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연도별 서울의 역사이다.

삼국시대 편집

  • 기원전 18년 - 서울의 동부에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이 세워졌다.
  • 475년 - 고구려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 551년 -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다.
  • 553년 - 백제가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서울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통일신라·고려 편집

  • 685년 - 삼국통일 후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은 한산주가 관할하는 북한산군(北漢山郡)이 되었다.
  • 757년 -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북한산군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하였다.
  • 918년 (고려 태조 1년) - 한양군을 양주(楊州)로 개칭하였다.
  • 940년 (고려 태조 23년) - 한주를 광주(廣州)로 개칭하였다.
  • 1067년 (고려 문종 21년) -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 1308년 - 남경을 한양부로 개편하였다.
  • 1356년(공민왕 5년) -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였다.

조선·대한제국 편집

  • 1394년 10월 -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한 태조한양으로 천도했다. 당시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 1395년 -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 1398년 - 숭례문 완공.
  • 1404년 - 경복궁 준공.
  •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 1894년 - 갑오개혁 때 5부제를 5서제(署制)로 고치고, 47방 288계 775동이 되었다.
  • 1899년 -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개통하였다.
  • 1900년 -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 1902년 -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 1908년 -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가 훼손되었다.

일제강점기 편집

  • 1910년 -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다.
  • 1911년 -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 1914년 -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 1936년 -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2로 확장되었다.
  • 1943년 -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등 7개 구로 나누었다.

현대 편집

각주 편집

  1. 군정법률 제106호 서울특별시의설치 (1946년 9월 18일에 설치)
  2. 1963년 전에는 한강 이남 지역 중 현재의 영등포구, 동작구(사당동 제외), 구로구안양천 동쪽 지역과 원래 한강 이북 지역이었던 송파구 잠실동, 신천동이 서울시의 관할이었다.

같이 보기 편집

틀:서울특별시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