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제1차 청천강 전투한국 전쟁 중기 11월 초 북부로 진격하던 국군이 중공군과 조우하여 격전을 벌인 전투로 수적 열세 속에서 격전을 치른 국군은 인해전술로 침공하는 중공군에 맞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전투를 벌였다.

제1차 청천강 전투
한국 전쟁의 일부
날짜1950년 11월 3일 ~ 11월 5일
장소
평안북도 청천강과 주변 지역 일대
결과 중공군의 승리
교전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미국의 기 미국
영국의 기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중화인민공화국
지휘관
미국 월턴 워커 미 제8군 사령관 중장
미국 프랭크 W. 밀번 제1군단장 소장
미국 존 H. 처치 제24사단장 소장
미국 존 L. 트론모튼 제5연대장 대령
미국 네드 D. 무어 제19연대장 대령
미국 리처드 W. 스테픈스 제21연대장 대령
미국 허버트 R. 게이 제1기갑사단장 소장
미국 마르셀 G. 크롬베즈 제5기갑연대장 대령
미국 윌리엄 A. 해리스 제7기갑연대장 대령
미국 레이몬드 D. 팔머 제8기갑연대장 대령
영국 바질 A. 코드 영 제27여단장 준장
영국 A. M. 맨 미들섹스 대대장 중령
영국 G. L. 넬슨 아가일 대대장 중령
오스트레일리아 I. B. 버거슨 호주군 대대장 중령
대한민국 백선엽 제1사단장 준장
대한민국 김동빈 제11연대장 대령
대한민국 김점곤 제12연대장 대령
대한민국 조재미 제15연대장 대령
중화인민공화국 이천우 제13병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송상근 제38군장
중화인민공화국 강옹휘 제112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당청산 제113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적중유 제114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오신천 제39군장
중화인민공화국 장길성 제115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왕양 제116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제117사단장 불명
중화인민공화국 한선초 제40군장
중화인민공화국 등악 제118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남센원 제119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서국부 제120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증택생 제50군장
중화인민공화국 조학정 제148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용약 제149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왕가선 제150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소신괴 제66군장
중화인민공화국 성소보 제196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제197사단장 불명
중화인민공화국 제198사단장 불명
병력
약 4만 5000명 약 15만 명

국군은 수적 열세로 인해 후방의 부대를 급거 전방으로 이동시키는 필사적인 전투를 벌여 중공군을 격퇴하고 진격하였으나 이후, 철수를 거듭할 수밖에 없게 된다.[1]

배경편집

1950년 10월 24일 맥아더(MacArthur) 라인의 철폐 선언에 따라 만포진-신의주의 한만국경선을 목표로 무제한진격을 개시한 미 제8군은, 10월 25일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의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와 미 제1군단의 우익인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제1사단이 각각 온정리 전투운산-영변 전투에서 중공군 대부대와 접전하여 격전을 벌임으로써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임부택 대령이 이끄는 제6사단 7연대는 초산까지 진격하였다가 명령에 따라 반격을 시작하여 두만강변에서 또 다시 중공군의 급습으로 분산된 데에 이어 제2연대를 증원한 김익렬 대령이 이끄는 제6사단 19연대와 고근홍 대령이 이끄는 제8사단 10연대가 온정리 부근에서 중공군의 공세로 큰 타격을 받았다.

한편 운산으로 진격한 제 1사단이 완강한 중공군의 저항으로 진격이 계속 지연되자 미 제8군 사령관 월턴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프랭크 W. 밀번(Frank W. Milburn) 소장이 이끄는 미 제1군단 예비로써 평양-진남포 경비 임무를 담당 중이던 허버트 R. 게이(Hobart R. Gay) 소장이 이끄는 미 제1기갑사단을 운산으로 진출시켜 제1사단을 초월하는 즉시로 한만국경선을 목표로 진격토록 하였다.

이와 동시에 평양을 탈환한 다음 미 제1군단의 작전 통제 하에 주력을 후속 중이던 신상철 준장이 이끄는 제7사단을 유재흥 소장이 이끄는 제2군단에 복귀시켜 전열을 가다듬게 하였으며, 후방지역의 패잔병을 격멸 중이던 미 제9군단(미 제2, 제25사단)의 급거북상을 명령 하였다.

작전계획편집

미 제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중장은 중공군 제38, 제40군의 공세가 제2군단 정면으로 집중하여 청천강 남안의 요충인 개천-군우리 부근의 전황이 긴박하여지자 미 제1기갑사단을 청천강 남안으로 철수시켜 군우리 정면의 전황에 대응한 반격부대로 배치하는 한편, 미 제2사단의 선견부대인 제9연대와 미 제1군단의 일부병력을 제7사단에 증원케 하고 제2군단 주력(제6, 제8사단)으로써 덕천-백탑산선에 대한 반격을 감행토록 배치하였다.

