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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원류고

(흠정만주원류고에서 넘어옴)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중인《흠정만주원류고》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만주어: ᡝᡥᠰᡝ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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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ei Toktobuha Manjusai Da Sekiyen-i Kimcin Bithe)는 만주족의 원류에 관해 기록한 책으로, 전체 20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건륭제의 칙명을 받아 1778년(건륭 43)에 완성된 칙찬서로 권수 이외에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1] 《성경부》(盛京賦), 《팔기만주씨족통보》, 《팔기통지》(八旗通志), 《팔기칙례》(八旗则例), 《요금원삼사국어해》(遼金元三史國語解) 등 만주인의 역사와 문화, 풍속을 정리하는 일련의 국가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해된다.[2]

이 책은 강력한 군사 만주족을 벼리로 삼아 그 역사의 유구함과 찬란함을 고증한 책으로, 79종의 사료를 인용하여 글의 대강(大綱)을 형성하였고, 약 1,800여 개의 주석을 활용하여 본문의 중요 내용을 고증하였으며, 각 권의 중간 또는 끝에 50여 개의 사론을 붙여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1]

편찬 경위편집

《만주원류고》담당 총재[3]

 
아구이(만주어: ᠠᡤᡡᡳ)
 
동고(董誥)
 
우민중(于敏中)
 
허션
 
왕걸(王杰)

《만주원류고》는 만주족의 정체성을 강조한 역사책으로 건륭 42년인 1777년 대학사 아구이ㆍ우민중 등이 칙명을 받들어 이듬해인 1778년에 완성하였다. 당시 건륭제는 중원의 역사학자들이 만주어에 이해가 깊지 못하면서 올바른 고증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과 청 입관 후 중원인과의 통혼 확대로 만주족의 정체성이 급속하게 약화되는 부작용을 우려하였다.[4] 이에 건륭제는 만주 전통을 고수하고 종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총 35명의 학자를 투입하여 《흠정만주원류고》로 이름 지어진 대규모 편찬사업을 기획하였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유지’, ‘주접’, ‘제신직명’, ‘범례’가 포함된 권수이고, 후반부는 ‘부족’, ‘강역’, ‘산천’, ‘국속’이다. 《흠정사고전서》‘제요’에서는 “나라를 열었던 백산흑수는 본래부터 숙신씨 강역이었음을 전적이나 선인들의 글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그 원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황제의 칙명을 받아 ‘부족’, ‘강역’, ‘산천’, ‘국속’ 등으로 나누고, 만주족을 벼리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원류를 고찰하는 방법을 활용했음을 기록하여 이 책의 편찬 목적과 기술의 대강을 제시하였다.[5]

내용편집

《흠정만주원류고》는 한족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만주족의 시각에서 편찬한 것으로 주로 영토와 종족 문제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낸 책이다. 내용은 기본적으로 만주족이 시대별로 숙신[6][7] 읍루[8], 물길[9], 말갈[10], 발해[11][12][13][14], 여진(건주, 완안[15])으로 그 계통이 이어지고, 청 제국의 건국은 만주 지역에서 천여 년 동안의 이어져온 만주족 계통의 고유한 정치적, 문화적 발전과 진보의 결과로 설정하고 있다. 《만주원류고》 에서는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 혹은 고려 등의 인물로 상정하면서 고구려를 제외하고 부여, 삼한, 백제, 신라, 발해 등을 만주족의 계통과 범주에 포함시켰다. 물론 숙신 이하의 계통과 부여, 신라, 백제에 대한 인식이 동일한 수준의 것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사료상에 나타나는 기록 가운데 만주 계통과의 유사성을 취사선택하여 고증하고자 하였고, 특히 언어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만주어, 몽골어 등을 고찰하여 비교하는 언어학적 방법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러한 언어적 분석이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인지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당시의 기록들에 해당되는 1차 사료와 후대의 2차 사료에 대한 구분이 없는 점에서 이전 시기의 사료와 후대의 사료에 대한 객관적 사료 비판이 부재된 측면도 없지 않다. 《만주원류고》는 어쩌면 청대에 이루어진 만주족 중심의 역사서술에 기인한 의도된 사료 발췌를 통해 그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서술된 만들어진 역사서였다고 할 수 있다. 《만주원류고》는 한반도에 존재하였던 삼한, 신라, 백제의 위치도 만주 지역으로 보고,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인정하면서 수록하였고, 신라의 계림을 언어학적 유추를 통해 길림(만주어: ᡤᡳᡵᡳᠨ Girin)으로 비정 하면서 백제, 신라도 만주에 그 중심이 있었다고 서술하였다. 대체로 많은 사료들에 나타나는 여타의 다른 기록들을 배제한 채 서술한 것이었고, 주요 고증의 방법인 언어학적인 방법론도 그 타당성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동이의식 등을 통해 만주족의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삼한, 신라, 백제 등 조선사의 일부를 빌려와야 고구려가 중심인 시기에 있어서 만주족 계통의 역사와 공간 속에 나타나는 존재의 미약함을 극복할 수 있었고, 아울러 일정한 공백도 메울 수 있었다. 반대로 고구려에 대해서는 그들의 계통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였다.[16]

