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 (불교)
신해(信解, 산스크리트어: adhimukti, adhimokṣa, 팔리어: adhimutti, 영어: confidence, believing and understanding the teachings), 신승해(信勝解) 또는 신해탈(信解脫)은 불교의 성자들 중의 한 부류를 일컫는 말로서 견지(見至)의 상대가 되는 것으로, 다른 이 즉 선지식(善知識)의 말을 통해 불법(佛法: 붓다가 말씀하신 교법,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믿어 이에 따라 수행하여 견도를 지나 수도에 든 성자를 말한다. 견지의 성자가 수도의 계위에 있는 이근(利根)의 성자임에 비해 신해의 성자는 수도의 계위에 있는 둔근(鈍根)의 성자이다.[1][2][3][4][5]
여기서 선지식(善知識, 산스크리트어: kalyāṇamitra)이란 남녀노소와 귀천에 관계 없이 붓다의 가르침[佛法]을 말하여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이나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나 자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는 이가 선지식에 속한다.[6][7][8]
달리 말해, 수신행(隨信行)의 성자가 견도 16심의 최후 제16심인 도류지(道類智)에 이르면 수도에 들어가는데, 이때부터 그 성자를 더 이상 수신행이라 이름하지 않고 신해라고 이름한다.[9][10] 엄밀히 말하면, '견도 16심'은 틀린 표현으로, 16심 중 앞의 15심이 견도이고 최후 제16심은 수도이다. '견도 15심'이 바른 표현이다.[11]
신해(信解)는 다음의 분류 또는 체계에 속한다.
경론별 설명
편집중아함경
편집T01n0026_p0751c20║「若
T01n0026_p0751c21║有比丘非俱解脫非慧解脫,又非身證亦
T01n0026_p0751c22║非見到,而有信解脫。云何比丘有信解脫?
T01n0026_p0751c23║若有比丘一向決定信佛、法、眾,隨所聞法,
T01n0026_p0751c24║以慧觀忍,不如見到,如是比丘有信解
T01n0026_p0751c25║脫。此比丘我為說行無放逸,我見此比丘
T01n0026_p0751c26║行無放逸,為有何果,令我為此比丘說
T01n0026_p0751c27║行無放逸耶?或此比丘求於諸根,習善知
T01n0026_p0751c28║識,行隨順住止,諸漏已盡得無漏,心解
T01n0026_p0751c29║脫、慧解脫,於現法中自知自覺自作證成就
T01n0026_p0752a01║遊,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
T01n0026_p0752a02║知如真。謂我見此比丘行無放逸,有如是
T01n0026_p0752a03║果。是故我為此比丘說行無放逸。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또한 견도도 아니지만 신해탈(信解脫)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신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지혜로써 관(觀)하고 인(忍)하지만 견도(見到)만은 못하다. 이런 비구는 신해탈이 있나니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 《중아함경》 제51권 제195경 〈아습패경〉(阿濕貝經). 한문본 & 한글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편집《아비달마대비바사론》제54권에서는 신해 또는 신승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12][13]
- 어떤 이를 신승해(信勝解)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신행이 도류지(道類智)를 얻고서 수신행을 버리고 신승해를 얻는다.
- 【문】그는 그러한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 【답】 이름[名]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道)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신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신승해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見道)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修道)를 얻는 것이다.
- 이 신승해 보특가라는 예류과(預流果)이기도 하고 일래향(一來向) · 일래과(一來果)이기도 하고, 불환향(不還向) · 불환과(不還果)이기도 하며, 아라한향(阿羅漢向)이기도 하다. 예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勝進)이 오지 않으면 예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일래향이라 하며, 일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이 오지 않으면 일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불환향이라 하며, 불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이 오지 않으면 불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아라한향이라고 한다.
또한 《아비달마대비바사론》제54권에서는 신해 또는 신승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문】무엇 때문에 신승해(信勝解)라 하는가?
- 【답】 그는 믿음[信]에 의하여 믿음에 대한 훌륭한 이해[勝解]를 얻기 때문에 신승해라 한다. 견도에 속한 믿음에 의하여 수도(修道)에 속한 믿음의 승해를 얻고 향도(向道)에 속한 믿음에 의하여 과도(果道)에 속한 믿음의 승해를 얻는 것이다.