이와 동시에 미 제1군단은 일부병력으로 박천 부근의 대령강안주 북방에 교두보를 확보케 하여 우선 청천강 북안에서 중공군의 침공을 저지케 하는 일방 군단주력은 청천강 남안에서 재편성토록 하였는데 이는 제2군단 주력의 덕천-백탑산선 반격으로 군우리-개천정면의 위협을 배제하고 전선을 정리하는 대로 총반격으로 이행하여 일거에 한만국경선까지 진격하고자 하는 것이 그 작전방침이었다.

전투 과정편집

11월 3일편집

이날 군단은 미 제1기갑사단을 고성리(안주 동북쪽 3km)로 철수시켜 군우리 정면의 위기에 대응케 하는 한편, 네드 D. 무어(Ned D. Moore) 대령이 이끄는 미 제24사단 19연대를 청천강 북안에, 바질 A. 코드(Basil A. Coad) 준장이 이끄는 영 제27여단과 호주군 대대를 박천 부근의 대령강 양안에 각각 교두보진지를 확보케 함으로써 청천강 북안에서의 적의 예봉을 꺾을 태세를 갖추었으며 입석-영변선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집중공격을 과감하게 저지 중이던 제1사단은 신안주를 목표로 철퇴하기 시작하였다.

존 H. 처치(John H. Church) 소장이 이끄는 미 제24사단은 군단 작명에 따라 전날 영 제27여단의 엄호 하에 이구동-정차동에서 반격을 시작하였는데 제19, 제5, 제21연대순으로 대령강을 도하하여 사단 CP를 백석현(안주 동북쪽 5km)에 개설하고 리처드 W. 스테픈스(Richard W. Stephens) 대령이 이끄는 제21연대를 사단 예비로 백석현에 배치한 다음, 제19연대를 청천강 북안에 배치하여 교두보진지를 점령케 하였고, 존 L. 트록모튼(John L. Throckmorton) 대령이 이끄는 제5연대를 군우리로 급진시켜 제7사단을 증원토록 하였다.

영 제27여단은 태천-정주에서 미 제24사단의 반전을 엄호한 다음, 이날 박천으로 전진, 여단 CP를 서미력리 부근에 개설하고 A. M. 맨(A. M. Man) 중령이 이끄는 미들섹스 대대를 박천-미력리 일대에 배치하여 대령강 동안을 연하여 침습하는 중공군을 저지케 하였고 G. L. 닐슨(G. L. Neilson) 중령이 이끄는 아가일 대대는 동문리 일대에 배치하여 대령교와 도하점을 확보하는 한편 1번 작전로를 제압토록 하였다. 한편 여단을 직접지원중인 미 제61포병대대는 대령교 동안에 진지를 점령하고 지원태세를 갖추었다.

I. B. 퍼거슨(I. B. Ferguson) 중령이 이끄는 호주군 대대는 전날 정주에서 미 제24사단의 철수를 엄호한 다음, 이날 박천으로 전진하여 대령강 서안의 옥녀봉(111고지)에 진지를 점령하고 대령교와 도하점을 확보하였다.

제1사단은 10월 25일 이래로 운산과 입석 동북방에서 격전을 전개하며 중공군 3개 사단의 집중공격을 저지하고 미 제 1기갑사단의 철퇴를 엄호한 다음, 군단작명에 따라 영변을 거쳐 신안주를 목표로 철퇴 중에 있었다.

군단 우인접인 제2군단 예하 박승일 대령이 이끄는 제7사단은 제5연대를 우일선으로 하여 535고지(군우리 동쪽 8km)에, 이기건 대령이 이끄는 제3연대를 좌일선으로 하여 비호산(622고지)에 각각 배치하여 계속 침공하는 중공군 제38, 제40군과 격전을 반복하고 있었으며 김용주 대령이 이끄는 제8연대는 용현리에 위치하여 사단후방경계를 담당하는 한편 덕천-군우리도를 확보하였다.

11월 4일편집

미 제24사단은 이날 비호산-군우리정면에 대한 중공군의 공세와 때를 같이하여 구룡강을 도하한 중공군의 측후방 공격으로 주진지전방 7km에 진지를 점령한 제19연대의 로버트 L. 리(Robert L. Rhea) 중령이 이끄는 제1대대가 중과부적으로 청천강을 건너 안주로 철퇴하였고, 야간에는 계속된 적의 침공으로 제19연대의 주진지가 혼전상태에 빠지게 되자 사단장 처치 소장은 사단 예비인 제21연대에 역습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였다.

