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제6보병사단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의 보병사단 중 하나

제6보병사단(第六步兵師團, The 6th Infantry Division, 별명: 청성부대)는 1948년 11월 20일에 창설된 대한민국 육군 보병 사단이다.

제6보병사단
第六步兵師團
ROK 6th Infantry Division.svg
제6보병사단의 문장
활동 기간1948. 11. 20. ~ 현재
국가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소속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병과보병
규모사단
명령 체계5군단
본부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별명청성부대
표어雖死不敗 靑星鬪魂
압록강 물을 다시 마시자
군가6사단가
참전한국 전쟁
지휘관
지휘관심진선 소장 (육사 46기)
주요 지휘관김재규
김종오
장도영[1]

상징이 청성(靑星, 푸른 별)이기에 흔히 청성부대라고 불린다. 청성부대라는 명칭은 6.25전쟁 당시 UN군이 사단을 'Blue Star'라는 애칭으로 부른 것에 착안하여 1951년에 사단에서 제정하였다.[2] 경례 구호는 '필승'에서 '17.04.01.부로 청성으로 전면 개정 되었다. 특히 전군 최초로 전체동기제가 시행된 곳이기도 하다. 휴전선 중부지역에 주둔하며, GOP연대 2개(2, 7)와 예비연대(19)와 포병연대 및 직할대로 구성되어 있다.

부대 연혁편집

제 6 보병사단은 1948년 4월 29일 국방부 일반명령(육) 제 15 호에 의거, 당시 경기도였던 수색리(지금의 서울 은평구 수색동 일대)에서 제 4 여단으로 최초 창설하여 11월 20일에 제 6 여단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듬해인 1949년 5월 12일 육본일반명령에 의거,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으로 승격되자마자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였다가 6.25전쟁 직전에 당시 남북 분단선으로 춘천지역을 지나는 38도선을 지키게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방어전투, 용문산 전투 등 전쟁기간동안 154여 회의 대·소 전투에 참가하여 적 92,669명을 사살하고 6,437명을 생포하는 등의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된다. 대다수의 남한 국군 사단들이 6.25전쟁 초기에 북한 인민군의 대대적인 기습공세에 밀려 엄청난 피해를 입어 후방으로 후퇴하면서 몇번씩의 재편과정으로 초기편제가 없어지는 등의 일을 겪었으나, 이 6사단 만큼은 춘천방어에 성공하다가 서울지역이 함락되고 나서야 전선유지를 위하여 명령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전술상 후퇴를 하게 되었기에 6.25전쟁 이전에 편성된 부대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도 초창기 편제를 유지해온 유일한 부대로서 긍지가 높다. 또한, 서울 수복 이후 북진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치열한 격전지였던 압록강 물을 떠서 헌수한 것은 이 부대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휴전 이후에는 1957년 3월부터 1963년 8월까지 강원도 홍천 사창리, 경기도 포천 현리로 이동하여 주둔하였고 1966년 현재 위치로 이동하여 155마일 휴전선 중부지역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으며, 제 2 땅굴 발견 등 약 30여 회의 대간첩작전을 통해 적 17명을 사살하고, 적 1명을 생포하는 등 전공을 올리고 있다.

부대 편성편집

  • 2 보병 연대(용문산 연대) - GOP경계
    • 본부대, 1,2,3대대
  • 7 보병 연대(초산 연대) - GOP경계
    • 본부대, 1,2,3대대
  • 19 보병 연대(독수리 연대)
    • 본부대, 1,2,3대대(3대대 : 제1신병교육대)
  • 포병 연대 (본부포대)
    • 27포병대대
    • 76포병대대
    • 77포병대대
    • 88포병대대
  • 직할대
    • 공병대대
    • 정비대대
    • 보급수송대대
    • 수색대대
    • 의무근무대
    • 정보통신대대
    • 전차대대 (과거 맹호부대 에서 전차와 대원을 편입을 하여 전차대대를 창설 하였다)
    • 헌병대대
    • 화생방지원대
    • 토우중대
    • 방공중대
    • 보충중대
    • 본부대
    • 신병교육대대 (과거에 19연대 3대대에 신병교육대로 있다가 나중에 직할대로 편입이 되었다)

관련 역사편집

6·25전쟁 발발 당시 남침하는 인민군의 전차를 육탄돌격으로 파괴하여 유일하게 전선을 사수하며 3일간 남침을 저지하였다.
그 뒤 용문산 전투, 무극리 전투(동락리 전투), 초산 진격 등의 전공을 세웠다.

특히 동락리 전투에서 1개 대대 병력으로 1개 연대를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고, 전 부대 장병이 일계급 특진하는 기록을 세웠다.[3]

1950년 10월 26일에 국군과 연합군 최초로 압록강변까지 진격에 성공하여 압록강 물을 떠다 이승만 前대통령에게 헌수하였다.[4]

1973년 11월 20일 근무중이던 초병이 미상의 폭음을 감지하여 상부에 보고, 시추공으로 굴착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북한의 기습남침용 2번째 땅굴인 제2땅굴을 발견하였다.[5]

드라마 촬영 협조편집

  • 1996년 KBS 신고합니다 (드라마 촬영시즌에 부대에 큰 장마피해를 입었는데 부대복구 보다는 드라마 촬영 협조가 우선이었다)
  • (또한 드라마 방영 초기에는 병사에게 드라마 시청을 독려 하였는데. 드라마 중간 부분에 극중 타부대 대원에게 굴욕을 당하는 장면과 다방 여종업원을 꾀어 여친인양 면회를 오라고 하여
  • 무단으로 외출 및 외박하는 씬이 있었다
  • 그 일로 인하여 전대원이 친계 가족이 아니면 외출 외박 금지령이 내려졌고 드라마도 시청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때 사단장이 국정농단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금전을 상납한 남재준 전 국정원장 이다
  • 2003년 SBS 야인시대

참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