- 또 그 보특가라는 믿음을 우선으로 삼음으로써 마음이 3결(結)을 벗어나기 때문에 신승해라 한다.
아비달마구사론
편집T29n1558_p0122c12║至住果位捨得二名。謂不復
T29n1558_p0122c13║名隨信法行。轉得信解見至二名。此亦由
T29n1558_p0122c14║根鈍利差別。諸鈍根者先名隨信行今名信
T29n1558_p0122c15║解。諸利根者先名隨法行今名見至。此二
T29n1558_p0122c16║聖者信慧互增故。標信解見至名別。그리고 과위에 머무는 단계에 이르면 두 가지의 명칭을 버리고 획득하게 된다. 즉 그 때는 더 이상 수신행 · 수법행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신해(信解)와 견지(見至)라고 하는 두 가지 명칭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근기가 둔하고 예리한 차별에 따른 것이다. 이를테면 온갖 둔근자를 앞에서는 수신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신해’라고 이름하며, 온갖 이근자를 앞에서는 수법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견지’라고 이름하니, 이러한 두 성자는 신(信)과 혜(慧)가 서로 증장하였기 때문에 신해와 견지라는 명칭으로 그 차별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 《아비달마구사론》제23권. 한문본 & 한글본[14][15]
T29n1558_p0131b24║依根不同立次二種。謂依鈍利信慧
T29n1558_p0131b25║根增如次名為信解見至。근기가 동일하지 않음에 근거하여 그 다음의 두 종류를 설정하였으니, 이를테면 둔근과 이근에게 신근(信根)과 혜근(慧根)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순서대로 ‘신해’와 ‘견지’로 이름하게 된 것이다.56)
56) 둔근인 수신행의 성자가 수도에 이르러 신(信)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무루의 정해(正解)가 나타났기 때문에 ‘신해’라고 한 것이며, 이근인 수법행의 성자가 수도에 이르러 혜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무루 정견이 나타났기 때문에 ‘견지’라고 이름하였다. 본론 권제23(p.1068)을 참조 바람.
— 《아비달마구사론》제25권. 한문본 & 한글본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信解(신해)",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信解(신해)
[1] 교법을 믿고 아는 것.
[2] 27현성(賢聖)의 하나. 남의 말을 믿고 무루(無漏)의 지혜가 나타난 이. 구사종에서는 견도(見道)ㆍ수도(修道)ㆍ무학(無學)의 3도(道) 중, 수도위(修道位)의 첫 성자[預流果]라 하고, 성실종에서는 불환과(不還果)의 하나라 함. - ↑ "신해[信解]",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7일에 확인:
신해[信解]
① 명료하게 이해하여 확신함. 확실하게 이해하여 굳게 믿음.
② 남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믿어, 그것에 따라 수행하여 수도(修道)의 단계에 이른 성자.
동의어: 신해탈(信解脫) - ↑ "信解",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7일에 확인:
信解
梵語 adhimukti,巴利語 adhimutti。音譯阿毘目底。(一)依信而得勝解者。又作信勝解。為鈍根者修行階位之名,乃七聖之一,十八有學之一,二十七賢聖之一。與「見至」相對。俱舍論卷二十三(大二九‧一二二下):「至住果位捨得二名,謂不復名隨信、法行,轉得信解、見至二名,此亦由根鈍利差別。」此謂諸鈍根者於見道位中,本稱為隨信行,及至修道住果之位,則稱信解。〔大毘婆沙論卷五十四、卷九十三、瑜伽師地論卷二十六〕
(二)起信生解之意。占察善惡業報經卷下(大一七‧九O九上):「能於究竟甚深第一實義中,不生怖畏,遠離誹謗,得正見心,能信解故。」〔大日經卷一、華嚴經探玄記卷二〕p4698 - ↑ "信解",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7일에 확인:
信解
Basic Meaning: confidence
Senses:
Trust. Believing and understanding the teachings. Having both faith and understanding in the Buddhist teaching. Correct faith, complete understanding. The Skt. adhimukti or adhimukta is also commonly rendered into Chinese with 勝解 (adhimuktika, abhisaṃpratyaya; Tib. mngon par yid ches pa). 〔法華經 T 262.9.7c08 〕 One of the eighteen levels in the application of applied practices 十八有學. One of the seven Abhidharmic divisions of sages 七證. [Charles Muller; source(s): Ui,Nakamura,Hirakawa, YBh-Ind, Yokoi]
To be interested in, to be inclined to (Skt. *adhi-muc; Tib. mos 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Belief in oneself and others. [Charles Muller]
Joy, the arousal of the mind determined for enlightenment. [Charles Muller]
(Skt. adhimokṣa; adhimucyate, adhimucyanā, adhimucyamāna, adhimokṣyati, adhimoca, abhiprasādayitavya, abhisaṃbhava, avakalpanā, pratyaya, śraddadhānatā, śraddhā, śraddhâdhimukta, śraddhâdhimukti, *śraddhā-vimukti, śrāddha, saṃpratyaya; Pāli adhimutti; Tib. dad pasmos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信解",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17일에 확인:
信解
辭典解釋 :
解釋[1]:
Faith and interpretation, i.e. to believe and understand or explain the doctrine; the dull or unintellectual believe, the intelligent interpret; also, faith rids of heresy, interpretation of ignorance.
