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남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양주남(梁柱南, 1912년 3월 8일 ~ 생사불명)은 일제강점기영화 감독시인이며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상사이다.

양주남
梁柱南
양주남 (1959년 5월 17일)
출생1912년 3월 8일(1912-03-08)
일제강점기 경성부
(現在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국적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직업영화감독, 영화 편집감독, 영화 음향연출가, 영화 동시녹음연출가, 영화 음향감독, 영화 녹음기사, 영화 녹음감독, 영화 현상감독, 영화 촬영감독, 기업가, 사진, 수필가, 시인, 연극연출가
활동 기간1932년 ~ 1978년
종교유교(성리학)
학력경성 신명고등보통학교 졸업
부모양재연(부)
친척양원장(5촌 종숙부)
양주동(6촌 재종형)
배우자김능안(金陵岸)
자녀슬하 3남 2녀
수상1954년 금성화랑무공훈장
1968년 공보부 장관 공로표창장
1972년 국방부 장관 공로표창장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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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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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초기와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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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관향)남해(南海)이고 호(號)는 풍송(豊松)· 귤산(橘山)· 기현(岐峴)이다.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서 출생한 그는 전라북도 남원전라남도 해남경상남도 남해경기도 시흥경기도 과천경기도 고양경기도 개풍경기도 개성황해도 장연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경성 공옥소학교 2학년 때이자 9세 시절이던 1920년에 부친상을 치렀다.

친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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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6촌 재종형은 문학평론가·시인·수필가·국어국문학자·영어영문학자번역문학가 양주동(梁柱東, 1903년 6월 24일 ~ 1977년 2월 4일) 前 동국대학교 대학원 원장이다.

영화 및 문학 분야 활약 절정기와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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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 겸 아동극작가 및 국어국문학자수필가 모기윤(毛麒允, 1912년 2월 29일 ~ 1983년 6월 30일) 前 한글학회 이사장과도 문학 교류를 하였으며 그는 한때 그의 문하에 정일성· 윤삼륙· 전세권· 김벌래 등이 교습하였고 트로트 가수영화 기획가영화제작자 고복수(高福壽, 1911년 12월 29일 ~ 1972년 2월 10일)·영화감독영화 시나리오 각본 작가기획가 조긍하(趙肯夏, 1919년 8월 16일 ~ 1982년 1월 28일) 등과도 각각 영화 기획 투자 교류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 그는 이처럼 서울에서 영화예술가연극연출가문학작로 활발히 활약을 하다가 1977년 이후에는 경기도 안양에 전격 낙향하여 그곳에 거주하였고 이듬해 1978년 영화와 문학 및 연극연출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 사실상 은퇴하였다.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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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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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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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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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편집감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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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향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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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시녹음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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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향감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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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상감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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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녹음기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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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녹음감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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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감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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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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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년 《삼한 이남의 산하》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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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년 《강릉에서 춘천까지 소박한 여행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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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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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및 서훈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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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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