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동래 정씨(東萊 鄭氏)는 부산광역시 동래구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동래 정씨(東萊 鄭氏)
동래 정씨의 종문.svg
동래 정씨의 종문
관향부산광역시 동래구
시조정회문(鄭繪文)
중시조정지원(鄭之遠)
집성촌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전라북도 김제시 교월동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경상남도 통영시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금매리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강원도 판교군 군한리
주요 인물정목, 정항, 정서, 정양생, 정창손, 정난종, 정광필, 정언지, 정언신, 정여립, 정유길, 정대년, 정기원, 정평구, 정영방, 정태화, 정치화, 정지화, 정재숭, 정홍순, 정상순, 정원용, 정수동, 정기세, 정범조, 정인보, 정인승, 정석모, 정근모, 정용인, 정동영, 정진석
인구(2015년)474,507명
비고동래정씨 대종중

역사편집

시조는 신라의 안일호장(安逸戶長) 정회문(鄭繪文)이다. 회문은 신라 경애왕 때 병부상서를 지낸 정완(鄭玩)의 아들이며, 경애왕 말년인 927년 견훤의 난으로 피신하였다가 931년에 돌아와 동래호장(東萊戶長)을 지내며 선정을 베풀어 안일호장의 칭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정회문 이후 몇 대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고려 초에 보윤호장(甫尹戶長)을 지낸 후손 정지원(鄭之遠)을 1세(1世)로 한다. 고려시대에 지원의 아들 정문도(鄭文道)는 안일호장, 문도의 아들 정목(鄭穆)은 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목의 아들 문안공(文安公) 정항(鄭沆)은 동지공거(同知貢擧)·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냈으며, 항의 아들 정서(鄭敍)는 《정과정곡(鄭瓜亭曲)》의 작자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재상 17명, 대제학 2명, 공신 4명, 판서 20여 명, 문과 급제자 198명을 배출하였다.[1] 중종 때 대제학을 지낸 정사룡(鄭士龍)을 비롯하여 선조 때 우의정 정지연(鄭芝衍), 숙종 때 우의정 정재숭(鄭載嵩), 헌종 때 영의정 정원용(鄭元容), 정조 때 우의정 정홍순(鄭弘淳) 등을 배출하였다.[2]

