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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홍씨(南陽 洪氏) 토홍계(土洪系)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고,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본관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이다.

남양 홍씨(南陽 洪氏) 토홍계(土洪系)
관향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조홍선행(洪先幸)
주요 인물홍언필, 홍섬, 홍가신, 홍익한, 홍우정, 홍우원, 홍우량, 홍대용, 홍난파, 홍사구, 홍사용, 홍사익, 홍사덕, 홍의락
인구(2000년)30,602명 (176위)

역사편집

시조 홍선행(洪先幸)은 당성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의 집안으로 고려 때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냈으며 가문의 기틀을 잡아 가세를 크게 번창시켰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양으로 하였다.

남양 홍씨 토홍계는 조선시대에 상신 2명, 문형 1명, 청백리 3명, 부마 1명, 공신 3명 등을 배출하였다.

문희공파에서는 홍언필(洪彦弼)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홍섬(洪暹) 역시 선조 때 영의정을 세 차례나 중임하고 청백리에 뽑혔다.

정효공파의 정효공 홍담(洪曇)은 홍언필의 조카인데, 훈구파(勳舊派)의 거두로서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내고 역시 청백리에 뽑혔다. 대호군공파에서는 홍숙(洪淑)이 병조판서·좌찬성 등을 역임하였고,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주창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홍익한(洪翼漢)은 그의 현손이다.

참의공파의 홍가신은 청난공신으로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그 손자인 홍우정, 홍우량, 홍우원 등이 판서와 청백리, 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분파편집

홍선행의 9~12대손에서 문희공파(文僖公派)·정효공파(貞孝公派)·참의공파(參議公派)·주부공파(主簿公派)·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등 5파로 나뉜다.

본관편집

남양(南陽)은 경기도 화성시(華城市) 남양읍 일대의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이다. 신라가 757년(경덕왕 16)에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쳤고, 822년(헌덕왕 14)에 수성군(水城郡)에 병합되었으나 829년(흥덕왕 4)에 당성진을 설치하면서 분리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당성군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의 관할에 들었고, 후에 인주(仁州)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독립하여 감무를 두었다. 1290년(충렬왕 16)에 강령도호부(江寧都護府)로 승격되었고, 다시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남양부으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남양도호부가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경기도 남양도호부의 토성(土姓)으로 홍(洪)·송(宋)·(房)·박(朴)·최(崔)·서(徐) 6성이 기록되어 있다.[1]

1896년에 경기도 남양군이 되었다. 1914년 수원군에 병합되었다가 1949년 수원시가 분리되면서 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2001년 화성시로 승격되었고, 시청 소재지는 남양읍이다.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