出處: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2]:
確信和了解。
出處: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3]:
信解 (1) Believing and understanding the teachings. Having both faith and understanding in the Buddhist teaching. Correct faith, complete understanding (adhimukti). (2) Belief in oneself and others. (3) Joy, the arousal of the mind determined for enlightenment.
解釋[4]:
梵語 adhimukti,巴利語 adhimutti。音譯阿毘目底。(一)依信而得勝解者。又作信勝解。為鈍根者修行階位之名,乃七聖之一,十八有學之一,二十七賢聖之一。與「見至」相對。俱舍論卷二十三(大二九‧一二二下):「至住果位捨得二名,謂不復名隨信、法行,轉得信解、見至二名,此亦由根鈍利差別。」此謂諸鈍根者於見道位中,本稱為隨信行,及至修道住果之位,則稱信解。〔大毘婆沙論卷五十四、卷九十三、瑜伽師地論卷二十六〕 (二)起信生解之意。占察善惡業報經卷下(大一七‧九○九上):「能於究竟甚深第一實義中,不生怖畏,遠離誹謗,得正見心,能信解故。」〔大日經卷一、華嚴經探玄記卷二〕
出處:佛光電子大辭典
頁數:p3721
解釋[5]:
經深刻的了解後生起的信心。
出處: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6]:
謂前信行之人,轉入修道,以鈍根故,依憑信力,起發真解,故名信解。(修道者,謂二果斯陀含,三果阿那含也。)
出處: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7]:
信解者,謂此人根鈍,而有信心,起發真解也。
出處: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8]:
信解 (xìn jiě) ( “has faith in and understanding of (the Buddhist teaching)” )
{《漢語大詞典》1.1422b(梁代)} ; {《大漢和辞典》1.800a(法華經)} ;
Dharmarakṣa: {71a12} (buddhas)爲講分別 是大尊法 本性清淨 乃信解之 若在天上 世間亦然(v)
{K.49.10} adhimuktiṃ tatha āśayaṃ
Kumārajīva: {L.8c9} 深心之所欲
出處:A Digital Edition of A Glossary of Dharmarakṣa translation of the Lotus Sutra by Seishi Karashima, 1998
相近字:
信解不思議 [w] , 信解及見至 [w] , 信解安住心 [w] , 信解能作 [w] , 信解脫 [w] , 信見本不壞智相應 [w] , 信行 [w] , 信藏 [w] , 信者無不喜稅 [w] , 信等心所與別境心所皆得相應 [w] - ↑ "善知識(선지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善知識(선지식)
【범】 kalyāṇamitra ↔악지식(惡知識). 또는 지식(知識)ㆍ선우(善友)ㆍ친우(親友)ㆍ선친우(善親友)ㆍ승우(勝友)라고도 함. (1) 부처님이 말씀한 교법(敎法)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 세계를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사람. (2)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지식(知識) - ↑ "선지식[善知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선지식[善知識]
산스크리트어 kalyāṇa-mitra 좋은 벗.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자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는 자. - ↑ "善知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善知識
