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채
조선의 문신
조태채(趙泰采, 1660년 ~ 1722년 11월 12일)은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 시호는 충익(忠翼), 본관은 양주이다.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정언, 부수찬, 수찬, 검토관, 교리, 부교리, 지평을 거쳐 부수찬, 부교리, 시독관, 수찬을 지내고 다시 수찬, 부교리, 교리, 강관, 검토관, 문학, 부수찬, 정언을 두루 지내고 이조좌랑과 헌납을 거쳐 승지가 되고 참찬관을 겸하다가 다시 동부승지,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판으로 승진, 대사헌, 도승지, 이조참판을 두루 지내고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대사헌, 호조판서,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수어사, 이조판서, 예조판서, 동지성균관사, 사복시제조, 좌참찬, 지경연사를 지내고 다시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공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1713년 지중추 부사로 있을 때 청나라에 다녀왔다.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경종 즉위 후 연잉군(후의 영조)을 세제로 책봉하는 데 소론파와 대립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저서로 《이우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