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한

홍익한(洪翼漢, 1586년 12월 31일(음력 11월 22일)~ 1637년 3월 30일(음력 3월 5일))은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花浦), 운옹(雲翁), 본관은 남양,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생애편집

1624년(인조 2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서(司書)를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시하는 모욕적인 조건을 내세워 사신을 보내오자, 청 사신을 죽임으로써 모욕을 씻자고 주장하였다. 그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명길의 주화론을 극구 반대하였다. 결국 남한산성에서 왕이 항복하자 오달제·윤집 등과 함께 청나라에 잡혀가 죽음을 당하니 이들을 삼학사라고 하였다. 죽은 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가계편집

  • 증조부 : 홍서주(洪叙疇) - 관찰사
    • 조부 : 홍애(洪磑)
      • 아버지 : 홍이성(洪以成) - 진사
      • 어머니 : 김림(金琳)의 딸

관련 문화재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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