梵語 kalyāṇamitra,巴利語 kalyāṇa-mitta。音譯作迦羅蜜、迦里也曩蜜怛羅。指正直而有德行,能教導正道之人。又作知識、善友、親友、勝友、善親友。反之,教導邪道之人,稱為惡知識。據大品般若經卷二十七常啼品載,能說空、無相、無作、無生、無滅之法及一切種智,而使人歡喜信樂者,稱為善知識。華嚴經入法界品記述善財童子於求道過程中,共參訪五十五位善知識(一般作五十三位善知識),即上至佛、菩薩,下至人、天,不論以何種姿態出現,凡能引導眾生捨惡修善、入於佛道者,均可稱為善知識。又釋氏要覽卷上引瑜伽師地論,舉出善知識具有調伏、寂靜、惑除、德增、有勇、經富、覺真、善說、悲深、離退等十種功德。另據四分律卷四十一載,善親友須具備難與能與、難作能作、難忍能忍、密事相告、遞相覆藏、遭苦不捨、貧賤不輕等七個條件,即所謂「善友七事」。
經論中臚舉善知識之各種類別,據智顗之摩訶止觀卷四下載,善知識有如下三種:(1)外護,指從外護育,使能安穩修道。(2)同行,指行動與共,相互策勵。(3)教授,指善巧說法。據圓暉之俱舍論頌疏卷二十九載,與法者為上親友,與財、法者為中親友,僅與財者為下親友,以上稱為三友。華嚴經探玄記卷十八亦舉出人、法、人法合辨等三種善知識。
舊華嚴經卷三十六離世間品則說十種善知識,即:能令安住菩提心善知識、能令修習善根善知識、能令究竟諸波羅蜜善知識、能令分別解說一切法善知識、能令安住成熟一切眾生善知識、能令具足辯才隨問能答善知識、能令不著一切生死善知識、能令於一切劫行菩薩行心無厭倦善知識、能令安住普賢行善知識、能令深入一切佛智善知識。〔雜阿含經卷二十七、卷三十六、卷四十五、中阿含卷十即為比丘說經、長阿含卷五闍尼沙經、增一阿含經卷十一善知識品、尸迦羅越六方禮經、南本大般涅槃經卷二十三、法華經卷七妙莊嚴王本事品、大智度論卷七十一、卷九十六〕(參閱「知識」4370)p6157 - ↑ 오백 아라한 조, 현장 한역(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54권. 대정신수대장경. T27, No. 1545, CBETA.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T27n1545_p0278b17║云何
T27n1545_p0278b18║信勝解補特伽羅。謂隨信行得道類智捨隨
T27n1545_p0278b19║信行得信勝解問彼於爾時何所捨得。答
T27n1545_p0278b20║捨名得名捨道得道。捨名者捨隨信行名。
T27n1545_p0278b21║得名者得信勝解名。捨道者捨見道。得道
T27n1545_p0278b22║者得修道。 - ↑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김석군 개역(K.952, 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54권.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어떤 이를 신승해(信勝解)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신행이 도류지(道類智)를 얻고서 수신행을 버리고 신승해를 얻는다.
【문】그는 그러한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名]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道)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신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신승해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見道)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修道)를 얻는 것이다. - ↑ "十六心",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十六心
小乘俱舍宗謂觀察思悟四諦十六行相之後,進入見道,以無漏智現觀四諦所得之十六種智慧,稱為十六心。四諦,指苦、集、滅、道四種真諦,為佛教最基本之教義。十六行相,即在修習觀悟之過程中,對四諦各自產生四個方面之理解與觀念。見道,為佛教修行階位之一種,意謂「見照四諦真理之修行階位」。無漏智,即斷除欲界、色界、無色界等三界之煩惱,而證得佛教真理(出世間智)之智慧。現觀,即透過禪定,不經語言文字等概念,而使佛教真理直接呈現於面前的一種認識方法。此類認識方法,於小乘佛教中,特以四諦作為認識對象,稱為「聖諦現觀」,亦即次第觀三界之四諦:先緣欲界之「苦諦」而觀之,乃生起無漏之「法忍智」,其後又生起「法智」;次緣色界、無色界之苦而觀之,生起「類忍智」、「類智」;準此,集、滅、道等三諦亦各生四智,則現觀四諦,共成十六種智慧。
