිස්ස ෩, 589년 ~ 624년 2월 21일(624-02-21))는 아누라다푸라 왕국 모리야 왕조의 제19대 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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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타 티사 3세
ජෙත්ත තිස්ස ෩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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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라다푸라라자
재위 623년 11월 18일 ~ 624년 2월 15일
전임 아가보디 3세
후임 아가보디 3세
신상정보
국적 아누라다푸라 왕국
출생일 589년
출생지 아누라다푸라 왕국 아누라다푸라
사망일 624년 2월 21일(624-02-21) (35세)
사망지 아누라다푸라 왕국 아누라다푸라
왕조 모리야 왕조
배우자 왕비 1명, 후궁 1명
자녀 2남 2녀
서차남: 다토파 티사 1세
기타 친인척 아가보디 1세(이복 종조부)
아가보디 2세(이복 큰아버지)
상가 티사 2세(이복 큰아버지)
모갈라나 3세(이복 큰아버지)
아가보디 3세(이복 서형)
종교 불교

생애편집

보위 등극 이전편집

그는 614년 3월 11일을 기하여 부왕 실라메가바나 군주가 보령 68세로 등극하는 것을 목도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왕비 1명(왕비와 사이에 슬하 1남 1녀(맏아들 밑으로 딸)를 둠.)과 후궁 1명(후궁과 사이에 슬하 1남 1녀(서자 밑으로 서녀)를 둠.)을 거느림과 동시에 자녀는 슬하 3남 2녀(5남매)를 두는 등 모두 슬하 2남 7녀(9남매)를 둔 그는 아직 보위 등극을 하기도 1년 전이던 622년(33세 때)에 당시 18세였던 적장남(嫡長男, 정실 왕비 소생 맏아들, 적장자부(맏며느리)와 사이에 슬하 1녀 외동딸을 둠.)을 홍역으로 먼저 앞세워 떠나보내는 가슴 찢기는 듯한 슬픔을 겪기도 하였다.

보위 등극 이후편집

623년 9월 16일을 기하여 부왕(父王)이 향년 77세로 붕어하자 이복 형(아가보디 3세)이 보위를 승계받아 보령 51세로 등극하는 것을 목도였으나 같은 해 623년 11월 18일, 당시 왕제(王弟)라는 신분이었던 그는 갈수록 연로자(年老者)들의 종묘사직 제사장 정치 체제에 혐오감을 느끼다가 결국 차라리 군사를 거병하여 일으킨 왕실 쿠데타를 감행하여 이복 형 아가보디 3세 군주를 보위에서 내쫓아 냉궁(冷宮)에 감금 조처하고 자신이 보위 등극하였지만 이듬해 624년 2월 15일을 기하여 배다른 형 아가보디 3세가 냉궁(冷宮)에서 특파시킨 세작(첩자)들을 비롯한 역(逆)반란군을 거병하여 왕실 내부 특정 친위 성향 역(逆)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석 달 남짓여만에 보위에서 쫓겨나고 나서는 결국 구궁(舊宮)에 감금 조치 처분되었다.

보위 폐출 이후편집

구궁(舊宮)에 감금 조치 처분된지도 된지도 엿새가 지난 624년 2월 21일, 구궁(舊宮)에서 향년 35세로 음독 자살(飮毒 自殺)하였다.

사후편집

서차자(庶次子)가 보위 등극편집

그가 자살한지도 16년 후가 지난 640년 4월 12일, 그의 서차남(庶次男)다토파 티사 1세가 당시 보령 35세의 나이로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신진 귀족들과 고급 신료들에게 전격적으로 추대를 받아 보위 등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