 
건륭제

건륭제는 만주인과 여진족장백산맥이라는 공통적인 지역적 기원 및 혈통적 연속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청 제국의 만주인 설립자들과 그보다 몇 세기 전에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 설립자들을 연결시킴으로써, 만주족의 역사에 대한 웅대한 묘사를 설정하려는 목적으로 《만주원류고》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만주인의 역사에 관한 이와 같은 기술을 작성하여 편찬토록 한 건륭제는 많은 것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만주인의 고대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는 만주인의 유산을 입증하고, 이를 통해 청 제국 통치의 정통성을 강조하기를 희망했다. 둘째, 그는 만주족이 사실 명나라에 굴복한적이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만주인 지배층이 명나라에 불충한 것이 아니며, 만주족 지도층을 배신한 것은 한족 황제였다는 점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이것은 천명이 만주족에게 넘어왔다는,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논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셋째, 문헌에 근거하여 만주인의 국가의 성장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그는 만주인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활력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떨쳐버리게 하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백성들에게 만주인들의 초기 신화보다는 사실적인 역사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17]

흥미롭게도 건륭제는 만주족의 야만적인 기원을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그는 여진족을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묘사한 고대 중국인의 묘사를 인용했다. 그러나 그는 유통을 금지시킨 명대 이후 기륙된, 무례한 기술에 대해서는 인용을 거부했다. 그는 만주인이 금나라의 통치 이래 수세기에 걸쳐 계속해서 발전시켜, 이제 자신의 통치 하에서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6세기의 조상에게 했던 모욕적인 묘사를 16세기의 만주인 조상에게 하는 것은, 만주족이 고대에서 현재까지 순조로운 역사적 진보를 이룩했다는, 건륭제가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세지에 위배되었을 것이다.[18]

결론적으로 《만주원류고》의 주요한 주장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작성된 만주족에 관한 근대적인 기술 역시 건륭제가 처음으로 지적한 것과 같은 장소를 지속적으로 언급했고, 중국의 고대에서 확실하게 만주의 근거를 찾으며, 만주족이 청 제국의 지배력을 갖도록 성장한 것을 거침없는 역사적 진보의 결과라고 표현함으로써, 모든 만주족에게 처음으로 논리정연한 국사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다.[17] 이는 만주족의 정체성에 대한 청 제국의 시도의 정점이다.[2]

영향편집

조선의 실학자들은 우리 고대사의 영역을 만주로 넓혀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말 이후에 남인의 실학자들은 치밀한 고증작업을 통해서 고대사의 중심무대를 한반도에서 찾았다. 그러한 이유는 《요사(遼史)》 계통의 자료들이 모두 북방종족들이 자신의 역사를 주류로 부각시키기 위해 억지로 한반도에 있는 지명도 만주로 끌여 들여, 한반도를 역사의 주변적 위치로 격하시키려 하였기 때문이다.[주 1] 따라서 1778년, 《만주원류고》의 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사의 말살 내지는 전락을 의미했기 때문에 당시의 조선의 식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학문적 반박이 요구되었던 때문에 18세기 말 이후의 학자들이 한국 고대사의 중심무대를 한반도에 비정하려고 하였던 것은 한국사를 축소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 제국에 대한 주체성을 견지하기 위한 민족주의의 발로였던 것이다.[19] 이처럼 잘못된 역사지리 연구가 배척되어가고 있었는데, 새삼 《만주원류고》를 주목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됐는데 바로 일본인들이었다.