據俱舍論卷二十三賢聖品載,此十六心即:(1)苦法智忍(梵 duḥkhe dharma-jñāna-kṣānti),現觀欲界之苦諦,斷除迷惑苦諦之見惑。(2)苦法智(梵 duḥkhe dharma-jñāna),現觀欲界之苦諦,印證苦諦之理。(3)集法智忍(梵 samudaye-dharma-jñāna-kṣānti),現觀欲界之集諦,斷除迷惑集諦之見惑。(4)集法智(梵 samudaye dharma-jñāna),現觀欲界之集諦,印證集諦之理。(5)滅法智忍(梵 nirodhe dharma-jñāna-kṣānti),現觀欲界之滅諦,斷除迷惑滅諦之見惑。(6)滅法智(梵 nirodhe dharma-jñāna),現觀欲界之滅諦,印證滅諦之理。(7)道法智忍(梵 mārge dharma-jñāna-kṣānti),現觀欲界之道諦,斷除迷惑道諦之見惑。(8)道法智(梵 mārge dharma-jñāna),現觀欲界之道諦,印證道諦之理。(9)苦類智忍(梵 duḥkhe 'nvaya-jñāna-kṣānti),現觀上二界(色界、無色界)之苦諦,斷除對苦諦之見惑。(10)苦類智(梵 duḥkhe 'nvaya-jñāna),現觀上二界之苦諦,印證苦諦之理。(11)集類智忍(梵 Samudaye 'nvaya-jñāna-kṣānti),現觀上二界之集諦,斷除對集諦之見惑。(12)集類智(梵 Samudaye 'nvaya-jñāna),現觀上二界之集諦,印證集諦之理。(13)滅類智忍(梵 nirodhe 'nvaya-jñāna-kṣānti),現觀上二界之滅諦,斷除對滅諦之見惑。(14)滅類智(梵 nirodhe 'nvaya-jñāna),現觀上二界之滅諦,印證滅諦之理。(15)道類智忍(梵 mārge 'nvaya-jñāna-kṣānti),現觀上二界之道諦,斷除對道諦之見惑。(16)道類智(梵 mārge 'nvaya-jñāna),現觀上二界之道諦,印證道諦之理。
概括而言,現觀欲界四諦之智,稱為法智;現觀色界、無色界四諦之智,稱為類智。又所謂「類」,類似、相似之意,即謂其類似於先前的欲界之法。法智與類智復各有「忍」與「智」,合為「八忍八智」。所謂忍,即以「忍」(忍許、認可)來斷除煩惱,如「法忍」、「類忍」,均屬於無間道;所謂智,即以「智」來印證真理,如「法智」、「類智」,均屬於解脫道。無間道與解脫道皆為修行佛道、求得涅槃解脫的「四道」之一。上記謂「忍」屬於「無間道」者,蓋因於此階段,正處於忍許、認可四諦之理,而絲毫不被惑體障礙間隔之故;謂「智」屬於「解脫道」者,蓋因既已了知四諦之理,自然即斷除惑體而得解脫。又十六心之中,前十五心屬「見道」修行果位之預流向,又稱十五剎那;後一心則屬「修道」之預流果。〔大毘婆沙論卷一九六、俱舍論卷二十五、雜阿毘曇心論卷五、成唯識論卷九〕(參閱「見道」3784)p551 - ↑ 오백 아라한 조, 현장 한역(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54권. 대정신수대장경. T27, No. 1545, CBETA.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T27n1545_p0278b17║云何
T27n1545_p0278b18║信勝解補特伽羅。謂隨信行得道類智捨隨
T27n1545_p0278b19║信行得信勝解問彼於爾時何所捨得。答
T27n1545_p0278b20║捨名得名捨道得道。捨名者捨隨信行名。
T27n1545_p0278b21║得名者得信勝解名。捨道者捨見道。得道
T27n1545_p0278b22║者得修道。此信勝解補特伽羅。或是預流果。
T27n1545_p0278b23║或是一來向。或是一來果。或是不還向。或是
T27n1545_p0278b24║不還果。或是阿羅漢向。謂住預流果未勝
T27n1545_p0278b25║進來名預流果。若從此勝進名一來向。若
T27n1545_p0278b26║住一來果未勝進來名一來果。若從此勝
T27n1545_p0278b27║進名不還向。若住不還果未勝進來名不
T27n1545_p0278b28║還果。若從此勝進名阿羅漢向。 - ↑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김석군 개역(K.952, 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54권.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어떤 이를 신승해(信勝解)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신행이 도류지(道類智)를 얻고서 수신행을 버리고 신승해를 얻는다.
