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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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시(중국어 간체자: 辽西, 정체자: 遼西, 병음: Liáoxī) 또는 요서(문화어, 중국조선어: 료서)는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북부의 해안 지대이자 랴오둥 반도 북서부와 접해있는 회랑 (지정학)이기도 하다. 랴오둥 만랴오허 강을 경계로 하여 랴오허 강 이동(以東)은 랴오둥, 이서(以西)는 랴오시로 본다.

역사 편집

이곳에는 몽골계통의 동호, 산융(동호의 일파)의 영역이었으며, 랴오시는 고조선이 정복하였고 연나라가 랴오시를 점령하였다.[1] 진나라는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오호십육국 시대와 남북조시대까지는 선비족이 정복한 지역이기도 했으며, 선비족 모용부전연, 후연, 북연 등을 세웠다. 탁발부 선비족의 북위는 중국 북부를 통일하여 남북조의 북조를 대표하는 왕조가 되었으며,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갈라졌고, 북제와 북주로 정권이 바뀌었다. 589년 수나라가 남북조를 통일하면서 랴오시는 수나라의 영역이 되었으며, 598년 고구려가 잠시 침공했을 시기를 제외하면 수나라의 영토로 유지되었다.[2] 그리고 당나라 때도 랴오시는 역대 중국의 왕조 영역이었다. 수당시기에는 영주라고 불리었다. 당나라가 쇠약해지면서 거란족은 각 지역의 부족들을 통일하여 요나라를 세워 지금의 랴오시와 옛 러허(지금의 네이멍구 자치구 동부의 츠펑 시, 닝청 현)을 중심으로 중국 북부를 침략했다. 요나라 시기의 랴오시 역시 중요한 요충지이자 교역로의 주요 지방 중 하나였다. 요나라 멸망 이후 여진족의 금나라의 영토가 되었으나 1219년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몽골 제국에게 빼앗겼다. 몽골 제국의 동부는 훗날 원나라가 되었으며 랴오시는 원나라의 영역이 되었다. 주원장의 명나라 건국 이후, 몽골의 원나라는 다시 몽골로 쫓겨났고, 랴오시와 랴오둥은 명나라의 영역이 되었다. 1616년 누루하치는 여진족과 인근의 야인들을 다시 통일하여 후금을 세웠고, 랴오시와 랴오둥 반도를 명나라로부터 빼앗았다. 후금은 1636년 청나라로 국명을 바꾸었고, 1644년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이 무너지자 청은 이자성 세력을 쫓아내고 그 이후의 중원을 차지했다. 17세기 후반에는 산둥 성의 주민들을 랴오닝 성에 일부 이주시키기도 했으나 청나라는 봉금정책을 써서 중원의 한인 이주를 제한시켰으나 봉금정책이 실패된 이후 1860년에는 수많은 한인들이 이주해왔다. 청나라가 무너진 이후 중화민국의 영역이 되었으며 이 때도 랴오닝 성으로 불리었고, 랴오시 성 북부에는 러허 성이 있었다. 그러나 장쭤린을 비롯한 군벌들의 영역이 되었다. 1931년 일본은 중화민국 동북부에 만주국을 세우면서 일제의 지배와 수탈을 겪게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 다시 중화민국의 영역이 되었으며, 1949년 국공 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고 중화민국은 타이완 섬으로 옮기면서 랴오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역이 되었다. 1954년 랴오닝 성과 러허 성 남부가 지금의 랴오닝 성이 되었다.

도시 편집

각주 편집

  1.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 기원전 2세기
  2. 삼국사기 제20권 고구려본기 제8(三國史記 卷第二十 高句麗本紀 第八)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