인물편집

  • 정목(鄭穆, 1040년 ~ 1105년) : 동래의 향리(鄕吏) 출신이다. 1072년(문종 26)에 예부시(禮部試)의 복시(覆試)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감찰어사(監察御史),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기거랑(起居郞), 형부시랑(刑部侍郞), 예부시랑(禮部侍郞)을 거쳐 검교예빈경 행섭대부경(檢校禮賓卿 行攝大府卿)에 이르렀다.[3]
  • 정항(鄭沆): 숙종(肅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우사간(右司諫)을 거쳐 양광도(楊廣道)와 충청도(忠淸道)의 안찰사(按察使)를 역임한 후 인종(仁宗) 때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ㆍ추밀원의 종2품 벼슬)ㆍ예부상서(禮部尙書)ㆍ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냈는데, 청백(淸白)함으로 이름이 높아 "고려사(高麗史)"에 입전(入傳)된 인물(人物)이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에는 초상(初喪)을 치를 한 섬의 곡식(穀食)조차 없었는데, 왕(王)이 그의 청빈(淸貧)함에 놀라 "30년 동안 근시(近侍)의 직(職)에 있었고, 11년 동안 승지(承旨)로 있었으면서도 가난함이 이 정도이니 가상하다" 고 하며 부미(賻米)로 쌀 100섬(一百섬)과 배 200필(二百畢)을 하사(下賜)하고, 친필(親筆)로 시호(諡號)를 문안(文安)이라 내렸다.
  • 정서(鄭叙): 정항의 아들. 임금을 그리는 노래 "정과정곡(鄭瓜亭曲)" 을 남긴 인물(人物)로 국문학사(國文學史)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고려(高麗) 인종(仁宗)과 동서간(同壻間)으로 내시낭중(內侍郞中) 벼슬까지 지냈으나 의종(毅宗)이 즉위(卽位)한 뒤 모함(謀陷)으로 인하여 동래(東萊)로 귀양길에 오르는데, 그때 왕(王)이 곧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約束)했으나, 오래도록 부름이 없자 그곳에서 임금을 그리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후대(後代) 사람들이 이 노래에 그의 호(號)를 붙여서 "정과정곡(鄭瓜亭曲)"이라 불렀다.
  • 정양생(鄭良生): 11세손. 단성보리 찬화공신(端誠輔理贊化功臣)에 책록되고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에 봉(封)해졌다.[4]
  • 정구(鄭矩, 1350년 ~ 1418년): 정양생의 아들.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해 전교부령(典校副令)을 지냈고,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한성부우윤을 지냈으며, 정종 때 도승지·대사헌, 태종 때 예문관학사를 거쳐 중군총제(中軍摠制)·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공조판서·호조 판서·판한성부사·계림부윤·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하였다.[5]
  • 정광필(鄭光弼, 1462년 ~ 1538년): 15세손, 조선 중기의 문신. 영의정을 지냈으며, 기묘사화조광조를 구하려 애쓴 인물로 유명하다. 자는 사훈(士勛), 호는 수부(守夫). 정구령(鄭龜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주목사 정사(鄭賜)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정난종(鄭蘭宗)이며, 어머니는 장사랑 이지지(李知止)의 딸이다. 저서로는 『정문익공유고(鄭文翼公遺稿)』가 있다. 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회덕서원, 용궁의 완담향사(浣潭鄕祠)에 향사되었다. 시호는 문익(文翼). 동래정씨의 문익공파 파조.
  • 정태화(鄭太和): 20세손. 1628(인조 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673(현종 14)년 심한 중풍 증세로 사직이 허락되기까지 20여 년 동안 5차례나 영의정을 지내면서 효종과 현종을 보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지 6개월 후 나이 72세로 죽으니, 현종은 3년 동안 늠록(廩祿)과 제수를 내리도록 특명하였고, 그 뒤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아 엮은 "양파유고(陽坡遺稿)"와, 1656(효종7)년까지의 일기인 "양파연기"가 있으며, 시조 1수가 전한다.

분파편집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분파(分派)는 크게 3개파로 나뉘었다. 이 중 2개파는 3세 좌복야 휘 목(穆)의 후손인데 6세 교서랑공 보파와 6세 첨사공 필파이며, 정문도(鄭文道)의 둘째 아들로 동래(東萊)에 남아 호장(戶長)을 지낸 3세 휘 선조(先祚)의 후손들은 호장공파(戶長公派)로 분파했다.