【문】그는 그러한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名]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道)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신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신승해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見道)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修道)를 얻는 것이다.
이 신승해 보특가라는 예류과(預流果)이기도 하고 일래향(一來向)ㆍ일래과(一來果)이기도 하고, 불환향(不還向)ㆍ불환과(不還果)이기도 하며, 아라한향(阿羅漢向)이기도 하다. 예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勝進)이 오지 않으면 예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일래향이라 하며, 일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이 오지 않으면 일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불환향이라 하며, 불환과에 머무르면서 아직 승진이 오지 않으면 불환과라 하고, 이로부터 승진하면 아라한향이라고 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3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T29n1558_p0122c05║ 至第十六心 隨三向住果
T29n1558_p0122c06║ 名信解見至 亦由鈍利別
T29n1558_p0122c07║論曰。即前隨信隨法行者至第十六道類智
T29n1558_p0122c08║心名為住果。不復名向。隨前三向今住三
T29n1558_p0122c09║果。謂前預流向今住預流果。前一來向今住
T29n1558_p0122c10║一來果。前不還向今住不還果。阿羅漢果必
T29n1558_p0122c11║無初得。見道無容斷修惑故。世道無容
T29n1558_p0122c12║離有頂故。至住果位捨得二名。謂不復
T29n1558_p0122c13║名隨信法行。轉得信解見至二名。此亦由
T29n1558_p0122c14║根鈍利差別。諸鈍根者先名隨信行今名信
T29n1558_p0122c15║解。諸利根者先名隨法行今名見至。此二
T29n1558_p0122c16║聖者信慧互增故。標信解見至名別。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3권.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제16 찰나의 마음에 이르러
세 가지 향(向)이 과위(果位)에 머물게 되면
이를 신해(信解)와 견지(見至)라고 이름하니
역시 둔근과 이근의 차별 때문이다.
至第十六心,
隨三向住果,
名信解見至,
亦由鈍利別。
논하여 말하겠다. 즉 앞에서 언급한 수신과 수법의 행자가 제16 도류지 찰나의 마음에 이르게 되면, 이를 일컬어 ‘과위에 머무는 자[住果]’라고 하지, 더 이상 ‘향하는 자[向]’라고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향은 여기서 세 가지 과위에 머무는 자가 되니, 이를테면 앞에서 언급한 예류향은 여기서 예류과에 머물게 되고, 앞에서 언급한 일래향은 여기서 일래과에 머물게 되며, 앞에서 언급한 불환향은 여기서 불환과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과(阿羅漢果)는 필시 처음으로 바로 획득하는 일이 없으니, 견도로써는 수혹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며, 세간도로써는 유정지(有頂地)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91)
그리고 과위에 머무는 단계에 이르면 두 가지의 명칭을 버리고 획득하게 된다. 즉 그 때는 더 이상 수신행ㆍ수법행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신해(信解)와 견지(見至)라고 하는 두 가지 명칭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근기가 둔하고 예리한 차별에 따른 것이다. 이를테면 온갖 둔근자를 앞에서는 수신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신해’라고 이름하며, 온갖 이근자를 앞에서는 수법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견지’라고 이름하니, 이러한 두 성자는 신(信)과 혜(慧)가 서로 증장하였기 때문에 신해와 견지라는 명칭으로 그 차별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92)
91) 아라한과는 초월증(超越證)에 의해 직접적으로 바로 획득되는 일이 없으며, 반드시 불환과를 획득한 후 유정처(有頂處, 비상비비상처정)의 수혹을 끊고 나서야 비로소 획득될 수 있다.
92) 둔근자의 과위를 ‘신해(śradhādhimukta)’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승해(勝解)가 나타났기 때문이며, 이근자의 과위를 ‘견지(dṛṣṭy-āpti)’라고 하는 것은 혜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정견(正見)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수신행 위(位)의 믿음이 이 단계에 이르러 더욱 증장하여 무루의 승해를 처음으로 일으켰기 때문에 신해라고 한 것이며, 수법행위의 혜가 더욱 증장하여 정견의 혜로 현현하였기 때문에 견지라고 한 것이다.