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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최씨(江陵 崔氏)는 강원도 강릉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강릉 최씨 (江陵 崔氏)
관향 강원도 강릉시
시조 최흔봉(崔欣奉), 최필달(崔必達), 최문한(崔文漢)
집성촌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경상북도 울진군 원남면
함경남도 문천군 도초면 주교리
함경북도 명천군 동면 삼호동
주요 인물 최유, 최수황, 최유련, 최치운, 최응현, 최수성, 최연, 최응천, 최규하, 최각규, 최돈웅, 최종영, 최돈걸, 최연희, 최종원, 최지성, 최흥집, 최욱철, 최명희, 최문순, 최양희, 최문순, 최종구, 최상목
인구(2015년) 148,716명 (58위)

목차

역사편집

강릉 최씨는 시조를 전주계(全州系), 경주계(慶州系), 강화계(江華系)로 달리 하는 세 계통이 있다.

  • 전주계(全州系) : 최흔봉(崔欣奉)을 시조로 한다. 최흔봉은 고려 태조(太祖)의 부마(駙馬)로 완원위(完原尉)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사인 『고려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부마를 위(尉)에 봉하는 제도 역시 1451년(문종 원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므로, 후세의 윤색으로 여겨진다.
  • 경주계(慶州系) : 최필달(崔必達)을 시조로 한다. 최필달은 고려의 개국공신이고,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신하를 군(君)에 봉하는 제도는 1298년(충렬왕 24)에 가서야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므로, 후세의 윤색으로 여겨진다.
  • 강화계(江華系) : 최문한(崔文漢)을 시조로 한다. 최문한은 고려 충숙왕(忠肅王)의 부마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사인 『고려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다.

강릉 최씨는 세 계통을 다 합하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1명을 배출했다.

인물편집

고려편집

  • 최유(崔濡, 1072년 ~ 1140년) : 자는 원택(元澤). 1090년(선종 7) 19세로 문과에 급제하고, 인종(仁宗)조에 관직이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경(莊敬)이다.
  • 최수황(崔守璜, ? ~ 1301년) : 고려 고종(高宗)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충렬왕(忠烈王)조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치사(致仕)했다.

조선편집

  • 최유련(崔有漣) : 조선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다. 최유련 개국원종공신록권(錄券)은 보물 제1282호이다.
  • 최이(崔迤, 1356년 ~ 1426년) : 최유련의 아들. 초명은 최원(崔遠), 자는 유명(惟明). 세종(世宗)조에 관직이 판좌군부사(判左軍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희경(僖景)이다.
  • 최치운(崔致雲, 1390년 ~ 1440년) :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세종조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다.
  • 최응현(崔應賢, 1428년 ~ 1507년) : 최치운의 차남. 1454년(단종 2) 알성시에 급제하고, 연산군(燕山君)조에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다.
  • 최연(崔演, 1500년 ~ 1549년) : 1525년(중종 20) 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식년문과에 모두 급제하고, 명종(明宗)조에 동원군(東原君)에 봉해졌으며, 이후 두 차례나 판윤(判尹)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문양(文襄)이다.
  • 최응천(崔應天, 1615년 ~ 1671년) : 최연의 동생인 최순(崔洵)의 현손.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현종(顯宗)조에 진주목사(晉州牧使)에 이르렀다.

대한민국편집

항렬자편집

최필달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