한편 군우리 부근에서 제7사단을 증원한 제5연대는 적의 거센 공세를 격퇴하고 군우리를 계속 확보하였다. 즉 구룡강변의 약산현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제19연대 1대대는 이날 새벽, 구룡강을 도하한 중공군 제39군 예하 2개 대대 규모의 중고군으로부터 측후방 공격을 받고 1시간에 걸쳐 격전을 전개하였으나 계속되는 중공군의 압박으로 차량과 중장비를 유기한 채로 청천강을 건너 안주로 향하였다.

연대장 무어 대령은 임석동-경각동일대에 배치중인 제3대대를 즉각 제1대대에 증원하도록 배치하였으나, 이 대대가 관동에 진출할 무렵, 매복 중이던 1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의 기습으로 대대는 원진지로 다시 복귀하고 말았다.

한편 계속하여 구룡강을 도하한 사단 규모의 적은 오후에 이르러 검각산(223고지)과 저동 일대로 우회 침습하여 연대 주력을 위협하자, 연대는 사단 포병의 직접지휘 하에 격전을 전개하고 중공군의 침습을 과감하게 저지하였으나, 이날 밤에 서측배가 돌파됨으로써 밤새도록 혼전을 거듭하였다. 이에 사단장 처치 소장은 사단 예비인 제21연대를 11월 5일 미명을 기하여 중공군의 서측방을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영제 27여단은 지난 11월 3일 저녁, 박천 부근에 교두보진지를 점령하고 접적 없이 소진상태를 유지하던 중, 이날 새벽에 대대규모의 중공군의 남호동(박천 남쪽 2km)을 점령중인 미 제61포병대대를 기습함으로써 불효전이 시작되었다. 대대는 포수를 제외한 탄약수 이하의 전병력으로 사주방어진지를 편성하고 격전을 반복하는 일방, 포는 영거리사격으로 응전하였으나 일파 우일파의 제파돌격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에 여단장 코드 준장은 대령강 서안을 고수중인 아가일 대대로 급히 증원토록 하여 이 적을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재편성을 서둘렀으며 아가일 대대는 계속 제61포병대대의 엄호임무를 담당하였다. 오후에 이르러 전술한 바 한선초 군단장이 이끄는 중공군 제40군 예하 제1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이 박천 북쪽의 미들섹스 대대와 대령강 서안의 호주군 대대를 동시에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여단은 미 제61포병대대의 치열한 근접지휘 하에 격전을 계속하다가 역부족하여 한때 서미력리 부근 진지의 실함까지 보았으나 대령강 동안으로 철수한 호주군 대대의 과감한 반격으로 마침내 진지를 회복하였다.

호주군 대대는 이날 오후에 중공군 1개 연대 규모의 포위공격을 받고 격전을 전개하던 중, 영 제27여단장 코드 준장의 명령에 따라 대령강 동안으로 철수한 다음, 서미력리 부근 고지를 전통적인 총검돌격전으로 공격하여 여단이 실함하였던 진지를 회복하는데 성공하였으나 12명이 전사하고 64명이 사상하였다.

대대는 영 제27여단의 철수에 따라 신안주 북안의 연봉리로 전진하여 이날 밤에 여단을 추격한 중공군의 야습을 과감한 공방전으로 격퇴하였다.


결과 및 영향편집

11월 5일 24:00를 기하여 일제히 전선을 이탈하기 시작한 중공군은 구장동-운산-태천선의 적유산맥 남록으로 후퇴하여 차기공세를 준비하는 한편 북한군으로 수용진지를 편성케 하여 방어태세를 가장함으로써 UN군으로 하여금 그들이 만주로 철수한 것으로 오판케 하여 진격의지를 재연하도록 유도하는 듯이 판단되었다.

미 제1군단은 적의 이러한 퇴거에 따라 미 제 1기갑사단을 영변으로, 미 제24사단을 용산동으로, 그리고 영 제27여단은 박천을 거쳐 대령강 동안을 따라 각각 위력수색을 감행케 하였으며 제1사단은 박천으로 진격하였다.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위력수색의 순조로운 진전과 맥아더 원수의 지도에 따라 11월 15일을 기하여 소위 크리스마스 작전을 단행하고자 계획하였다.

즉 공격개시선을 인처리-희천-온정-운산-태천-납청정으로 정하여 제2군단은 희천에서 강계-만포진으로, 새로이 전선에 투입하게 될 존 B. 콜터(John B. Coulter) 소장이 이끄는 미 제9군단은 운산-온정을 거쳐 초산-벽동으로, 그리고 미 제1군단은 압록강하류로 각각 진격하도록 규제하고 공격 개시선까지의 진격을 독려하였으나 병참물자의 확보와 미 제9군단의 북상이 지연됨으로써 공격개시일을 11월 24일로 연기하였고 11월 19일에 이르러서는 공격 개시선을 현 접촉선으로 수정시달 함으로써 각 군단은 진격을 중지하고 부대를 재배치하면서 다시 공격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각주편집

  1. 한국전쟁사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