 
샤쿠오 슌조[釋尾春芿]가 설립한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1916년 간행한 《흠정만주원류고》.

만주국을 중국과 분리시켜 일본제국주의의 만주 진출을 합리화하는 침략 논리를 개발하고 있었던 일본 학자들에게 《만주원류고》는 적합한 책이었다. 《만주원류고》는 식민사관만선사관에 안성맞춤으로 어울렀던 것이다. 이 만선사관은 만주를 차지해야 한민족의 영광이 있다고 생각하는 유사역사학에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20]

구성편집

이 책은 총20권으로, 부족, 강역, 산천, 국속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21]

  • 1. 부족(部族) : 권 1부터 권 7까지로,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완안, 건주 등 여러 부와 이웃에 있던 소론[주 2][주 3], 퍄카[주 4]등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기록하고,[22] 뒤에 《〈금사(金史)〉성씨고(姓氏考)》를 덧붙였다.[23]
  • 2. 강역(疆域) : 권 8에서 권 13까지로, 지리 방위에 따라 점대면(點帶面)과 어느 지점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넓히는 것을 통해서, 도시와 읍·촌락을 묘사하고, 뒤에 《명위소성참고(明衛所性站考)》를 덧붙였다.
  • 3. 산천(山川) : 권 14에서 권 15으로, 동북의 나라의 주요한 산맥을 묘사하되, 산맥의 역대 칭호 등 연역의 정황을 파악하였으며, 뒤에 단단대령(單單大嶺)의 여러 산들을 덧붙였다.
  • 4. 국속(國俗) : 권 16에서 권 20으로, 기사(騎射)·관복(官服)·정교(政敎)·제사·제천(祭天)·잡례(雜禮)·관제(官制)·언어·물산(物産) 등을 일일이 소개하였다.

전서는 체례적으로 3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제1부분은 모든 류의 전면에 각종 설명과 안어(按語)를 하였는데, 8백 자에서 5천 자 등 한결같지 않다. 각권마다 모두 전어(前語)와 후어(後語)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300자에서 550자 쯤 된다. 이러한 설명과 안어(按語)로써 작자의 여러 가지 관점을 설명표달하고 있다. 제2부분은 서중의 인용문인데, 대략 1,450조목이다. 제3부분은 본문의 옳고 그름을 논한 간주 부분으로, 전서의 1,800여 군데에 분산되어 있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전서의 각종 자료의 휘편(彙編)은 2,500여 조목에 달하지만, 그들은 결코 난잡하고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문중에서 편자가 가한 설명·주석(注釋)·안어(按語) 등 동류의 소재를 횡적으로 관통시키며, 비교·보충과 고증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정보를 조사에 편하게 하고 있다.[24]

한글 번역서편집

《만주원류고》의 한글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년
  • 남주성 저, 《흠정만주원류고》(상)(하), 글모아, 2010년

