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동천동 (용인시)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행정동

동천동(東川洞)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속하는 행정동으로 동막리(東幕里)와 원천리(遠川里)를 병합해 동막(東幕)에서의 '동'자와 원천(遠川)에서의 '천'자를 따서 이름이 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東川洞 Dongcheon-dong
면적16.5km2 km2
인구 (2010)31,111 명
• 인구 밀도Bad rounding hereFormatting error: invalid input when rounding 명/km2
법정동동천동, 고기동
동주민센터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수로783번길 40
웹사이트동천동주민센터

원래는 용인군 수진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동막리와 원천동을 합쳐 동천리가 되었고 2001년 12월 24일, 수지읍이 수지출장소로 승격, 동천동이 분할되었고 2006년 9월 1일, 주민센터가 설치되어 현재는 법정동으로 동천동, 고기동을 관할하고 있다.[1]

역사편집

지명 유래편집

본래 수진면(水眞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막리(東幕里)와 원천동(遠川洞)을 합쳐 동막에서의 '동'자와 원천에서의 '천'자를 따서 동천리라 하였다. 동막은 광주군과 용인군의 경계가 되는 하천의 동쪽에 막을 지어 군 경계의 표시로 삼았다 해서 동막이라는 설이 있고, 병자호란 때 수많은 막사가 있었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다. 원천동은 현재 탄천으로 불리는 물길이 '험하다'를 의미하는 험천(險川)과 '머흐다'의 머흔천으로 불렸고 먼천 · 머내 · 모내 등으로 변형되어 다시 한자로 의역화되어 원천(遠川)으로 표기하였다. 『1872년지방지도』에도 험천 · 험천점막 등의 명칭이 보인다. 고기리(古基里)도 1914년 수진면 손기동과 고분현 일부를 합쳐 고분현의 '고'자와 손기동의 '기'자를 따서 고기리라 하였다. 고분현(古分峴)은 한글로 고불현, 고분치(古分峙) · 곡현(曲峴) 등으로도 불리는데 의왕시로 넘어가는 과거 고갯길의 모양이 구불구불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2]

  • 동막곡은 예부터 광주군과 용인군의 경계가 하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동쪽에 마을 지어 표계(表界)를 삼아 동막이라 하였다는 속설도 있으며, 병자호란 때 험천에서 청나라 군사와 큰 전투를 벌일 때 군대의 막사가 무수히 많아서 동막곡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고기리지역에는 마을 어귀에 막이 있어 불렀다는 동구막산(洞口幕山)이 있고 그곳에서 발원하는 동막천(東幕川)이 흘러 합해지는 지점을 ‘원우천(遠于川)’ 이라고 적어 놓고 법화산(法華山)에서 발원하는 마북천과 광교산의 풍덕천, 정평천이 합해지는 지점의 장천(莊川)과 구별하고 있다.
  • 머내는 보관된 읍지, 기타 지리지등을 보면 옛지명에 '험천' 또는 '험천점'(險川店)으로 표기된 지명이 있다. 고어(古語)에 '머흐다'라는 말이 있는데 '머흐다'는 험하다는 뜻이며 '내'는 천(川)을 뜻하므로 한자의 의역하면 '험천(險川)'이 된다. 따라서 험천의 한자표기 지명을 우리말로 쓸 때는 '머흔천'이 되고 이것이 속음 탈락되면서 '먼천' 또는 '머내', '모내'로 변형된 것인데, 다시 한자로 의역하여 '원천'(遠川)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1861년(철종 2년), 김정호(金正浩)가 만든《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 하류를 ‘탄천’이라 하고, 상류부근의 발원지는 ‘장천(莊川)’ 혹은 ‘원우천(遠于川)’이라 기록했듯이 원천, 원우천(遠于川), 험천, 머내, 마희천(麻戱川)으로 불려왔던 사실을 알 수 있다.
  • 상손곡은 손곡 손골이라고도 하는데 손(蓀)은 창포나 란과 같은 식물을 말하므로 손초(蓀草)가 자생한 골이라는 데서 연유된 지명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랫손골 위쪽에 마을이 이루어졌다하여 위손골, 상손골 등으로 불린다.
  • 중손곡은 상손곡과 하손곡 중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중손골, 중손곡이라 칭하게 되었다.
  • 하손곡은 손골, 마을이 위 아래에 형성되어 있어 윗마을을 상손곡이라 한 것에 따라 아랫마을을 하손곡이라 하였다.
  • 손곡천은 손곡마을을 관통하는 하천으로 서쪽에는 광교산(582m) 등 높은 산이 있고, 남쪽에는 신봉(260m)이 있다. 이 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성남시 분당구와 동의 경계를 이루는 손곡천이 하류하면서 신봉천, 성복천과 만나 탄천으로 흘러든다.

연혁편집

  • 2001년 12월 24일 용인시의 행정 구역 개편
  • 2005년 10월 31일 수지출장소가 수지구청으로 승격
  • 2006년 9월 새 청사 건물로 이전
  • 2007년 9월 1일 동천동주민센터로 변경

인구편집

 
동천동 성별 연령별 인구 구조[3]

동천동의 인구는 41,743명이고 용인시의 4.0%를 차지한다. 남자는 20,537명, 여자는 21,206명이다. 동천동의 인구 구조는 일반적인 도시의 특징이 나타나서 유소년 인구 비율은 17.1%로 용인시 전체(16.1%)보다 높고 노인 인구 비율은 10.8%로 용인시 전체(12.2%)보다 낮다. [4]

전해오는 이야기편집

수지읍 동천리에 딸린 마을 중의 하나로 음성나환자들이 자급자족하는 염광농원이 있었는데 자활촌의 하나로 나환자를 위한 병원이 필요하여 설립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병원은 피부병 전문병원으로 전국에 이름이 날 정도로 유명하게 되었다. 현재는 병원은 없어지고 가내공업과 가구단지로 변해 현대식마을이 되어 있다.

문화재 및 유적편집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성남시와 용인시의 시계가 지나는 동원교를 건너 지방도 14호선으로 진입하여 1.5km 정도 가면 성모교육원이 위치한다. 동천동 유물산포지는 성모교육원 남동편에 자리한 동막마을과 서쪽의 산사면 말단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로 용인 동천동 유물산포지(龍仁東川洞遺物散布地)라고 알려진 총 세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동천동(東川洞) 유물산포지 1~3으로 구분된다.

유물산포지 1은 동막마을 일대에 있으며 중점적으로 유물이 산포하고 있는 곳은 밭 경작지와 하우스 주변이다. 소량의 삼국시대 토기 조각과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도기 조각, 자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유물산포지 2는 동천교 인근 밭 일대에 있다.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도기 조각과 자기 조각이 채집되었는데, 부분적으로 집중되는 곳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산포지 3은 중손곡마을 일대에 있다. 주로 밭 경작지에서 유물이 발견되는데, 이는 대부분 고려시대의 도기 조각이다. 그 외에 소량의 조선시대의 도기 및 자기 조각도 확인되었다.

그외 유형문화재로는 이종무 장군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25호), 황림 묘역(향토유적 제40호), 이완 묘역(향토유적 제51호), 이완 충신정려문(향토유적 제51호)등이 있다.

교육시설편집

교통편집

각주편집

  1. “어진 사람들이 사는 충절과 효의 고장,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도농복합도시 경기 용인시”. 경향신문. 2010년 8월 30일. 2012년 11월 30일에 확인함. 
  2.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편집부, 국토지리정보원(2008년)
  3. 동천동 연령별 인구, 용인시 통계바다
  4. 용인시 월별통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용인시청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