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 카사르

주치 카사르(몽골어: ᠵᠥᠴᠢ
ᠺᠠᠰᠠᠷ
Jöči Qasar, 한국 한자拙赤合撒儿 졸적합살아: 1164년 ~ 1219년)는 예수게이호엘룬의 4남 1녀 중 둘째로, 칭기즈 칸의 바로 손아랫 남동생이다. 집사에 따르면 본명은 주치이고 카사르는 용맹하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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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 카사르
ᠵᠥᠴᠢ
ᠺᠠᠰᠠᠷ
지위
이름
보르지긴 주치 (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ᠵᠥᠴᠢ
, 한국 한자孛兒只斤 拙赤 패아지근 졸적)
별호 카사르 (몽골어: ᠺᠠᠰᠠᠷ, 한국 한자合撒儿 합살아)
신상정보
출생일 1164년
사망일 1219년
왕조 몽골 제국
가문 보르지긴
부친 예수게이
모친 호엘룬
종교 텡그리

1171년 예수게이가 타타르에게 독살당하자 몽골부를 장악한 타이치우드 씨족의 타르구타이 쿠릴투크는 예수게이의 처자식을 부족에서 내쳤다. 1176년 예수게이 일가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와중, 예수게이의 서장자(즉 테무진과 카사르의 이복형) 벡테르가 식량을 빼돌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테무진과 카사르가 벡테르의 앞뒤에서 활을 쏘아 죽여 버렸다.

1203년 칼라칼지드 사구 전투에서 테무진의 보르지긴 씨족이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에게 대패했을 때 카사르는 자기 아들들과 부하 몇과 함께 숲 속에 숨어 지냈다.

몽골 고원을 통일한 테무진, 칭기즈 칸은 동복형제인 카사르, 하치운, 테무게에게 좌익(오늘날의 내몽골 자치구 동쪽 끝 부분)을, 적자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에게 우익을 맡겼다. 우익은 서쪽으로 끝없는 정복전쟁을 벌였지만 좌익은 그에 비해 성과가 미미했다. 카사르는 훗날 만주라고 불리게 되는 중국 동북부의 땅과 한반도 접경을 정복했다.

1217년에 박수무당 텝 텡그리가 카사르가 불충하고 있다고 고발하자 호엘룬을 비롯한 친지들이 카사르를 변호했다. 샤머니즘 세력이 군주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칭기즈 칸은 카사르와 테무게를 시켜 텝 텡그리를 씨름을 빙자하여 죽였다.

우익이 정복한 영토는 칭기즈 칸의 아들들에게 나름 공평하게 분배된 데 반해, 좌익의 경우 막내동생 테무게가 큰형 칭기즈 칸의 편애를 받았다. 그래서 카사르와 하치운의 울루스(영지)는 테무게의 울루스보다 훨씬 작았다. 카사르의 울루스는 대흥안령산맥아르군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위치했다. 이후 중국이 정복된 뒤 산동성강서성에 카사르의 후손들의 영지가 추가적으로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