관련 도서편집

함께 보기편집

노트편집

  1. 정호섭, 《『滿洲源流考』 部族편의 내용과 성격》, 한국고대사학회, 2018. 고구려와 관련한 종족의 문제, 지배와 종속의 문제, 고구려와 고려의 국호의 동일함 등의 문제를 언어학 적인 방법론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고, 만주라는 공간에서 고구려를 철저하게 배제하고자 하였다. 고구려의 중심을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 북부로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고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청대 《만주원류고》 편찬자들이 인식한 만주족 계통의 역사가 존재하였듯이 그들이 인식한 그 반대쪽 저편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우리의 역사는 고조선 고구려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상정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牛素嫻(2006), 清初的「索倫」諸部. 소론(索倫, 만주어: ᠰᠣᠯᠣᠨ Solon)은 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솔론어를 사용하는 어웡키족의 한 갈래로 어웡키족, 다우르족, 오로촌족의 총칭이기도 했다.
  3. 북방사연구소(2017) , 「숲속의 사람들, 어원커족」, 『동북아역사재단』 1장(『어원커족 개관』), 37쪽. 소론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첫째 소론이라는 단어는 청 제국 초기 문헌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자작나무'라는 의미라 한다. 만주어로 자작나무는 소랄온(만주어: ᠰᠣᡵᠠᠯᠣᠨ soralon)으로 어웡키족이 거누하는 지역에 자작나무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둘째, 사수(射手) 또는 '초청하다'라는 뜻이라 한다. 셋째, 고대 숙신 혹은 술률이라는 말이 바뀐 것이라고도 한다. 넷째, 어웡키족은 순록을 키우는 어웡키 사람들을 색라공(索羅共)이라 불렀는데, 소론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색라공족에서 분리되어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4.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2장(『허저족의 기원과 역사』), 62쪽. 퍄카(飛野喀, 만주어: ᡶᡳᠶᠠᡴᠠ Fiyaka)는 허저족의 한 갈래로, 흑룡강 하구와 사할린섬 북부에 거주하였다. 겨울에는 개가죽 옷을 입고, 여름에는 물고기 가죽 옷을 입었다. 담비를 조공으로 바쳤다.

각주편집

  1. 김진광(2018),《『滿洲源流考』의 전거자료와 발해 강역에 대한 서술태도》, 선사와 고대, 한국고대학회, 31~32쪽.
  2. Crossley, Pamela Kyle. “《Manzhou yuanliu kao》 and the Formalization of the Manchu Heritage”. 《Journal of Asian Studies》. JSTOR 2057101. 
  3. 장진근 (2008). 《만주원류고》. 파워북. 43쪽. ISBN 978-89-8160-110-2. 
  4. 方京一(2005), 《『滿洲源流考』에 나타난 淸高宗의 東夷意識》, 만주연구 3, 106~107쪽.
  5. 김진광(2018),《『滿洲源流考』의 전거자료와 발해 강역에 대한 서술태도》, 선사와 고대, 한국고대학회, 34쪽.
  6. 孟森. 《淸史講義》. 8쪽. 
  7. Huang, P. 《New Light on the origins of the Manchu》.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239~282쪽. 
  8. 趙展.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 
  9. 李德山. 《中國東北古民族發達史》. 38~39쪽. 
  10. 趙展. 《滿族文化與宗敎硏究》. 1쪽. 
  11. 姜成山 (2014). 《渤海王国の社会と国家》 (PDF). 桜美林大学大学院 国際学研究科. 4쪽. 2016년 8월 18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7월 29일에 확인함. 
  12. 酒寄雅志. 《渤海と古代の日本》. 校倉書房. 16쪽. ISBN 978-4751731703. 
  13. 大貫精夫. 《東北アシア考古學-世界考古學》. 同成社. 227쪽. 
  14. Шавкунов Э.С. 《ПриморьеГосударство Бохай и памятники его культуры в》. 4~5쪽. 
  15. 장진근 (2008). 《만주원류고》. 파워북. ISBN 978-89-8160-110-2. 
  16. 정호섭, 《『滿洲源流考』 部族편의 내용과 성격》, 한국고대사학회, 2018
  17. Elliott, Mark C. “Emperor Qianlong: Son of Heaven, Man of the World”. 《Library of Biography》. ISBN 978-0321084446. 
  18.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Elliot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19. 한영우, 《조선시대 사서를 통해 본 상고사의 이해》 (《계간경향(季刊京鄕)》 1987년 여름호
  20. 이문영 (2018).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363~364쪽. ISBN 9788976965554. 
  21. 장진근 (2008). 《만주원류고》. 파워북. 50~58쪽. ISBN 978-89-8160-110-2. 
  22. 장진근 (2008). 《만주원류고》. 파워북. 50~58쪽. ISBN 978-89-8160-110-2. 
  23. 吳松林, 《〈滿洲源流考〉綜述》, 2009, 1쪽
  24. 吳松林, 《〈滿洲源流考〉綜述》, 2009, 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