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부(慕容部)는 중국 동북 지방의 민족 중 하나인 선비족의 일파이다. 단석괴(檀石槐)의 선비 제국이 우문, 모용, 탁발 선비로 나뉘어 지면서 모용 선비는 자주 중국을 침략하여 세력을 떨쳤다. 4세기 이후 중국오호 십육국 시대전연, 후연, 서연, 남연 등의 여러 나라들을 건국했다.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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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의 어원은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몽골어로 ‘강’을 뜻하는 Мөрөн;ᠮᠥᠷᠡ에서 왔다고 본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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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선비(慕容鮮卑)의 영토

모용이라는 이름이 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지(三國志)』 卷30으로, 2세기 중반 선비 전체를 통솔한 수령 단석괴(檀石槐, 136~181)가 지배 영역을 동부(東部), 중부(中部), 서부(西部)로 삼분하였을 때, 중부의 족장인 중부대인(中部大人) 중에 모용씨 이름이 보인다. 이때쯤 모용부는 우북평군(右北平郡)에서 상곡군(上谷郡) 사이에서 유목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2세기 경 모용선비는 자주 위나라를 침략하였고 중국은 선비족에게 공물과 비단을 주면서 달래는 등 최대 활약을 보인 시기였다. 3세기에는 주거 영역을 대릉하(大凌河) 하류 지방으로 옮겨 유목 생활 외에 농경도 하였다.

삼국 시대 (魏) 건국 초기, 수령 막호발(莫護跋)은 부락을 이끌고 요서(遼西)로 이주하였고, 경초(景初) 2년(238) 사마의(司馬懿)를 따라 공손연(公孫淵)을 토벌하여 공적을 쌓아 위 조정으로부터 솔의왕(率義王)에 봉해지기도 했으며, 극성(棘城, 오늘날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시朝陽市) 북쪽에 성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 목연(木延,?~?, 재위 245~271)은 우북평(右北平) 서쪽 상곡(上谷) 일대에 선비계 부족을 인솔한 ‘대인(大人)’ 혹은 ‘대추장(大酋長)’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선비족은 부족명과 부족 구성원들의 성씨를 대인의 이름으로 정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 목연과 비슷한 발음의 한자 ‘慕容’으로 부족명과 성씨를 정하였다.