  • 교서랑공파 보(校書郞 公派: 6세)
  • 양도공파 양생(良生派: 11세)
  • 전서공파 규(典書公 規派: 12세)
  • 설학재공파 구(雪壑齋公 矩派: 12세)
  • 현령공파 효경: 13세
  • 진사공파 위: 15세
  • 양평공파 종(襄平公 種) 14세\
  • 봉천군파 인운(蓬川君 仁耘: 15세)
  • 군수공파 의운(郡守公 義耘: 15세)
  • 기우자공파 비(奇牛子公 秠: 14세)
  • 문경공파 흠지(文景公 欽之派: 13세)
  • 정절공파 갑손(貞節公 甲孫: 14세)
  • 경력공파 인손(經歷公 麟孫: 14세)
  • 부윤공파 흥손(府尹公 興孫: 14세)
  • 충정공파 창손(忠貞公 昌孫: 14세)
  • 감찰공파 희손(監察公 喜孫: 14세)
  • 목사공파 육손(牧使公 陸孫: 14세)
  • 참의공파 절(參議公 節派: 12세)
  • 평리공파 리(評理公 釐派: 13세)
  • 회은공파 조(淮隱公 慥: 11세)
  • 굉파(宏派: 13세)
  • 참판공파 개보(參判公 介保派: 13세)
  • 첨사공파 필(詹事公 弼派: 6세)
  • 학생공파 위(學生公派: 8세)
  • 호군공파 회종(護軍公 會宗派: 13세)
  • 학생공파 윤창(學生公 允昌派: 9세)
  • 동지공파 진(同知公 軫派: 12세)
  • 수찬공파 옹(修撰公 雍派: 13세)
  • 관북감사공파 철(關北監司公 哲: 16세)
  • 직제학공파 사(直提學公 賜派: 13세)
  • 참봉공파 언준(參奉公 彦寯: 18세)
  • 서계공파 언굉(西溪公 彦宏: 18세)
  • 매오공파 영후(梅塢公 榮後: 19세)
  • 낙빈공파 지(洛濱公 沚: 18세)
  • 석문공파 영방(石門公 榮邦: 19세)
  • 집의공파 난손(執儀公 蘭孫: 14세)
  • 도사공파 난수(都事公 蘭秀: 14세)
  • 삼가공파 광린(三嘉公 光隣: 15세)
  • 고령공파 광익(高靈公 光翼: 15세)
  • 동래부원군파 난종(東萊府原君 蘭宗: 14세)
  • 창원공파 광보(昌原公 光輔: 15세)
  • 문익공파 광필(文翼公 光弼: 15세)
  • 안산공파 광좌(安山公 光佐: 15세)
  • 첨정공파 난원(僉正公 蘭元: 14세)
  • 부사공파 난무(府使公 蘭茂: 14세)
  • 학생공파 유(學生公 游派: 13세)
  • 참봉공파 급(參奉公 伋派: 13세)
  • 대호군공파 인(大護軍公 絪: 11세)
  • 녹사공파 승호: 13세
  • 난암공파 언신(懶庵公 언신): 18세
  • 호장공파 선조(戶長公 先祚派: 3세)
  • 송제공파

집성촌편집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 경상남도 통영시 범골마을
  •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일원
  • 대구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 박곡리
  • 대구 달서구 이곡동
  • 경북 경산시 정평동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 경북 군위군 효령면 금매리
  • 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 경북 안동시 송천동, 임하면 임하리
  •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 경남 산청군 생초면 일원
  • 강원 이천군 판교면
  • 서울 중랑구 망우1동 양원마을
  •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일원
  •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면 고성리
  • 충북 충주시 호암동 일원
  • 충남 금산군 남이면

항렬자편집

  • 대동항렬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인(寅)
진(鎭)
口모(謨)
口운(雲)
진(鎭)
수(秀)
口영(泳)
口하(夏)
상(相)
용(用)
우(遇)
口희(熙)
口구(九)
口봉(鳳)
규(圭)
병(炳)
회(會)
口현(鉉)
口형(衡)
口가(可)
한(漢)
성(成)
무(茂)
口범(範)
口기(紀)
강(康)
용(庸)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인구편집

정(鄭)씨 중 22%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인구가 많다.

  • 1985년 98,423가구 414,785명
  • 2000년 137,524가구 442,363명
  • 2015년 474,506명

각주편집

  1.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19318 | " 동래 정씨. 정회문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독서당. 지금의 엘리트 양성 제도. 문과 급제자 198명을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부산광역시. 부산역사문화대전. 2021년 3월 7일에 확인함.
  2. https://www.doopedia.co.kr/mo/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2&MAS_IDX=101013000802697 | “동래정씨 東萊鄭氏." dooperdia. 두산백과. 2021년 3월 7일에 확인함.
  3. 일설에는 사후에 경대승의 난이후 차남인 정항계통이 단절되어 직계가 단절되자 사실상 장남 정택계가 제사를 이으면서 고려 명종으로부터 봉원군에 추정되어 다른 성씨를 사성받았으며 고려사의 근간이 되는 고려왕조실록이 불타 알기 어려우나 그 당시 상황을 아는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됨
  4. 일설에는 원간섭기 동안 정씨성을 쓰다가 장인인안향 사후에 공민왕에게 복성신청을 하여 고려 명종때 사성받은 성씨를 다시 사용하여다고도 함,
  5. 일설에는 정도전이 왕씨를 멸족시킬 때, 반대하던 정구에게 왕씨로부터 사성받은 성씨를 버리지 않으면 기자조선의 은나라 예법에 따라 고려 유신들을 인신공양하여 고려의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여 정씨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음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