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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천

기업가,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朴仁天, 1901년 8월 18일 (1901년 음력 7월 5일) - 1984년 6월 16일)은 대한민국기업인이다.

박인천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1901년 8월 18일(1901-08-18)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전라남도 나주군 죽포면 (현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사망1984년 6월 16일(1984-06-16) (82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본관밀양
학력나주보통학교
직업기업인
경력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회장
금호석유화학 창업회장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설립 초대 이사장
대한상공회의소 제5대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 직무대행
배우자이순정
자녀슬하 5남 3녀
정당무소속
웹사이트[http://www.kumhoasiana.com/main/main.asp 금호아시아나그룹

목차

생애편집

1901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나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나와 목화 실면을 취급하는 장사를 시작하였으나 사업에 실패하고, 이어 잡화상을 시작하였으나 이것도 모두 실패하였다. 그 뒤 목포에서 미곡상, 광산군 송정리 등지에서 가마니 장사, 또 무명 장사〔白木商〕도 하였으나 이것도 실패해 상경한 후 오성강습소에서 5개월, 중동학교에서 3개월을 수학했다. 19세에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고 광복 전까지 일본의 순사로 근무 하였다. 2차 대전이 진행 중일 때 일제는 박인천에게 강제 징용자를 모집 하라는 명령을 했고 박인천은 이를 거부하여 결국 수십년의 공직 생활을 강제로 마치게 되었다.

1946년 2대의 미합중국산 택시를 보유하고 광주여객자동차(현 금호고속)을 경영하기 시작했으며, 1948년에는 2개 노선(광주∼장성, 광주∼담양)의 면허를 얻어 버스 운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뒤 운수·제사(製絲)·타이어제조·합성고무 등의 사업을 통해 오늘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창립했다.[1]1966년에는 삼화교통을 인수하여 사장과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77년에는 재단법인 금호(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1959년 죽호학원 이사장, 1954년 광주상의회 초대회장(8대까지 연임,~1976년)과 1964년 대한상공회의소 제5대 부회장(8대까지 연임,~1976년), 1965년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제5대 회장(6대까지 연임,~1970년)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철탑, 석탑산업훈장과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경력편집

상훈편집

  • 금탑산업훈장
  • 석탑산업훈장
  • 철탑산업훈장

가족 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財閥의 뿌리(朴東洵, 태창문화사, 1979)[쪽 번호 필요]

참고 자료편집

  • 박동순, 《재벌의 뿌리》 (태창문화사, 1979)
전임
(초대)
제1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1972년 ~ 1984년
후임
박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