막호발의 손자이자 목연의 아들 모용섭귀(慕容涉歸, ?~283)는 위의 조정으로부터 선비선우(鮮卑單于)에 봉해지고 요동(遼東)으로 이주하였으며 한화(漢化)하기 시작했다. 모용섭귀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장남 모용토욕혼(慕容吐谷渾, 246~317)은 서쪽으로 하황(河湟)으로 이주하였다. 차남 모용외(慕容廆, 269~333)는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그는 농사를 가르치고 중국식 법제도를 차용하였다. 또한 모용외는 중국의 변경을 자주 침공하였다. 위나라는 모용외를 달래기 위해 관직을 주었고, 모용외는 스스로 선비대도독(鮮卑大都督)이라고 칭하였다. 서진(西晉) 시기에도 모용외는 중국 변경을 침략하여 수많은 한인(漢人)들을 사로 잡아 소작농으로 사용하는 등 맹활약을 보였다. 태강(太康) 10년(289), 모용외는 무리를 이끌고 도하(徒河)의 청산(靑山)으로 이주하였고, 원강(元康) 4년(294)에는 대극성(大棘城)으로 이주하였다. 팔왕의 난(八王之亂, 291~306) 이후, 모용부는 요동에 할거하였고 단부선비(段部鮮卑)와 우문선비(宇文鮮卑)를 격파하고 동북 최대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럼에도 모용부는 여전히 진(晉)에 조공하였다. 영가(永嘉) 원년(307), 모용외는 스스로 선비대선우(鮮卑大單于)라 칭했다. 동진(東晉)에서는 모용선비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모용외에게 평주목(平州牧) 요동군공(遼東郡公) 등의 관작을 주었다.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은 처음엔 조선왕(朝鮮王)을 칭하였고, 이후 연나라를 건국하여 337년 연왕(燕王)이라 칭하였으며 수도를 용성(龍城)으로 정하였다. 이 국가를 전연(前燕)이라고 불렀다. 모용황은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하였고, 중국을 공략하여 화북 지방의 동부를 정복하였다. 모용황의 아들 모용준(慕容儁)은 염위(冉魏)를 멸하고 중원을 장악하였다. 전연 이외에도 후연(後燕), 서연(西燕), 남연(南燕) 모두 모용부가 세웠다. 전연이 멸망한 뒤 후연남연이 건국되었다. 5세기북위(北魏)의 화북 통일과정에서 북위에 병합되었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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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遼寧省)의 모용 선비 유적에서 다량의 철갑과 등자가 출토되었다. 이곳이 등자의 기원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1]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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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 황제와 연호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고조
(高祖)
선무제
(宣武帝)
경소제 추증
모용외(慕容廆) - -
1대 태조
(太祖)
연왕
(燕王)
{문명제}
(文明帝)
경소제 추증
모용황(慕容皝) - 337년 ~ 348년
- 연왕
(燕王)
모용준(慕容俊) - 348년 ~ 352년
2대 열조
(烈祖)
경소제
(景昭帝)
모용준(慕容俊) 원새(元璽) 352년 ~ 357년
광수(光壽) 357년 ~ 360년
352년 ~ 360년
3대 - 유제
(幽帝)
남연(南燕)
헌무제 추증
모용위(慕容暐) 건희(建熙) 360년 ~ 370년 360년 ~ 370년
후연 황제와 연호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 연왕
(燕王)
모용수(慕容垂) 연원(燕元) 384년 ~ 386년 384년 ~ 386년
1대 세조
(世祖)
성무제
(成武帝)
모용수(慕容垂) 건흥(建興) 386년 ~ 396년 386년 ~ 396년
2대 열종
(烈宗)
혜민제
(惠愍帝)
모용보(慕容寶) 영강(永康) 396년 ~ 398년 396년 ~ 398년
- 창려왕
(昌黎王)
찬탈 군주
난한(蘭汗) 청룡(靑龍) 398년 398년
3대 중종
(中宗)
소무제
(昭武帝)
모용성(慕容盛) 건평(建平) 398년
장락(長樂) 399년 ~ 401년
398년 ~ 401년
4대 - 소문제
(昭文帝)
모용희(慕容熙) 광시(光始) 401년 ~ 406년
건시(建始) 407년
401년 ~ 407년
서연 군주와 연호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1대 - 제북왕
(濟北王)
모용홍(慕容泓) 연흥(燕興) 384년 384년
2대 - - 모용충(慕容沖) 경시(更始) 385년 ~ 386년 384년 ~ 386년
3대 - 단수(段隋) 창평(昌平) 386년 386년
4대 - 모용의(慕容顗) 건명(建明) 386년 386년
5대 - 모용요(慕容瑤) 건평(建平) 386년 386년
6대 - 모용충(慕容忠) 건무(建武) 386년 386년
7대 - 모용영(慕容永) 중흥(中興) 386년 ~ 394년 386년 ~ 394년
  1. 하남왕 (河南王) 모용 토욕혼(慕容吐谷渾) : 재위 285년-317년
  2. 하남왕 모용 토연(慕容吐延) : 재위 317년-329년
  3. 토욕혼왕(吐谷渾王) 모용 엽연(慕容葉延) : 재위 329년-351년
  4. 토욕혼왕 모용 쇄해(慕容碎奚) : 재위 351년-371년
  5. 백란왕(白蘭王) 모용 시연(慕容視連) : 재위 371년-390년
  6. 토욕혼왕(吐谷渾王) 모용 시비(慕容視羆) : 재위 390년-400년
  7. 대선우(大單于) 모용 오흘시(慕容烏紇褆) : 재위 400년-405년
  8. 무인가한 (戊寅可汗) / 대선우 / 무왕(武王) 모용 수락간(慕容樹洛干) : 재위 405년-417년
  9. 백란왕 모용 아시(慕容阿柴) : 재위 417년-424년
  10. 혜왕(惠王) / 롱서왕(隴西王) 모용 모괴(慕容慕璝) : 재위 424년-436년
  11. 하남왕 모용 모리연(慕容慕利延) : 재위 436년-452년
  12. 하남왕 / 서평왕(西平王) 모용 섭인(慕容拾寅) : 재위 452년-481년
  13. 하남왕 모용 도이후(慕容度易侯) : 재위 481년-490년
  14. 모용 부연수(慕容伏連籌) : 재위 490년-540년
  15. 가한(可汗) 모용 과여(慕容誇呂) : 재위 540년-591년
  16. 가한 모용 세부(慕容世伏) : 재위 591년-597년
  17. 보살발가한(步薩鉢可汗) 모용 부윤(慕容伏允) : 재위 597년-635년
  18. 대령왕(大寧王) / 서평군왕(西平郡王) / 추고여오감두가한(趉故呂烏甘豆可汗) 모용 순(慕容順) : 재위 635년
  19. 하원군왕(河源郡王) / 오지야발륵두가한 모용 낙갈발(慕容諾曷鉢) : 재위 635년-672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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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인욱, 『유라시아 역사 기행』, 민음사, 2015, 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